[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설조스님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조계종 개혁을 요구하며 30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설조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경찰 당국에 조계종의 불법행위·적폐를 즉각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8.7.1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설조스님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조계종 개혁을 요구하며 30일째 단식 농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날 ‘설조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경찰 당국에 조계종의 불법행위·적폐를 즉각 수사하라고 촉구했다. ⓒ천지일보 2018.7.19 

단식 중단 호소에도 꿈쩍 않는 스님
“병원 안 간다… 장례절차 마쳤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장례절차를 마쳤다. 늙은 비구 몸뚱이를 제물로 바치러 왔다.” “단식하다 쓰러져도 병원으로 이송해 치료하지 말라.” “만일 내가 단식을 하다 운명하거든 내 몸을 태운 잿봉지는 종단이 정상화 될 때까지 단식 투쟁장에 놔둬라.” “설정 원장이 물러나고 종단의 변화가 있어야 단식을 중단할 수 있다.”

설조스님이 조계종 개혁을 위해 총무원장 퇴진을 촉구하며 단식한 지 오늘(24일)로써 35일째를 맞았다. 35일 동안 설조스님 단식장에는 어떤 사람들이 다녀갔을까.

단식 초반 설조스님의 단식은 주목받지 못했다. 하지만 금방 중단될 것만 같았던 단식일수가 점점 더 늘어나면서 불교계뿐 아니라 시민사회와 정치인들이 설조스님을 방문했고, 소위 ‘주류 언론’들도 뒤늦게 관심을 갖고 보도에 나섰다. 설조스님의 건강이 점점 더 악화할수록 조계종과 설조스님 간의 갈등에 대한 관심이 고조되고 있다.

찜통더위가 기승을 부리던 지난 6월 20일, 설조스님은 서울 종로구 조계사 옆 우정공원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종단 변화가 있을 때까지 단식하겠다며 무기한 단식에 돌입했다.

이틀째부터 설조스님 단식장에는 단식을 만류하는 스님들이 줄을 이었다. 21일 아침 총무원 호법부장에 이어 문화부장 종민스님과 불국사 종회의원 정수스님이 문도 일원으로서 위문했고, 실천불교전국승가회 명예대표 퇴휴스님도 방문했다.

22일 오전에는 ‘조계종을 걱정하는 스님들의 모임’ 의장 현진스님과 기림사 종광스님이 찾아와 단식 중단을 호소했다. 23일에는 조계종 적폐청산을 위해 18일 동안 단식한 명진스님도 위로하러 나섰다.

27일에는 총무원 호법부장 진우스님이 설조스님을 찾아와 단식을 중단하고 법주사에 내려가면 대종사와 원로의원으로 모시겠다며 그렇지 않으면 이런저런 비리를 호법부에서 조사해 징계하겠다는 뜻을 전하기도 했다. 같은 날 1994년 종단개혁 당시 원로회의와 종단개혁위원회 사무처장 및 종정사서 실장으로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멸빈당한 원두스님도 찾아왔다. 하지만 스님은 번번이 단식 중단을 거절했다.

설조스님의 단식 선언 후 수많은 불교단체가 지지에 나서고 성명을 쏟아냈지만, 주류 언론들은 이를 보도하지 않았다. 언론이 보도하지 않으니 불교계뿐 아니라 사회에서도 설조스님의 단식에 대해 관심 갖지 않았다.

그런데 상황이 바뀌었다. 덩치 큰 언론들이 부랴부랴 보도하기 시작했다. 주류 언론들이 움직인 이유는 간단했다. 언론계 대선배인 김종철 자유언론실천재단 이사장이 지난 1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88세의 설조스님이 단식에 나선 사연을 전하며 언론들의 보도행태에 일침을 가했다.

주류언론이 설조스님 단식 보도를 시작한 데 이어 단식 16일째인 5일 오후 조계종 의결기구인 원로회의 의원 5명의 스님은 단식장을 방문해 종단 현안을 다룰 원로회의를 소집하겠다고 약속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10일 6시 10분경 호법부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6~7명의 스님을 대동해 설조스님의 단식정진단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우정공터를 방문하고 있다. (제공: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스님이 10일 6시 10분경 호법부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6~7명의 스님을 대동해 설조스님의 단식정진단인 서울 종로구 조계사 우정공터를 방문하고 있다. (제공: 조계종적폐청산시민연대)

움직이지 않고는 커지는 비난을 잠재울 수 없는 분위기가 되자 총무원장 설정스님은 10일 오전 6시 10분경 단식 21째 접어든 설조스님을 찾았다. 설정스님은 호법부장 진우스님을 비롯한 6~7명의 스님을 대동해 설조스님에게 “살아계셔야 종단이 잘 되는 것을 보실 수 있다”며 “한두 명이 바뀐다고 달라질 종단이 아니지 않은가”라고 단식중단을 제안했다. 하지만 설조스님은 “스님이 물러나고 종단의 변화가 있어야 단식을 중단할 수 있다”고 답변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어 단식 23일째는 설조스님이 단식장에 찾아온 더불어민주당 오영훈 불자회장과 청와대불자회 관계자에게 전통사찰방재예측시스템 사업 등 국가보조금 횡령, 사기, 도박 등 그동안 조계종단에서 발생한 적폐를 설명하고 “종교 교리나 율장의 문제가 아닌 상식과 사회법에 저촉되는 문제는 종교인이라도 눈 감아 줘서는 안 된다”며 “불교가 더 이상 국민에게 무뢰배 집단으로 내몰리지 않도록 원칙대로 엄정하게 바라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에 오 의원은 “말씀하신 구체적인 부분에 있어서 수사가 빨리 이뤄질 수 있도록 노력하고, 또 수사가 제대로 진행되지 않은 부분이 있다면 왜 그런지 등에 대해 관심 기울일 수 있도록 하겠다”고 답한 것으로 알려졌다.

ⓒ천지일보 2018.7.24
ⓒ천지일보 2018.7.24

단식 24일째를 맞은 설조스님은 문재인 대통령에게 보내는 편지에도 같은 뜻을 분명하게 밝히면서 법치질서를 유린하는 부패한 종교인이 자행하는 난행에 정부가 관심을 기울여 달라고 호소했다. 단식 31일째인 20일에는 이용선 청와대 시민사회수석이 단식중단을 간곡히 요청한 문재인 대통령의 뜻을 전달하며 “종교 내부의 문제에는 정부가 개입하지 않는다”면서도 “법치주의 국가에서 범법행위는 법이 정한 원칙대로 될 것”이라고 정교분리의 원칙과 법치주의 원칙을 모두 강조했다.

아흔을 바라보는 나이인 설조스님의 목숨 건 단식으로 조계종의 개혁을 촉구하는 불자들의 결집력이 더욱 탄력을 받는 분위기다. 사부대중의 단식 중단 호소에 단 한 번도 뜻을 굽히지 않는 스님의 강한 의지에 불자들뿐만 아니라 국민도 관심을 갖고 지켜보고 있다. 설조스님이 단식한 지 40일을 앞두고 있는 가운데 조계종이 어떻게 대처할지 귀추가 주목된다.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설조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 우정공원에 설치된 설조스님 단식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후 설조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8.7.19
[천지일보=이지솔 기자] ‘설조스님과 뜻을 함께하는 사람들의 모임’이 19일 오후 서울 종로구 조계사 인근 우정공원에 설치된 설조스님 단식농성장에서 기자회견을 연 후 설조스님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8.7.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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