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노회찬의 새로운 어록을 더는 적을 수 없다”
“이제 노회찬의 새로운 어록을 더는 적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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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천지일보DB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천지일보DB

정의당 노회찬 원내대표 충격적 사망

2004년 정계 입문 진보정치 간판 역할

노동자·서민 편에서 특권 내려놓은 정치

불법정치자금 수수 자책감 극단적 선택

[천지일보=박정렬 기자] 촌철살인으로 국민들에게 쉽고 재미있는 정치를 보여줬던, 진보정치의 간판 노회찬이 우리 곁을 떠났다. 드루킹 측으로부터 불법 정치자금을 받았다는 의혹을 인정하며 내린 극단적인 선택이었다.

경찰에 따르면 노회찬 의원은 23일 오전 9시 39분 서울 중구의 한 아파트 17층과 18층 사이에서 밖으로 투신해 숨졌다.

여야 5당 원내대표단의 일원으로 미국을 방문해 한반도 평화와 통상문제 등에 대한 외교전을 펼치고 전날 귀국했던 노 의원은 방미 일정 중에도 특검 조사에 당당히 임하겠다고 밝혔었다.

그가 남긴 유서 말미에는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모든 허물은 제 탓이니 저를 벌하여 주시고, 정의당은 계속 아껴주시길 당부드립니다”라고 적혀 있었다. ‘드루킹으로부터 4000만원 수수’ 사실을 인정하고 양심의 가책을 못이겨 스스로 생을 마감한 것으로 보인다.

노회찬 의원은 이날 오전 원내대표로서 정의당 상무위원회, 그리고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참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모습을 나타내지 않았고 정치권과 국민에게 큰 비보를 안기고 말았다.

이날 노 의원의 빈소를 찾은 민주평화당 장병완 원내대표는 노 의원과 함께한 5당 원내대표 방미 일정 당시 전혀 신변에 대한 낌새를 느끼지 못했다고 밝혔다.

그는 “한반도 평화 문제에 대해선 당 간에 이견이 있을 수 있는 주제임에도 거기에 대해 대부분 한목소리를 냈다는 점에 대해 미국 측도 크게 평가하는 분위기였다”며 “(노 의원이)그런 일정에 워낙 성실하게 임해, 전혀 아무런 내색도 느끼지 못할 정도였다. 저희들이 귀국하는 순간까지도 전혀 다른 생각은 갖지 못했다”고 말했다.

노 의원의 사고 소식이 알려진 시각, 정의당 관계자들도 충격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긴급회의를 열고 사고 3시간여가 지난 오후 12시 40분경 최석 대변인이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 브리핑을 했지만 “상황을 파악하고 있으니 무분별한 억측과 취재를 자제해달라”는 것이 전부였다.

그리고 오후 3시 빈소가 마련된 신촌 연세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서 대표단 긴급회의를 열고 장례절차 등을 논의했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빈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7.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정의당 노회찬 의원의 빈소에서 시민들이 조문을 하고 있다. ⓒ천지일보 2018.7.23

노 의원은 유서에 “2016년 3월 두 차례에 걸쳐 경공모로부터 모두 4천만원을 받았다. 어떤 청탁도 없었고 대가를 약속한 바도 없었다. 나중에 알았지만, 다수 회원들의 자발적 모금이었기에 마땅히 정상적인 후원절차를 밟아야 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다. 누굴 원망하랴. 참으로 어리석은 선택이었으며 부끄러운 판단이었다. 책임을 져야 한다”고 적었다.

당시 어떤 상황이어서 돈을 받았는지는 살펴봐야 하겠으나 결국 돈을 받은 후 절차에 맞게 처리하지 못한 점, 그로 인해 당과 당원들, 국민들 앞에 떳떳하지 못한 심적 고통이 컸으리라는 추측이다. 특활비 반납과 폐지 등 각종 특권을 내려놓겠다며 깨끗한 정치를 가장 앞서서 외쳤던 그였다.

일각에서는 “4천만원 때문에 그런 선택을…”이라며 안타까움을 나타내고 있다. ‘더 한 사람(정치인)들도 떵떵거리고 지내는데 이겨냈어야 한다’는 내용의 글을 SNS 등에서 볼 수 있다.

노 원내대표는 경기고등학교 재학시절 10월 유신에 반대하며 반독재 투쟁에 참석했고 이때부터 유인물을 만들어 배포하는 일을 하며 민주화운동에 참여했다. 1979년 군 제대 후 고려대 정치외교학과에 입학한 그는 민주화운동을 이어갔고 5.18광주민주화운동에 크게 충격을 받았다고 한다.

그는 고려대 재학중인 1982년 영등포 청소년 직업학교(현 서울산업정보학교)에서 용접기능사 2급 자격증을 따서 용접공으로 현장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1980년대 초중반부터 시위를 조직하고 노조를 결성한 죄로 꽤 오랫동안 수배자 신분으로 도망다녀야 했다. 1987년 6월 항쟁 이후 인천, 부천의 노동조합과 노동운동 단체를 연합해 인천민주노동자연맹(인민노련)을 출범시키며 핵심멤버로 활동했다.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오른쪽)가 기자회견을 마친후 노회찬 위원장과 함께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지난 2017년 4월 15일 광화문광장에서 정의당 심상정 대선후보(오른쪽)가 기자회견을 마친후 노회찬 위원장과 함께 시민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주노동당의 비례대표로 아슬아슬하게 당선되며 중앙정치계로 진출했다.

그는 각종 토론, 대담에서 일반 국민들의 귀에 쏙쏙 들어오는 비유와 유머로 사랑을 받았다. 복잡한 문제를 쉽게 설명하는 데 탁월했다. 노동자와 서민의 편에 섰고 깨끗한 정치를 외쳤기에 국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지난 대선에서 심상정이 대통령 후보로서 지지율을 끌어올렸고, 이정미 대표가 취임한 이후 최근 지지율 상승세로 약진하는 정의당이지만 노회찬이 없었다면 이 같은 성과는 어려웠을 것이라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제도권 정치에서 ‘진보’라는 말을 대중화시킨 일등공신이 바로 노회찬이기 때문이다.

이제 노회찬의 어록은 더 이상 추가할 수 없게 됐다. 한국 정치계의 큰 자산이 우리 곁을 떠난 날이다.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8.7.23
[천지일보=남승우 기자] 정의당 이정미 대표가 23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 세브란스병원 장례식장에 마련된 노회찬 원내대표의 빈소에서 눈물을 훔치고 있다. ⓒ천지일보 2018.7.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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