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북아 窓] 북한 비핵화와 9.19공동성명의 선례
[동북아 窓] 북한 비핵화와 9.19공동성명의 선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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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형 (사)동아시아평화문제연구소 소장

 

비핵화 실무협상을 위해서 지난 6일 1박 2일간 방북했던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이 사실상 빈손으로 온 것 아니냐는 지적이 일고 있다. 북한은 미국의 협상태도에 대해 강도 같은 요구를 한다면서 불만을 드러냈고, 미국 안에서도 북한 비핵화에 대한 회의론이 제기되고 있다. 폼페이오 장관은 북한에 가기 전에 ‘최종적이고 완전하게 검증된 비핵화(final, fully verified denuclearization: FFVD)’ 이야기를 하겠다고 했는데 결과적으로 그 부분은 전혀 진전이 없었고, 김정은 국무위원장도 못 만나 트럼프 대통령의 친서도 직접 전달하지 못했다. 

이렇게 북한의 태도가 갑자기 달라진 모습을 보이자 대북 강경파인 린지 그레이엄 미 상원의원이 폼페이오의 빈손 복귀 뒤에는 중국의 입김이 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실제로 3차 북·중 정상회담 이후에 중국은 북한으로의 관광을 재개했고, 양국 교역도 활발해지는 모습이 포착되고 있다. 그러한 연유로 북한은 미국과의 협상에서 나름대로 자기의 목소리를 낸다고 볼 수도 있다. 

트럼프 행정부는 북미정상회담 후 한미연합훈련을 중단했는데, 북한은 핵실험 중단 발표, 핵실험장 갱도폭파, 미국인 억류자 3명 송환으로 미국에 대한 성의를 이미 다 했다고 하면서, 이제 6.12북미회담에서 합의된 유해 송환문제와 엔진실험장 폐기문제도 새롭게 협상을 시작하고 동시에 종전선언도 서두르자고 제의하고 있다. 미국은 북미정상회담 전에 CVID(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돌이킬 수 없는 비핵화)는 기본이며, 핵과 미사일을 미국으로 가져가 2년 내에 북한의 비핵화를 완료하겠다고 했는데, 아직 비핵화 시간표도 마련하지 못한 상태이다. 

이러한 상황에서는 2005년 9월 19일 6자회담(남북한, 미, 일, 중, 러)에서 합의된 9.19공동성명을 다시 주목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 성명은 그때까지 가장 성공적인 합의였다는 평가가 있었기 때문이다. 9.19합의는 북한이 ‘모든 핵무기와 현존하는 핵계획을 포기할 것’과 ‘조속한 시일 내에 핵확산금지조약(NPT)과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안전조치에 복귀할 것’을 공약함은 물론, 북한을 제외한 5개국은 그에 상응하는 에너지, 교역 및 투자 분야에서 경제협력 및 지원을 북한에 약속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9.19공동성명 후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 재무부는 위조지폐를 만들고 있는 북한의 불법행위에 대한 정당한 조치라며, 방코델타아시아(BDA)은행의 북한계좌를 동결했다. 이에 북한은 즉각 반발하며 9.19공동성명을 무력화시켰다. 결국 북한은 이듬해인 2006년 대포동 미사일 발사실험에 이어 1차 핵실험을 감행하면서 9.19공동성명은 사실상 폐기됐다. 

북한 비핵화의 최대 관심은 비핵화 완료시한과 구체적인 이행조치 시간표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7일 “북한의 비핵화에 시한과 속도 제한은 없다”고 선언했다. 당초 북·미 접촉의 전제였던 빠른 비핵화 시간표로 더 이상 북한을 압박하지 않겠다는 것인지, 아니면 양측이 아직 시간표 작성 합의에 도달하지 못한 것인지 알 수 없으나, 시간표도 없는 상태에서 어떻게 북한 비핵화를 실현시킬 것인지 의구심마저 든다. 지금 진행되고 있는 북·미 양자회담이 2005년 6자회담 당시와는 상황이나 여건이 다르겠지만, 9.19공동성명 방식에 준한 합의가 도출된다면 북한비핵화가 더 원만하게 진척될 수 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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