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본사에서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8.7.1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본사에서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8.7.19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

 

북한 군‧당, 비핵화 절대 반대해
북한 시간 끌기에 한미 끌려가
한미정상 김정은 긍정평가 유감
트럼프, 북핵문제 본질 이해못해
핵관리-관계개선 대안이 현실적
통일, 예기치 않은 순간에 올 것

[천지일보=이솜 기자]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공사가 천지일보와의 대담에서 문재인 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비핵화’가 아닌 ‘핵 있는 평화체제’를 제시하는 것이 설득력 있다고 강조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은 어떤 경우에도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므로 이를 인정하고 남북 관계 개선을 통해 핵을 안전하게 관리하면서 평화 체제를 만들어 가는 게 가장 현실적이면서도 진정성 있는 대안이라는 설명이다.

2년 전 가족과 함께 한국으로 망명한 태 전 공사는 지난 19일 천지일보 이상면 대표와 대담을 통해 최근 이뤄진 남북, 북미 정상회담과 한반도 평화, 통일 문제 등에 대해 자신의 생각을 거침없이 털어놨다.

― 북한에 변화가 일어나고 있나.

북한 정권은 6.25 전쟁이후 변화가 없다. 그러나 북한 사회 전반, 주민들의 일상생활, 문화적인 측면에서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외국 친구가 이러한 변화를 진단하기 위해 몇년간 3개월 단위로 같은 상점, 같은 매대의 사진을 찍었다. 상당한 변화가 있었다. 외국 제품으로 대체하던 통조림이나 과자 등에서 북한 자체 생산 제품이 많이 늘었다. 북한 사람들의 인식에도 변화가 있다. 일반 가정의 소비 우선순위가 이전에는 냉장고나 TV 등이었다면, 최근에는 이런 제품들이 없어도 휴대폰을 가장 먼저 구입한다.

― 망명 이유는 무엇인가.

북한 김정은 시스템에 미래가 없다고 생각했다. 북한은 처음 세워지고 발전되면서 내세웠던 목표와 이상을 다 버린 곳으로 변질됐다. 세계에 공산주의 이념을 가진 나라는 많다. 그 나라들은 생산수단을 개인이 가지고 있으면 안 되고, 세습을 반대한다는 공산주의 핵심 이론 두 가지를 지키고 있다. 그러나 북한은 공산주의를 표방하면서 세습을 했다. 공산주의 이념에 전적으로 대치되는 것이다.

또 외국에서 살면서 인간의 자유가 얼마나 중요한 것인지 뼈저리게 느꼈다. 부모의 입장에서 자식들을 보니 북한에서 자유롭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이상 또 북한에 갈 수 없는 노릇이었다.

― 최근 남북, 북미 정상회담이 이뤄졌다. 두 정상회담의 의미를 어떻게 보는가.

김정은의 전략적 수정이 있었다. 이것은 대한민국과 미국이 거둔 큰 성과다. 미국이 군사적인 압박과 대북제재를 가했기 때문에 김정은도 자기의 능력과 힘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느낀 것이다. 다만 우리의 목표는 완전한 비핵화고, 김정은은 이를 빠져나가려고 했다. 이런 목적이 상충하는 상황에서 전반전은 김정은이 이겼다고 본다. 4.27회담과 6.12회담을 하나로 보면 결국 ‘시간을 끌려는 김정은의 전술이 상당히 성과를 얻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두 회담이 열리기 전 국민들의 실제 기대는 ‘김정은이 핵을 내려놓겠구나’였다. 그런데 현재 회담 후 한달 밖에 지나지 않았는데 ‘과연 북한이 비핵화를 할까’하는 회의론과 긍정론이 팽팽히 맞서고 있지 않나.

― 최근 트럼프 대통령이 사실상 비핵화 협상의 장기화를 선언했다.

싱가포르 회담에서 트럼프는 전략적 실수를 범했다. 북핵 문제의 본질을 이해하지 못했고, 김정은이 무엇을 노리는지 모른 채 합의문에 서명했다.

회담 전 성 김 필리핀 주재 미국대사가 ‘선(先)비핵화 후(後)신뢰환경조성’을 놓고 최선희 북한 외무성 부상과 판문점에서 실무협상을 벌였지만 진전이 없었다. 북한은 일관된 입장이다. 미국 조건의 선후 관계를 바꿔 비핵화의 틀을 북한식으로 바꿔 놓자는 전략이다.

결국 북미 정상회담의 합의문은 어떻게 나왔나. 서두 문장에 ‘상호 신뢰 구축’이 나오고 이후에 ‘비핵화 촉진’이 이어진다. 또 4가지 합의 사항에서도 1번에 북미 관계 수립, 3번에 비핵화 노력이 나온다. 북한의 계획대로 된 셈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19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본사에서 대담을 하고 있는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천지일보 2018.7.1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지난 19일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와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본사에서 대담을 하고 있는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천지일보 2018.7.19

― 북한을 신뢰할 수 있나.

북한에 대해 ‘예측하기 힘들고 신뢰하기 어렵다’는 평가를 많이 본다. 그러나 북한처럼 예측하기 쉬운 곳은 없다. 하지 않을 행동은 절대 합의문이나 협상 중에 토씨 하나도 남기지 않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북미정상회담 실무협상 과정에서 미국은 비핵화 검증을 북한에 끝까지 요구했지만, 북한은 이를 수용하지 않았다. 또 합의문 어디에도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은 없다. 모두 ‘한반도 비핵화’라고 적혀 있다.

― 오히려 우리 측에 신뢰 문제가 있다는 것인가.

그렇게 볼 수 있다. 지난 2007년 9.19 공동성명을 만들 당시 크리스토퍼 힐 미국 측 수석대표가 비핵화 시간표를 만들자고 했는데 북한이 절대 동의하지 않았다. 이후 그는 “공동성명이 과연 북한의 비핵화로 이어질지 확신이 없다”고 솔직하게 밝혔다. 이번 판문점선언과 싱가포르선언에도 시간표도, ‘북한의 비핵화’라는 표현도 없는데 실무진 중에는 이런 고충을 털어놓는 사람을 보지 못했다.

― 현 정부의 대북관을 어떻게 보는가.

(현 정부에서) 김정은을 훌륭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라고 생각한다. 김정은은 명백한 독재자고 살인자다. 외교적으로 봤을 때 북한의 최고 통수권자이기 때문에 김정은을 제쳐놓고 대화를 할 수는 없지만, 대화 상대자를 도덕적 기준으로 어떻게 평가하는가 이것은 지도자로서 중요한 덕목이다. 트럼프도 김정은에 대해 대단한 사람이라고 평가하는데 특히 미국을 대표하는 대통령이 그래서는 안 된다. 미국이 세계 강국이 될 수 있었던 이유 중 하나는 도덕적 가치를 추구하는 소프트 파워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정은을 실제로 긍정적으로 보는지, 현재의 흐름을 끌고 가기 위해 젊은이의 등을 두드려주는 것인지는 알 수 없다.

― 북한 군부는 비핵화 협상을 어떻게 바라보는가.

북한은 지금 당과 군대 내부적으로 비핵화가 절대 있을 수 없다고 계속 강조하고 있다. 지난 4월 20일 당 전원회의에서 김정은은 북한의 핵무기에 대해 ‘앞으로 북한의 평화를 수호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라고 말했다. 이번 남북, 북미 회담 내용이 언론 매체에 나갈 때에도 미국을 제3국에서 만나 협상한 힘의 원천은 북한이 짧은 시기에 핵과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이라는 든든한 무기에 있다는 게 핵심이다.

― 북한이 결국 비핵화를 안 할 거라면, 한국과 미국이 이를 모를 리가 없지 않나.

당연히 알고 있다. 그래서 한국과 미국 정부는 북한이 내부적으로 비핵화 준비를 하고 있다고 절대 공식적으로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미국 정보당국에서는 북한이 핵을 은닉시키고 제2 우라늄 시설을 가동하고 있다고 판단한다.

― 그런데 왜 협상을 계속하는가.

현 정부의 대북 정책 때문이다. 남북 관계를 먼저 진전시킨 뒤 비핵화 협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주려는 것이 현 정부의 목적이다. 이 부분은 지켜봐야할 문제다. 그러나 남북 관계 개선이 된다고 해도 북한은 절대 비핵화를 하지 않을 것이다.

― 단계별 협상을 통해 결국 목적을 달성하는 ‘살라미 전술’인가.

정부가 남북관계를 앞세우면서 이것이 북한의 비핵화에 선순환 역할을 할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그러면서도 관계 개선이 되면 북한이 비핵화를 할 수 있다고 확실히 말하지 못한다. 남북이 북한 비핵화 문제를 현실적으로, 진지하게 논의를 못했기 때문이다.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본사에서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8.7.19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가 지난 19일 서울 용산구 천지일보 본사에서 이상면 천지일보 대표와 대담을 나누고 있다. ⓒ천지일보 2018.7.19 

― 남북 평화 무드가 조성되고 있다. 앞으로 북한의 개혁 개방이나 남북 교류 등이 계속 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할 수 있나.

남북 관계가 평화적으로 개선된 부분은 대단히 긍정적으로 봐야 한다. 또 현 정부가 현실적이고 진정성있는 정책 대안을 제시해야 한다. 김정은은 절대 핵을 포기하지 않겠지만, 우리 입장에서는 북한이 핵을 더 개발하거나 쓰지 못하도록 안정적으로 관리하면서 남북 관계를 평화적으로 구축, 지속하는 것이 낫다는 게 가장 솔직한 정책이다. 즉 ‘핵 있는 평화 체제’다. 그렇지 않고 비현실적인 목표를 자꾸 내세웠기 때문에 국민들도 혼란스러워하고 의문을 계속 가지게 되는 것이다.

― 문재인 대통령에게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인가.

그렇다. 현실을 인정해야 한다. 북한을 그냥 두면 핵실험도 하고 미사일도 발사하니, 한국 정부가 안전 관리를 하면서 관계 발전을 시키겠다는 대안을 국민들에게 제시해 지지를 받고, 국제 공동체 국가들에게도 지지를 얻어야 정책 추진에 속도가 붙는다.

― 최근 인터뷰에서 통일이 곧 이뤄질 것이라고 언급했다.

많은 사람들이 통일을 불가능하다고 여기고 있지만 북한 내부 의식이 변하고 있고 문화적, 경제적 변화가 있으니 예기치 못한 일이 발생할 수 있다고 본다.

― 독일 통일처럼 시대적 상황이 맞는 시기가 오지 않았을까.

통일 조성을 위한 외부 환경에 대해 이야기 한다면 무엇보다 촉매제는 중국의 변화다. 중국이 더 민주화되고 자유로워져서 국민들이 현 시스템을 거부할 때 우리의 통일은 좀 더 빨리 진척될 수 있다. 내부에서는 서부 독일과 같이 북한 주민들이 들고 일어날 수 있도록 은밀한 방법도 고려해야 한다.

 

태영호 전 공사는

▲1962년 평양 출생 ▲평양 국제관계대학 국제관계학 ▲주 덴마크 북한대사관 서기관 ▲주 스웨덴 북한대사관 서기관 ▲주 영국 북한대사관 공사 ▲2016년 8월 한국으로 망명 ▲국가안보전략연구원 특임전략자문위원(2017~2018년 5월) ▲현재 프리랜서로 강연 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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