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지난 2008년 3월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렸던 최준 군의 판소리 및 피아노 발표회 모습. (사진제공: 최준)

판소리로 발달장애 극복… 공연 수익금 전액 기부

[천지일보=김두나 기자] 장애를 가진 자가 같은 장애를 가진 자에게 전하는 희망의 메시지는 다양하다. 음악이 될 수도 있고, 웃음을 선사할 수도 있고, 큰돈을 벌어 장학금을 지원할 수도 있다. 그 중에서 자신의 목소리로 한국의 전통을 노래하는 판소리꾼 최준(21) 씨의 나눔과 비움을 들여다봤다.

공연 수익을 같은 장애를 가진 아동들을 위해 기부하고 지방까지 다니며 무료공연을 베풀고 있는 최준 씨의 나눔의 소리는 어떤 음색일지, 비우는 손은 얼마나 아름다운지 궁금했다.

◆발달장애 최준, 판소리를 만나다

최준 씨는 판소리를 전공하고 있는 21살의 청년이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시작해 8년간 소리를 배웠다. 첫 공연을 초등학교 6학년 때 치를 만큼 실력도 남다르다. 선천적으로 타고난 재능이라 불리는 ‘절대음감’을 갖고 있어 한 번 들은 곡은 바로 연주가 가능할 정도다.

하지만 여느 판소리꾼과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다. 최준 씨는 발달장애(자폐증)를 갖고 있다. 발달장애는 3세 이전부터 언어 표현과 이해, 어머니와의 애착 행동, 사람들과의 놀이에 대한 관심이 저조해지는 증상을 보인다. 3세 이후에는 또래에 대한 현저한 관심 부족, 반복행동, 놀이행동의 심한 위축, 인지발달의 저하 등이 함께 나타난다.

최준 씨의 어머니 모현선 씨는 “3살이 채 안 되었을 때 준이의 장애를 발견했다”며 “이후 10여 년 동안 물리치료, 언어치료 등 여러 특수교육을 해오다가 준이가 12살 때 판소리를 시작했다”고 말했다.

특수교사의 권유로 배우게 된 판소리는 최 씨의 장애치료에도 매우 효과적이었다. 판소리는 호흡이 길지 않으면 따라 부르지 못하기 때문에 폐활량이 자연스레 좋아졌고 아울러 건강에도 영향을 미쳤다.

악보를 보면서 부르는 것이 아니라 책 한 권을 다 암기하고 그 음을 기억해 부르는 판소리이기에 암기력도 향상됐다. 또 가만히 앉아 부르다 보니 착석 교육도 됐다고 최 씨의 어머니는 설명했다. 고민 끝에 모든 특수교육을 접고 치료목적으로 시작한 판소리가 최 씨 인생의 전환점이 된 것이다.

◆“판소리를 가르치는 선생님이 될 거에요”

처음 만난 최준 씨는 “누나, 안녕하세요. 매장(어머니가 운영하는 가구점)이 참 아름다워요. 긴 머리 좋아해요”라고 인사했다. 다소 산만한 문장으로 대화를 시작한 최 씨는 그러나 밝은 표정 속에 때 묻지 않은 순수함을 지닌 어엿한 청년이었다.

판소리를 하면서 가장 행복했던 때가 언제였냐는 질문에 최 씨는 “공연할 때가 좋아요. 사람들이 흥겨워 보여요”라고 답했다. 사람들이 박수 치면서 ‘얼씨구나’ 추임새를 넣어주면 더 즐겁다고 한다.

지난 겨울에는 2주일 동안 ‘산공부’도 다녀왔다는 최 씨는 돌에 앉아서 소리 연습을 하는 등 아침부터 저녁까지 판소리만 연습했다고 한다. 판소리 외에도 북, 장구, 피아노, 드럼, 아쟁 등 다양한 악기를 다룰 줄 아는 최 씨의 꿈은 판소리 선생님과 재즈 피아니스트다.

지난해 공연 준비를 하다가 목이 갈라졌을 때 가장 힘들었다는 최 씨는 그 아픔을 어떻게 극복했냐는 질문에 “단가(짧은 노래)를 불렀어요”라고 답했다. 단가로 아픈 목을 달래며 목을 풀었다는 의미다.

판소리는 피와 땀을 깎는 과정이라고 한다. 성악은 성대를 매끄럽게 해 고운 소리를 내지만 판소리는 성대결절(무리한 발성으로 발생하는 성대질환)을 몇 번 겪어야 제대로 된 소리가 나온다. 성대에 굳은 살을 만들어 울퉁불퉁하게 해야 쉬고 거친 소리를 낼 수 있다.

손에 굳은살이 박혀도 아픈데 목에 굳은살이 박히면 얼마나 아프겠냐만 최 씨는 이 모든 고통을 이겨냈다. 다른 친구들이 판소리를 배우고 싶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냐는 질문에 그는 “친구들에게 직접 판소리를 가르쳐 줄 수 있어요. 많이 연습해서 판소리 선생님이 될거에요”라고 대답했다.

▲ 판소리꾼 최준 군이 인터뷰 당일 어머니가 운영하는 매장에서 환하게 웃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나눔의 시작, 공연 수익금 기부

“다음 세상에 태어나면 준이 엄마로 살고 싶지 않아요.”최준 씨의 어머니 모현선 씨는 발달장애 자녀를 둔 부모가 지은 책을 읽다 보면 ‘다음 생에 태어나도 너의 엄마가 되어 줄게’라고 말하는 걸 자주 봤지만 “난 아니다”라며 이같이 말했다. 무엇보다 아들이 이렇게 힘든 삶을 다시 사는 걸 원치 않는다는 반어적인 표현이다.

장애아를 가진 부모로서 사람들에게 상처도 많이 받았을 테지만 모현선 씨는 밝고 꿋꿋했다. 아들을 사랑하는 마음으로부터 이러한 힘이 나오는 것 같았다.

최준 씨의 나눔과 비움은 지난 2007년 피아노 선생님과 처음으로 시작됐다. 여러 음악가들과의 협연 공연에서 나온 수익금 전부를 그가 다니던 서울 강북장애인종합복지관에 기부했다.

지난 2008년 첫 개인판소리 공연 수익도 전액 기부했던 최준 씨는 올해는 ‘찾아가는 음악회’라는 봉사단체에 가입해 한 달에 한 번씩 지방 공연을 다니고 있다. 차비 등을 본인이 부담하고 공연을 무료로 제공하는 봉사활동이다. 오는 10월에는 뇌성마비복지관에서 무료 공연을 하기로 했다.

아들을 어떻게 키우고 싶냐는 마지막 질문에 모현선 씨는 “준이는 특히 창작에 재능이 있다. 여러 음악을 경험하게 해주고 많은 악기를 배우게 해서 새로운 음악을 만들어 낼 수 있는 예술가가 되었음 한다”고 답했다.

“엄마, 사랑해요. 같이 놀아주세요”라며 엄마에게 말하는 최준 씨는 꽤 낙천적이고 밝다. 본인이 하고 있는 일들이 다른 사람에게는 큰 희망이 된다는 것을 알고 있느냐는 질문은 미처 하지 못했다.

하지만 그의 모습에서는 어떤 어두운 기색도 찾아볼 수 없었다. 혹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그의 얼굴에 ‘작은 기부천사’의 빛이 깃들어 있는 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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