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2007년 4월은 우리나라 사회복지사상 획기적인 날로 기록돼 있다. 이날부로 ‘기초노령연금법’이 공포됨에 따라 비록 소액이기는 하지만 65세 이상의 전체 노인 중 소득과 재산이 적은 60% 이상의 노인들에게 매달 일정액의 연금이 지급되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지급 대상자는 매월 소득 인정액이 배우자가 없는 경우는 40만 원 이하, 부부의 경우에는 64만 원 이하인 노인들이다. 수급자로 선정되면 노인 단독의 경우에는 최대 8만 3640원을 받고, 부부인 경우에는 20%를 감액한 13만 3820원을 받는다.

당시 노무현 정부는 이 법을 적극적으로 추진하면서 “평생 국가 발전과 자녀들 양육에 헌신하느라 자신의 노후를 대비할 겨를이 없었던 노인들의 생활안정에 도움을 주기 위해 마련한 제도”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이 정책에 대해 당시 한나라당은 ‘전형적인 포퓰리즘 정책’이라고 비난한 반면 진보주의 진영에서는 ‘쥐꼬리만한 노인용돈지급’이라고 평가절하했다. 하지만 어쨌거나 이 제도는 정부가 특정세대에게 일정금액의 재정적 지원을 보편화했다는 점에서 사회복지적 차원에서 큰 의미가 있다.

그런데 이 제도 도입과정에서 여야 간에 제법 큰 설왕설래가 있었던 점에 비추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또 다른 ‘VIP 노령연금제도’가 슬그머니 여야 간의 담합아래 도입됐다. 이름하여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이 지난 2월 은근슬쩍 국회에서 통과된 사실이 반년 만에야 새롭게 드러난 것이다.

6개월 전에 채택된 헌정회육성법 개정안은 작년 9월 국회의장이 제안해, 올해 2월 여야 교섭단체 간의 합의에 의해 국회 운영위에 회부됐다. 법사위에서 별 다른 문제제기 없이 통과된 법안은 역시 다른 법안에 끼여 본회의에 상정됐고, 창조한국당 이용경, 진보신당 조승수 의원 등 2명만이 반대한 채 가결처리됐다.

헌정회는 당초 1968년에 창립된 전직 국회의원들의 친목모임인 ‘국회의원 동우회’가 그 모태로 출발했다가 1991년 5월 31일 대한민국헌정회육성법이 제정 공포되면서 정식 법률단체로 위상을 다졌다. 현재 회원은 1100여 명 정도. 사실 헌정회 육성법은 오래 전부터 시행되어 왔던 법이다. 1988년부터 1인당 월 20만 원씩 전직 국회의원들에게 국가 예산이 지원되어 왔었지만 법률적 근거가 없다는 비판에 따라 이번에 그 근거를 만들면서 아예 지원금도 대폭 상향조정한 것이다.

그런데 이 법이 문제가 된 것은 일반 서민들에 비해 그래도 형편이 훨씬 나은 전직 의원들에게 무조건 월 120만 원씩 지급한다는 데 대한 국민들의 크나큰 거부감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국회가 날이면 날마다 짜증나는 정쟁을 일삼는 등 백해무익한 집단처럼 매도당하는 판에 이 소식이 국민들을 역겹게했던 것이다.

또한 단 하루라도 국회의원 배지를 단 사람이라면 누구라도 수혜대상이 될 수 있다는 내부규정도 문제다. 내부 규정에 따르면 국회의원 재직기간이 1년 미만인 사람, 금고 이상의 유죄확정 판결을 받은 사람, 또 징계위에서 제명 받은 사람 등에게도 지원금을 줄 수가 있게 돼 있다.

즉 선거법 위반이나 부정비리혐의로 국회의원직을 박탈당하더라도 혜택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한번 국회의원은 영원한 국회의원’인 셈이다. 문제가 불거지자 민노당 이정희 의원은 찬성투표를 한 데 대해 사과하고 ‘원로 회원 지원금’을 삭제하는 재개정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 의원은 “전직 국회의원이라는 이유만으로 국가 예산을 투입해서 특별한 노후대책을 마련한다는 것이 현재 우리 사회 보장의 수준에서는 특혜라고 보여질 가능성이 많다”고 지적했다. 백 번 옳은 얘기다. 물론 전직 의원들이라고 다 형편이 좋은 것은 아니다. 끼니를 걱정해야 할 의원들도 있다고 한다. 하지만 수백억의 자산가까지 일괄적으로 혜택을 받는 것은 후안무치의 극치다. 일정 기준을 정해 정말 형편이 어려운 회원들만 지원하도록 혜택범위를 축소하는 등의 재개정이 시급하다.

우리 국회는 과거에도 세비인상안이나 의원 후생복지증진법안 등 자신들의 이해관계가 걸린 법안은 어깨동무를 하듯 완벽한 공조로 처리한 전례가 수두룩하다. 이번 사태도 그 연장선이다. 우리 국회는 언제나 철이 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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