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스포츠 언론정보연구소장 

 

한달간 축구에 흠뻑 빠져 살았다. 늦은 밤 월드컵을 보고 새벽잠을 설치면서도 피곤한 줄 몰랐다. 일상적인 생활에 불편함을 주면서까지 축구를 본 것은 그만큼 가치가 있기 때문이었다. 월드컵에서 펼쳐지는 축구의 향연은 이 시대 최고의 축제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사상 처음으로 러시아에서 열린 2018월드컵은 역대급 대회로서 결코 손색없는 가슴 벅찬 감동과 흥분을 선사했다. 이번 월드컵은 우승팀 프랑스를 비롯해 참가 32개팀의 현주소와 수준을 잘 보여주었다. 팀 성적을 통해 우열이 가려졌지만 이건 결코 축구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생각을 대회 기간 내내 가졌다. 모두 같은 공을 차고 있지만 참가팀들은 제각기 다른 축구를 했기 때문이다. 축구를 통해 각 나라의 특성이 잘 나타났던 것이다. 

우승팀 프랑스를 먼저 살펴보겠다. 1998년 프랑스월드컵 이후 20년 만에 다시 패권을 차지한 프랑스는 ‘무지개팀’이라는 팀 모토에 걸맞게 인종, 문화적 다양성을 보였다. 23명 중 21명이 이민자 집안 출신이었다. 그중 15명은 아프리카계였다. 만19세로 4골을 터뜨리며 ‘영플레이어상’을 수상한 음바페는 카메룬 아버지와 알제리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핵심 미드필더인 포그바는 기니, 응골로 캉테는 말리 출신 부모를 뒀다. 프랑스 축구는 인종의 다양성을 프랑스 특유의 ‘톨레랑스(관용)’로 잘 녹여 선수들의 개인 기량을 잘 풀어 나갈 수 있었다.

사상 처음으로 월드컵 결승에 오른 크로아티아는 비록 프랑스에게 패했지만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투혼을 보였다. 인구 416만의 유럽 소국 크로아티아는 대회 최우수선수상인 골든볼을 수상한 스트라이커 모드리치를 포함해 대부분의 선수들이 1991년 크로아티아 독립전쟁의 아픔을 경험했다. 피 흘린 전쟁 이후 크로아티아는 인구가 줄고, 설 곳을 잃은 젊은 세대가 새 삶을 찾아 조국을 등졌다. 이런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크로아티아는 여러 번 연장전을 거치면서도 강한 정신력을 보여주며 사상 최고의 성과를 올릴 수 있었다.

축구 종가 잉글랜드를 4강에서 누르고 3위를 차지, 역대 최고의 성적을 올린 벨기에는 프랑스와 독일 사이에 끼어 있어 강대국에게 설움을 많이 받았지만 창조적이고 개방적인 자세로 꾸준히 전력을 향상시켰다. 1988년부터 2012년까지 6차례 월드컵 예선 탈락을 거듭했던 벨기에는 한때 피파랭킹이 66위까지 추락했었으나 아프리카계 이민자 출신을 대거 영입하며 유소년 축구 개혁을 통해 에당 아자르 등 황금세대를 키우는 데 성공했다. 

이번 대회서 유럽팀이 강세를 보였던 것은 하나의 경제권으로 통합된 대륙이 된 이후 축구시장이 더 활발하게 오픈시스템으로 교류가 이루어졌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광폭행진’한 유럽세에 비해 남미팀은 브라질, 우루과이 남미 2팀만이 8강전에 올라 퇴조하는 기미를 보였다. 2014년 브라질월드컵에서 브라질이 독일과의 준결승서 1-7로 대패해 큰 충격을 안겨준 이후 남미 축구는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이다. 남미팀들은 축구에 대한 열정은 아주 크지만 경제, 정치의 오랜 불안 등으로 인해 축구 육성에 집중력을 잃어 간다는 지적이다. 브라질을 중심으로 한때 세계를 호령했던 남미 축구시장은 ‘힘과 자본의 논리’에서 밀려나고 있는 것이다. 

아시아팀의 맹주 한국과 일본 등은 전 대회에 비해 작은 바람을 일으켰다. 한국은 세계 랭킹 1위인 전 대회 챔피언 독일을 2-0으로 완파하는 이변을 연출했으며, 일본은 아시아팀으로서는 유일하게 16강에 올랐다. 역동적인 스타일로 결과를 중시하는 한국과 아기자기한 패스로 매뉴얼에 충실한 일본의 사회를 축구가 그대로 보여줬다. 하지만 아프리카팀은 예선에서 일제히 줄줄이 탈락, 한 팀도 16강 토너먼트에 오르지 못해 세계 축구의 변방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이번 월드컵은 축구를 통해 각국의 현실을 그대로 반영해주었던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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