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창우 안전사회시민연대 대표 

 

2016년 총선을 닷새 앞두고 국정원은 북한식당 종사원 12명과 지배인이 탈북했다고 발표했다. ‘한국 드라마를 보며 남한에 대한 동경이 생겨 자유의 나라로 온 20~30대 여성 종업원 12명과 남성 매니저 1명’이라고 밝혔다. 

사건이 불거지자마자 북한은 국정원의 공작이고 유인 납치행각이라면서 송환을 요구했다. 당시에는 북한이 의례 하는 생트집쯤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국정원은 ‘탈북민들은 잘 살고 있다’ ‘탈북민들은 잊어주기를 바란다’는 말을 되풀이했지만 사람들은 ‘탈북민들’의 신변을 걱정했다. 직접 봤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인권·법조·시민단체는 물론 종교계도 만났다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생기는 자연스런 의문이었다. 

민주화를 위한 변호사 모임(민변)은 지난해 6월 ‘탈북민 13명’ 접견을 신청하면서 인권침해 가능성을 제기했다. 또 민변은 북한에 있는 가족들의 위임장을 받아 법원에 인신구제 신청을 했다. 법원은 ‘인신구제 심사’ 재판 과정에서 ‘탈북민들’을 법정에 출두할 수 있도록 하라고 명령했지만 국정원은 탈북민의 신변과 이북에 있는 가족들의 안전을 이유로 거절했다. 어이없게도 법원은 ‘탈북민들’의 출석 요구를 철회해 버렸다. 법원이 인권의 시각에서 원칙대로 대응했더라면 진실을 좀 더 일찍 밝힐 수 있었을 것이다. 

사람들이 설로만 머물던 ‘기획 탈북’이 현실일 수 있다는 판단을 하게 된 건 언론을 통해서다. JTBC는 지난 5월 식당 지배인 허강일씨가 국정원에 속았다면서 심한 배신감을 토로하는 화면을 내보냈다. 이어서 다른 ‘탈북민들’ 네 명의 인터뷰도 전파를 탔다. 지배인은 “여종업원 12명은 어디 가는 줄도 모르고 따라왔다”고 했다. 다른 사람은 한국으로 올 거라고는 꿈속에도 생각 못했다고 했다. 기사 내용을 보면 기획탈북 수준을 넘어 납치사건이다. 

결정적으로 납치설에 힘을 실리게 한 건 ‘탈북민’을 직접 만난 유엔 인권보고관 토마스 오헤아 킨타나의 말이었다. 그는 지난 10일 면담 결과를 발표하면서 “이들 중 일부는 한국에 오게 됐을 때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한 상태로 한국에 오게 됐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이어 ‘중국에서 북한인 납치 가능성’을 언급하면서 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사태는 일파만파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그의 말이 사실로 확인되면 한국은 백주대낮에 주권국이자 유엔 가입국의 국민을 납치하는 나라로 공인되는 것이니만큼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사태가 이 지경이 됐는데도 통일부는 여전히 기존 입장과 변화된 게 없다면서 “자유의사로 입국”했다고 말하고 있다. 눈 가리고 아웅 하는 거다. 진실을 덮는 게 불가능한 상황이 왔음에도 무엇이 두려워 납치했다는 걸 인정하지 못하는가. 문재인 정부가 이 문제를 적당히 넘어가려고 하다가는 큰 코 다치게 된다. 진실 앞에 겸손해야 하다. 진실을 덮으려고 하면 할수록 자꾸 거짓말을 해야 하고 거짓말은 결국 더 큰 거짓말이 되어 수습 불가능한 상황에 직면하게 된다. 진실엔 용기가 필요하다. 

거꾸로 생각해 보자. 대한민국 국민들이 중국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었는데 북한의 정보기관이 지배인을 꼬드겨 식당 종업원 12명을 말레이시아를 거쳐 북한으로 데려가 버렸다면 대한민국 국민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또 대한민국 정부는 어떤 입장을 취하게 될까. 북한인 납치 사건은 반인권적일 뿐만 아니라 천륜에 어긋나는 행동이다. 문재인 정부는 촛불항쟁으로 탄생했다. 왜 진실을 드러내기를 꺼리는가. 

대통령이 직접 지시해 진상규명을 철저히 하고 조국을 버린 ‘탈북민’ 취급을 받은 북한인들과 가족들, 북한 정부에게 정중히 사과하고 원상회복 조치를 취해야 마땅하다. 납치에 관여한 자들은 누구든지 엄하게 처벌하고 법과 제도를 바꿔서 다시는 똑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도록 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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