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세미 덩굴손

홍수안

 

혼자 힘으로 올라갈 수 없어
가녀린 덩굴손 내밉니다.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던
말라붙은 나뭇가지가
손을 잡아주고
녹슨 철사 줄도
제 몸을 빌려 줍니다.

나를 감고 올라가라고,
하늘로 하늘로 뻗어 올라
여름 햇살 가려 줄
시원한 그늘
만들어 주라고

 

[시평]

여름날 수세미가 넝쿨손을 뻗으며 위로, 위로 올라간다. 수세미의 넝쿨손은 다른 넝쿨식물들에 비하여 가녀리고 또 연약해 보인다. 이러한 수세미 넝쿨손이 위로, 위로 올라가는 그 모습이 왠지 안쓰러워 보여, 비록 말라붙어버렸지만, 나를 붙들고 올라가라고 마른 나뭇가지가 붙들어 준다. 그런가 하면 오랫동안 비 맞고 눈 맞고 바람 맞아 몸은 녹슬고 망가져 보이지만, 이 몸이라도 붙들고 올라가라고 녹슨 철사가 제 몸을 빌려준다.

그렇다. 실은 세상이 각기 저마다 자신 하나만을 위하여 살아가려고 애를 쓰는 듯이 보이지만, 가만히 잘 들여다보면, 세상의 모든 것들은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하고 또 도와주며 함께 살아가지 않는 것이 없다. 그래서 생태학자들은 이러한 모습을 싸움(Fight)이 아니라, 어려움을 헤쳐 나가는 분투(Struggle)라고 말한다. 다른 존재를 짓밟고, 또는 다른 존재에게 해를 주며 혼자만이 살아가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는 말씀이다.

서로가 서로에게 의지가 되고 도움이 되는 ‘더불어 사는 삶’, 참으로 아름답지 않을 수 없다. 여름날 수세미의 가녀린 넝쿨손에서 우리가 읽을 수 있는 삶의 지혜이다. 넝쿨손은 위로, 위로 올라가서 자신이 무슨 높은 지위를 가지려는 것 또한 아니다. 여름날 뜨거운 햇살을 가려줄, 그래서 모두에게 그늘을 만들어 주고 있으니, 이 또한 더불어 사는 모습이 아니겠는가.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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