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출토 인골을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출토 인골을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부여문화재연구소 조사결과
나무상자에 담긴 인골 발견
102개 조각 분석, 성별은 男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선화공주님은 남몰래 사귀어 두고 서동방을 밤에 뭘 안고 가다.”

이는 4구체 향가로 잘 알려진 ‘서동요’다. 신라 제26대 진평왕 때 지었다는 민요 형식의 노래로 오늘날까지 전해지고 있다. 설화에 따르면, 서동은 신라 진평왕의 셋째 딸 선화공주가 아름답다는 말을  듣고 그녀를 사랑했고, 신라의 서울인 경주로 가서 아이들에게 마를 나누어주며 ‘서동요’를 가르쳐 주고 부르게 했다. 노래 내용은 선화공주가 밤마다 몰래 서동의 방을 찾아간다는 것이었는데, 이 노래가 대궐 안까지 퍼지자 왕은 마침내 공주를 귀양 보내게 됐다. 길목에 나와 기다리던 서동은 함께 백제로 갔고, 서동은 임금이 되고 선화는 왕비가 됐다고 한다.

익산 쌍릉(대왕릉) 조사 전 모습(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익산 쌍릉(대왕릉) 조사 전 모습(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대왕릉서 인골 발견

이와 관련해 최근 ‘서동요’ 설화 주인공인 백제 무왕으로 추정되는 인골이 발견됐다.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18일 오전 기자간담회를 통해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인골에서 남성 노년층의 신체 특징과 병리학적 소견을 확인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동안 쌍릉은 백제 시대 말기의 왕릉급 무덤이며, 규모가 큰 대왕릉을 서동 설화의 주인공인 무왕의 무덤으로 보는 학설이 유력했는데, 이번 인골 분석 결과도 이를 뒷받침할 수 있는 근거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쌍릉의 존재는 조선 전기에 편찬된 ‘고려사’에서 처음 소개됐다. 고려 충숙왕 때(1327년) 도굴됐다는 사건기록도 남아 있다.

1917년 조선총독부는 쌍릉에 대한 조사를 단 며칠 만에 걸쳐 진행했다. 당시의 복명서에는 ‘마한시대의 왕릉으로 여겨졌으나 대왕릉과 소왕릉 모두 백제 말기의 능묘이다’라고 기록했다. 또 이미 도굴돼 목관재와 금동제목관장식품 등 일부만 남아있었다고 했다.

이 유물들은 1918년 조선총독부박물관에 인계됐다. 그러다 1937년 교토대학이 쌍릉과 부여 능산리 동고분군의 목관재를 분석했는데, 모두 금송으로 밝혀졌다. 하지만 이러한 중요성에도 1920년 고적조사 보고서에는 13줄의 내용, 2장의 사진, 2장의 도면만 공식기록으로 남겨졌다.

인골의 상태확인과 분류작업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인골의 상태확인과 분류작업 모습 (제공:문화재청)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이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 8월부터 백제왕도 핵심유적 보존관리사업의 하나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석실 끝부분에서 여태까지 그 존재가 알려진 바 없던 인골 조각이 담긴 나무상자를 발견했다. 100년 전 일제가 발굴하면서 다른 유물들은 유출했지만, 이는 꺼내 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 추정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02개의 조각으로 남아있던 인골을 분석한 결과, 성별은 남성인 것으로 조사됐다. 팔꿈치 뼈의 각도(위팔뼈 안쪽위관절융기 돌출양상), 목말뼈(발목뼈 중 하나)의 크기, 넙다리뼈 무릎 부위(먼쪽 뼈 부위)의 너비가 남성일 확률이 높다는 것이다.

이번 조사에 참여한 이우영 카톨릭대학교 해부학교실 박사는 “나이는 최소 50대 이상의 60~70대 노년층으로 봐도 큰 무리가 없다”며 “목의 울대뼈가 있는 갑상연골에 골화가 상당히 진행됐고 골반뼈 결합면의 표면이 거칠고 작은 구멍이 많이 관찰되며, 불규칙한 결절이 있다”고 말했다. 이어 “넙다리뼈의 최대 길이를 추정해 산출한 결과 키는 161㎝에서 최대 170.1㎝로 추정된다”며 “훨씬 후세대에 속하는 19세기 조선 시대 성인 남성의 평균 키가 161.1㎝인 것을 고려한다면 비교적 큰 키”라고 밝혔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출토 인골을 공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국립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출토 인골을 공개하고 있다. 사진은 3D복제품의 모습.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또한 남성 노년층에서 발병하는 등과 허리가 굳는 증상(광범위특발성뼈과다증), 다리와 무릎의 통증(정강뼈와 무릎뼈의 척추외골화)이 있었을 것으로 파악된다. 옆구리 아래 골반뼈(엉덩뼈능선)에 숫자 1모양으로 골절됐다가 치유된 흔적도 있었다.

무왕의 출생연도는 알려지지 않았지만 600년에 즉위해 641년에 사망했다. 삼국사기(1145)에는 ‘풍채가 훌륭하고 뜻이 호방하며, 기상이 걸출하다’고 소개돼 있으며 미륵사지 서탑 금제사리봉안기(639)에서는 대왕폐하로 불린 것을 알 수 있었다.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출토 인골 분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가 18일 오전 서울 종로구 고궁박물관에서 열린 기자설명회에서 지난 4월 익산 쌍릉(대왕릉)에서 발견된 출토 인골 분석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8

이에 대해 이상준 국립부여문화재연구소 소장은 “600년에 즉위해 641년 사망했다는 무왕의 재임 기록으로 보아 10대나 20대에 즉위한 경우 무왕의 사망 나이가 남성 노년층으로 추정되는 쌍릉의 인골 추정 나이와 비슷하다”고 밝혔다.

아울러 가속 질량분석기(AMS, Accelerator Mass Spectrometer)를 이용한 정강뼈의 방사성탄소연대측정 결과, 보정연대가 서기 620~659년으로 산출되어 인골의 주인은 7세기 초중반의 어느 시점에 사망한 것으로 확인된다.  이 소장은 인골 분석결과 사망 시점이 7세기 초반부터 중반 즈음이라는 이라는 것과 익산을 기반으로 성장해 같은 시기에 왕권을 확립한 백제 무왕의 무덤이라는 역사적 가능성을 보여준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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