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양의 명소 연광정에서 대동강을 끼고 부벽루에 오르다 보면 한-양옥 절충의 우람한 조선집이 나타난다. 아름드리 기둥에는 주홍칠을 하고 벽마다 그림을 그려놓은 이 집이 당시 팔도에 유일했던 평양 기생학교다.” -이규태 역사 에세이 中-
“놀이터의 노래에 목이 쉬어/ 돌아와서 화가 나 함부로 뜯는 가야금이여 줄이 끊어지도록 뜯으며/ 뜯으며 이 밤을 새일 거나” - 놀이터의 노래에, 장연화(1920년대 평양기생)-
[천지일보=백은영 기자] 한옥과 양옥을 절충한 듯한 모습의 평양기생학교 전경이다. 당시 명성이 자자했던 곳답게 건물이 크고 깨끗하다. 사진 속 학교 앞에 인력거가 놓여 있는 것으로 보아 공연 등으로 외출할 일이 있을 때 사용했던 것으로 보인다. 사진은 인쇄물(엽서)로 만들기 위해 채색한 것이다.
평양기생학교는 평양의 명소로 손꼽히는 연광정에서 대동강을 따라 오르다 보면 보이는 곳에 위치해 있었다. 일제강점기인 1930년대에는 조선을 방문하는 관광단이 가장 보고 싶어 하는 것 중 하나가 기생이었고, 그중에서도 평양기생이었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
평양기생학교는 8세 이상이면 들어갈 수 있었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3년의 과정이 3학기로 나누어 진행되며 시험으로 진급했다. 학습과목으로 가곡, 민요, 잡가, 시조 등 조선성악은 물론, 가야금과 거문고, 양금(洋琴) 같은 전통악기의 교습 및 검무(劍舞)·우의무(羽衣舞) 등의 전통춤이 포함됐다. 또한 시문(詩文)과 서예(書藝) 및 사군자(四君子)를 비롯한 인물화와 산수화, 일어(日語)와 독본(讀本) 및 회화(會話) 등의 교양과목도 이수해야 했다.
평양기생학교 옆쪽 대동강변에는 학생들이 그네를 탈 수 있게 만든 곳도 있다. 그네의 규모와 그 높이는 사진만으로도 가늠이 될 정도로 높다. 이들은 그네를 타며 담력을 키웠는데, 그네타기도 수업의 하나였다. ‘안방독립운동가’로 불릴 정도로 두려움이 없었던 이들의 담력이 그냥 생겨난 것은 아닌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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