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네티즌들의 공분을 산 ‘개똥녀’와 ‘땅콩남’

전통예절 빈자리 에티켓이 대체… ‘격변의 역사’ 원인으로 지적
전문가, 나라에 대한 자부심 있어야 禮 회복도 가능

[천지일보=백하나 기자] 요즘 인터넷상에서는 인간의 기본적인 도덕성을 잃은 이들을 일컬어 ‘△△녀’ ‘OO남’과 같은 별칭을 붙인다. 대표적으로 지하철에 애완견을 데리고 탄 여인이 강아지의 배설물을 치우지 않고 내려 ‘개똥녀’라는 이름이 붙었다. 이후 키 180cm 이하는 실패자라고 불러 논란이 된 ‘루저녀’, 지하철에 땅콩껍질을 그대로 버리고 내린 ‘땅콩남’, 엄마뻘 되는 환경미화원에게 쓰레기를 치우라며 욕을 한 ‘경희대 패륜녀’ 등등 동방예의지국을 무색케 하는 사건들이 연일 터져 나오고 있다.

요즘 젊은이 사이에서는 전통예절보다 글로벌 비지니스·글로벌 에티켓과 같은 서양식 ‘매너’ 교육이 인기다. 충북의 모 대학의 작년 교양 강좌 순위에 따르면 글로벌 에티켓 수강생(2101명)이 가장 많았고 증권투자(1341명), 신화와 사랑(1259명) 순으로 집계됐다.

젊은이들의 이 같은 강좌를 주로 찾고 있는 데는 취업난을 해소할 방책으로 여겼기 때문으로 분석된다. 서울의 한 컨설팅 전문가는 “요즘은 세계화되는 추세다 보니 기업·학교·관공서 등에서 글로벌 에티켓을 요구하고 있다”며 “강좌신청도 많이 들어오고 기업도 이를 취업에 반영하고 있다”고 전했다.

앞선 사례와 같이 얼마 전부터 한국 사회는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말을 쓰기 곤란할 만큼 예의를 잃어가고 있다. 예의의 상실은 곧 사회 질서의 붕괴, 자긍심 부재로 인한 가치관의 혼란, 타문화의 즉각적 수용으로 이어져 심각한 사회현상으로 대두되고 있다.

이학규 운봉 공안서당 대표는 “우리나라는 왜정 36년을 겪으면서 고유한 미풍양속이 해체되기 시작해 6.25 전쟁, 미 군정, 군사정권 등을 겪으면서 예의 혼선이 오기 시작했다”며 예의가 무너지게 된 원인을 지적했다.

송병승 효충예실천운동본부 위원장 또한 격변의 역사에 따른 예의 붕괴를 동의하면서 “급속한 성장에 따른 성과주의, 물질주의가 과정과 절차를 중요시 여기던 우리의 의식구조를 바꿔놨다”고 말했다.

또 현대에 들어서는 예의 형성 배경의 기본이 되는 가족이 점차 해체돼 가고 있는 점과 세계화에 따른 개인의 의식적 노력 부재도 예의를 잃어가는 원인으로 언급됐다.

한재오 남원서당 대표는 “예를 들어 한국의 예절은 부모님이 수저를 먼저 드신 후에 자녀가 수저를 드는 것과 같이 ‘절차’가 있는데 부모는 자녀를 ‘오냐 오냐’하면서 이러한 절차를 가르치지 못하고 있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그는 “먹고 살기 바빠 가르치지 못한 어른, 가정에서 배우지 못한 아이도 예의 붕괴의 원인일 것”이라고 주장했다.

예의 회복의 중요성에 대해 전문가들은 한국 전통이 가진 역사성을 꼽는다.

한국은 길게 단군 왕검 시대부터 예의 기반이 형성돼 발전을 거쳐 내려왔지만, 15세기 프랑스에서 ‘에티켓’이 발달한 서양은 그 뿌리가 깊지 못하고 전문가들은 말한다.

참고로 서양의 ‘에티켓’은 ‘estiqer(붙이다)’라는 프랑스어에서 기원했다. 궁중에서 궁중인의 지위와 명예를 알리기 위해 편지 형식을 바꿔 쓸 필요가 있어 예의범절을 가리키게 된 ‘붙이는 표’에서 나왔다.

반면 한국은 약 2300년 전 중국에서부터 한국을 예의 나라로 칭함을 받고 있다. 공자의 7대손 공빈이 우리나라에 대해 쓴 ‘동이열전(東夷列傳)’에 보면 “이들은 단군이라는 훌륭한 임금을 둬서 남의 나라를 침범하지 않고 풍속이 순후해서 길을 가는 이들이 서로 양보하고, 음식을 먹는 이들이 먹을 것을 미루며, 남자와 여자가 따로 거처해 섞이지 않았다”고 나와 있다.

한국은 약 5000년의 오랜 역사를 바탕으로 의식주에서부터 관혼상제, 인사·호칭에 이르기까지 예의범절이 생활 곳곳에 발달해 있다.

송병승 효충예실천운동본부 위원장은 “어느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예절이 다양하게 발전한 나라가 없다”며 “이는 우리의 예절이 뿌리가 깊고 고차원적인 문화라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전했다.

특히 한국의 예절은 뿌리가 깊을 뿐 아니라 우주론을 바탕으로 한 정신문화가 발달했다는 점도 자랑으로 꼽힌다.

남상민 한국예절문화원 원장은 “서양의 에티켓 문화는 과학에 바탕을 두지만 한국은 정신문화를 바탕으로 한 우주론적 관점에서 예의가 발전했다”며 “마음과 정신, 지혜가 담긴 철학성을 가졌다”고 말했다.

한 가지 예로 한국의 의식주는 자연계의 이치에 따라 형성된 24절기를 바탕으로 형성됐다. 따라서 자연을 거스르기보다 만물 이치를 연구하는 방식으로 예절이 실생활을 파고든 것이라는 게 전문가의 설명이다.

세계인들은 한국의 전통예절을 배우러 오고 있는 추세임에도 국내에서는 한국의 유구한 예절을 등한시하는 현실에 대해 전문가들은 안타까워한다. 그러면서 우리 것을 바로 이해하는 노력 위에 다른 문화를 수용하는 노력을 해야 한다며 뿌리가 바로 설 때 예의를 회복할 당위성도 서게 된다고 강조했다.

이학규 대표는 “예의의 기본 정신은 상대방을 존중해주는 데서 시작하지만 오랜 역사를 간직한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이 없고서야 다른 문화를 어떻게 수용하겠느냐”며 “우리 것이 세계적인 것이란 말이 있듯 한국의 전통예절을 바로 이해하고 회복해 나가자”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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