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세계미래포럼이 주최한 CEO과정에서 우리의 미래, 다문화에 달려있다란 주제로 강연하는 이현정 소장 (제공: 한국다문화센터)
이현정 한국다문화센터 연구소장

오늘날 한국 사회에는 전체 인구의 2%가 넘는 120만 명의 이주민이 한데 어우러져 살고 있다. 지난해 8월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외국인 수는 총 110만 6884명으로 2008년에 비해 24.2% 증가한 수치로 매년 급격히 그 수가 늘어나고 있다.

특히 국제결혼도 전체 결혼의 평균 12%, 농촌지역 결혼의 40%에 이르고 있어 그 수는 가속화될 전망이다. 게다가 세계 최저 출산율과 초고속 고령화를 보이고 있는 한국 사회는 저조한 출산과 노동력의 공백을 메울 이주민 유입의 필연성이 부각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에 따라 다민족·다문화시대를 맞아 우리 사회 인식의 변화가 요구되고 있다. 본지는 급변하는 다문화사회에서 내·외국인이 서로 화합하고 상생하며 소통하는 열린 사회로 나아갈 수 있는 방안에 대해 이현정 한국다문화센터 연구소장에게 들어봤다.

 ◆한국, 다문화 인식도 결여 심각

한국 최초의 다문화 어린이로 구성된 레인보우코리아의 합창단장을 맡고 있는 이현정 소장은 “다문화 자녀는 우리의 핵심이자 미래를 결정지을 주춧돌”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다문화에 대한 국민적 공감이나 인식이 전혀 돼 있지 않아 안타깝다고  덧붙였다.

다문화센터를 창립한 후 이 소장이 가장 먼저 실시한 것은 다문화 자녀와 대학생과의 일대일 멘토링이었다. 멘토링을 통해 많은 다문화 자녀들이 자신감이 없고, 위축돼 있으며 기초학습이 부진해 다른 아이들과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것을 알게 됐다.

더욱이 대학생도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전혀 안 돼 있는데다 아이들의 교육을 책임질 교사들 대부분도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부재하다는 것이 이 소장의 견해다.

한 번은 강원교육청에서 교장들이 모인 자리에서 다문화 인식의 중요성에 대해 강연을 한 적이 있었는데 참석했던 한 교장이 “우리 학교엔 다문화 자녀가 없어 이 강연을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다”고 말해 교육 일선에 다문화에 대한 인식이 얼마나 무지한지 그 심각성을 느꼈다고 한다.

이어 “다문화 자녀가 그 학교에는 없다 하더라도 그 학교를 졸업한 학생이 사회에서 다문화 자녀를 만나게 되는 것”이라며 “다문화는 세계적·사회적 흐름인데 편협한 사고방식으로 아이들을 가르치면 어쩌나 하는 우려감이 들었다”고 말했다. 

이 소장은 현재 다문화 흐름을 고속도로에 비춰볼 때 다문화 진행 속도는 150㎞, 정부의 다문화 정책은 30~40㎞, 국민 인식은 10㎞ 내외로 불균형적으로 가고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한쪽은 가려는 의지도 없는데 억지로 잡아끌어야 하는 입장이라면 조화로운 사회 구성이나 분위기 조성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 이주민들이 지난 5월 20일 서울시청 앞에서 열린 세계인의 날 행사에서 한국 전통체험에 참여하고 있다. (제공: 법무부 출입국·외국인정책본부)

◆다문화 2세 교육 중요

이 소장은 최근 결혼 이주여성인 탓티황옥 씨의 죽음을 예로 들면서 한국 사회가 이주여성을 돈을 주고 사는 하나의 상품으로 보는 의식과 마인드가 저변에 깔려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이 같은 일은 지금도 비일비재하게 발생하고 있다고 했다. 특히 동남아 등 후진국에서 온 여성에 대한 배척과 무시, 그리고 지나친 우월의식에 사로잡혀 있어 문제가 지속적으로 일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주노동자의 경우 돈만 벌고 자기 나라로 돌아갈 사람이란 인식 때문에 지원이나 복지 차원에서 소홀한 경우가 다반사라고 했다.

“우리나라 다문화 현황을 보면 2/3 정도가 이주노동자다. 국제간 경제통합으로 인해 노동의 이주가 엄청나게 활발해졌다”며 “이들이 한국에서 돈을 잘 벌고 잘 살 수 있도록 배려하는 것이 국가 홍보이자 돈의 흐름을 원활히 할 수 있는 네트워크”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이 소장은 자기 의지로 한국에 온 이주노동자나 결혼 이주여성보다는 자기 의지와 상관없이 다문화 가정에서 태어난 다문화 2세들의 어려움이 더 크다고  설명했다.

대부분의 이주노동자나 결혼 이주여성은 돈을 벌거나 결혼을 하기 위한 목적으로 한국에 오기 때문에 무시를 당하거나 힘든 일이 닥치더라도 참고 견뎌내지만 그들의 2세는 그렇지 못하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다문화 아이들에게 자신감과 희망을 심어주는 교육 환경의 분위기가 절실하다”며 “그들은 언어에서 기본적으로 이중 언어를 구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기 때문에 국가적 인재로 키워야 한다”라고 강조했다.

특히 이 소장은 “학교 현장에서 똑같이 공부를 시작하지만 공부를 못하고, 항상 과제물을 안 가져와서 뒤처지는 학생이 대부분 다문화 가정 아이들”이라며 “이는 한국어에 미숙한 다문화 가정 엄마들이 유인물을 읽는 데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사실 초등학교의 숙제는 엄마의 도움을 많이 필요로 하다보니 한국어에 서툰 다문화 가정 엄마들은 아이의 숙제를 돌봐주기 힘들다. 그래서 그 영향을 아이들이 고스란히 받아 다문화 가정 자녀들이 학교에서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다문화 아이들은 이러한 악순환 속에 결국 학년이 올라가면서 세계적인 교육열을 자랑하는 대한민국 교육에 적응을 못하고 학교를 그만두는 경우가 많다.

또한 그는 정부의 통일되지 못하고 혼란스러운 다문화 정책의 개선 필요성에 대해서도 이야기했다.

이 소장은 정부의 다문화 정책 관련 법들이 많이 있지만 표면적이거나 과시적인 행사로 그칠 때가 많다고 말했다.

주무부처인 법무부를 비롯해 여성가족부·보건복지부 등에서 다문화 관련 정책을 경쟁적으로 펼치고는 있지만 응집력이 없기 때문에 하나로 통합된 기본 법안을 마련하고 그 토대 안에서 일사분란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해야 한다는 것이 이 소장의 주장이다.

정부 또한 갑작스럽게 밀려온 다문화 흐름으로 인해 정책에 큰 혼란과 혼선을 빚고 있다는 것이다.

이 소장은 “여러 부처가 다문화 정책을 표방하고 있지만 단순 표면적인 행사에 그쳐 에너지만 소모되는 것이 안타깝다”며 “한국어에 능숙한 이주민은 계속 혜택을 받지만 한국어도 서툴고 인터넷 문화에 약한 수많은 이주민들이 여전히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고 말했다.

◆“‘다문화’란 용어 없어졌으면”
“아직은 제가 다문화 운동을 한창 하고 있는 중이기 때문에 결론적으로 말하긴 어렵지만 다문화란 용어가 없어질 정도로 우리나라에 다문화가 자연스러워졌으면 합니다.”

레인보우코리아 합창단에 소속된 다문화 아이들을 일주일에 두 번씩 본다는 이 소장은 이제 그들이 거의 가족과 다름없이 느껴진다고 한다.

▲ 지난해 10월 유니세프 후원기금 마련 행사에서 레인보우코리아 합창단이 공연을 하고 있다. (제공: 한국다문화센터)

▲ 이현정 소장이 공연 나가기 전 대기실에서 레인보우코리아 합창단 단원들과 사진을 찍고 있다. (제공: 한국다문화센터)

이 소장은 “보통 다문화 아이들끼리는 자연스럽게 잘 뭉친다. 그런데 우리의 의식은 새카만 흑인과는 악수도 못할 것 같다고 생각한다”며 “다 같은 대한민국에 사는 국민으로서 편견과 차별이 없는 인간 대 인간으로 자연스러워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그는 “혈통이나 피부색을 따지지 않고 대한민국이란 구호 아래 잘 살 수 있는 분위기가 조성될 때 다문화란 용어가 없어지게 될 것”이라고 덧붙였다.

실제로 레인보우코리아에 속한 다문화 아이들을 지켜봐온 이 소장은 레인보우코리아가 한국사회 다문화의 샘플링이라고 말했다.

이들에게선 더 이상 자신감 없고 위축된 모습을 발견할 수 없다. 합창단 활동을 통해 아이들이 자신감이 생겼고 표정도 이전보다 밝아졌다.

레인보우코리아 합창단이 결성될 초기에 많은 언론사의 조명을 받으면서 아이들은 그동안 자신들이 당했던 무시와 편견 등에 복받쳐 울기도 했었다고 한다.

하지만 큰 무대에 서는 일도 많아지고 활동력이 왕성한 그들의 면면을 보게 된 주변 아이들이 이제는 그들을 따돌리는 대상이 아닌 부러움의 대상으로 바라보게 됐다.
 
이 소장은 “취재진들이 이 아이들을 보면 다들 다문화 아이들이 맞는지 확인할 정도”라며 “다문화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어 너무 뿌듯하고 보람 있다. 이제는 한 집안 식구가 됐다”고 말했다.

끝으로 그는 다문화 국가로서 화합과 상생을 이루기 위해선 무엇보다도 단일민족 의식이나 민족 우월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 소장은 “단일민족을 고수하던 일본과 독일이 일찌감치 다문화주의를 표방하고 있다”며 “우리만 성벽을 쌓을 순 없다. 우리는 후발주자로서 일본과 독일의 잘된 점과 실패한 점을 잘 연구해 좋은 방향으로 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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