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원풍속도-제7면 남녀 야행도(男女 夜行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풍속도-제7면 남녀 야행도(男女 夜行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조선 말 성협이 그린 풍속화의 원본, 유려한 필치

단원 23세 묵기 단원풍속화 편년연구 획기적 자료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화가 김홍도(檀園, 金弘道, 1745~?)의 새 풍속화 7점이 공개됐다. 풍속화첩은 30.5㎝X28㎝ 크기의 그림을 반으로 접은 절첩식(折帖式)이며 모두 7장, 14면으로 돼있다. 표지는 얇은 나무로 돼 있으며 왼쪽에 ‘檀園風俗畵帖(단원풍속도첩)’이라는 글자가 종서(세로쓰기), 해서(한자 서체의 하나)로 쓰였다. 안의 그림은 장지에 담채(엷은 채색)로 그렸는데 기존의 단원 풍속화 풍격을 닮고 있다.

이 풍속화의 맨 끝장에는 단원의 나이 23세에 그렸다는 ‘戊子淸和 金弘道寫(무자청화 김홍도 사)’라는 묵기가 있어 조선 영조 44년 1768년 4월에 그린 사실을 알려 주고 있다. 이 해는 단원이 도화서원이 된지 5년 뒤의 해로서 장안에 명성을 날린 시기가 된다. 지금까지 전해오고 있는 김홍도 풍속화(국립박물관 소장보물 제 527호 지정)에는 그린 시기가 적혀 있지 않아 막연히 30대 이후 작품으로 추정해 왔다.

단원 풍속도가 모아진 책 표지(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 풍속도가 모아진 책 표지(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이 풍속화는 전 충북도문화재 위원인 이재준 역사연구가가 지인이 소장한 김홍도 풍속화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확인해 학계에 공개한 것이다. 국립박물관 재직 때 단원 그림을 정리하는데 노력을 기울인바 있던 미술사학자 강우방 박사(전 경주박물관장, 현 일향문화재연구소장)는 “풍속화를 친견하고 터치와 음영의 표현 등이 완벽한 김홍도풍이며 진품이 틀림없다”고 말하고 “김홍도 풍속화 가운데 가장 뛰어나며 그린 시기를 알려주는 묵기가 완연해 문화재로 지정 보존해야 할 것 같다”고 평가했다.

이 화첩은 1890년대 한국에 나와 있던 프랑스인 Moniez 신부가 수집, 1912년 4월 22일 가져가 1997년 프랑스 제일의 타장(Tajan) 옥션에 나온 것을 지금의 수장가가 경매를 통해 낙찰을 받아 한국에서 20년간 소장하고 있다.

이 풍속화를 찾은 이재준 역사연구가는 “이름 밑에 찍힌 전각(篆刻) 도인(圖印)은 단원이 제일 숭배했던 당나라 시성 두보(杜甫)의 ‘자문(紫門)’이란 시에 나오는 한 구절 ‘杉淸延月華(삼청연월화)’로 확인했다”라고 말하고 “단원이 젊은 시기부터 스승인 표암 강세황의 영향을 받아 두보의 시문에 심취했음을 알 수 있게 해 준다”고 말했다.

19세기 말 화가인 성협이 김홍도의 그림을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 (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19세기 말 화가인 성협이 김홍도의 그림을 모사한 것으로 보이는 그림 (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이 그림은 현재 국립박물관에 소장된 성협(成浹)의 풍속화 여러 장과 같은 내용의 그림으로 비교되는 작품임이 밝혀졌다. 성협은 그 신분을 알 수 없는 사람으로 학계는 김홍도와 김양기 이후 19세기 말에 살았던 인물로 알려져 있다. 이씨는 “성협의 풍속화는 자세히 살펴본 결과 이번에 찾아진 풍속화를 보고 모사한 것으로 보이며 지질(紙質)이나 품격이 이번에 찾아진 풍속화에 비해 현저히 격이 떨어진다”고 밝혔다.

풍속화의 각 면을 상세히 설명해 본다.

단원 풍속도-제1면 수하탄주도(樹下彈奏圖) (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 풍속도-제1면 수하탄주도(樹下彈奏圖) (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1면 수하탄주도(樹下彈奏圖)

나뭇잎이 무성한 여름. 나무 그늘아래 큰 흑립(黑笠)을 쓴 한 사대부가 거문고를 탄주하고 있으며 부채를 손에 쥔 의관이 수려한 중년의 사대부와 담소를 나누고 있다. 그 옆에는 탕건을 쓴 젊은 청년이 두 사람의 대화를 경청하고 있는 그림이다.

거문고를 탄주하고 있는 노인은 볼에 살이 없는 상이며 그 앞의 사대부는 풍채가 늠름하다. 대화를 듣고 있는 젊은 청년은 등치가 크고 얼굴은 준수하며 살이 찐 홍안이다. 김홍도가 잘생긴 얼굴을 한 것은 여러 글에도 나타난다.

단원 풍속도제2면 출행도(出行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 풍속도제2면 출행도(出行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2면 출행도(出行圖)

유건을 쓴 여섯 명이 우산과 지물을 메고 나가는 것을 그린 그림이다. 등장하는 인물은 모두 7명이며 유건을 쓴 어른 6명과 아이 1명이다. 선두에는 안내하는 사람이 있고 맨 뒤 사람은 키가 큰 사각등을 들고 있다.

가운데 있는 사람은 먹물이 매달린 지통을 메고 있다. 이들이 지닌 지물을 보아 단원이 근무했던 도화서원들의 출행으로 보이는 데 건장한 청년은 등에 우산 같은 도구를 짊어지고 있다. 맨 뒤 사람은 손에 등을 들고 있는데 어린아이가 옷깃을 잡고 있으며 매우 난처한 표정을 짓고 있다.

단원 풍속도-제3면 동자 조어도(童子釣魚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 풍속도-제3면 동자 조어도(童子釣魚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3면 동자 조어도(童子釣魚圖)

이 그림은 소년 두 명이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고 있는 그림이다. 한명은 서 있으며 다른 한명은 바위에 걸터 앉아있다. 단원은 소년 시절 경기도 안산 바닷가에서 낚시를 하며 살았을 것이다. 이는 단원이 고향을 생각하며 추억을 그린 것으로 상정할 수 있다. 바위에 걸터앉은 소년의 얼굴은 1, 2면에 나오는 통통하게 살찐 홍안이다.

단원 풍속도-제4면 마상 유람도(馬上 遊覽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 풍속도-제4면 마상 유람도(馬上 遊覽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4면 마상 유람도(馬上 遊覽圖)

봄철에 한 사대부가 말을 타고 유람하면서 한 소년이 장죽 도움을 받는 장면이다. 초립을 쓴 마부는 수염이 있으며 손에는 채찍을 들고 있다. 마상의 흑립을 쓴 사대부는 정장차림으로 풍채가 수려하다. 노새는 힘이 들어 잔뜩 눈을 찌푸린 해학적인 모습이다.

미소를 머금은 소년은 장죽을 사대부에게 주고 있으며 마상의 주인공은 얼굴에 덕성이 넘친다. 소년은 1, 2면에 등장하는 얼굴과 닮아 있다.

단원 풍속도-제5면 춘절야유도(春節野遊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 풍속도-제5면 춘절야유도(春節野遊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5면 춘절야유도(春節野遊圖)

매화꽃이 피는 봄철, 5명이 모여 앉아 술과 고기를 구어 먹는 행락 야유도다. 쇠 화로를 사이에 두고 왼쪽의 젊은 청년이 고기를 굽고 있으며 세 사람은 구운 고기를 열심히 먹고 있다. 맨 오른쪽의 갓을 쓴 한 사람은 얼굴을 돌려 막걸리를 마시고 있다.

가운데는 수염이 달린 나이 먹은 사람이 있어 나이를 따지지 않는 ‘忘年之交(망년지교)’의 풍속을 보여준다. 고기를 굽는 청년은 수염이 없으며 얼굴은 젊고 아름답다. 1, 2면에 나오는 젊은 청년의 모습이어서 단원이 선배들과 어울려 고기를 대접하는 풍속도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김홍도는 성품이 겸손하고 친구 사귀는 것을 좋아하여 많은 사람이 그와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고 한다.

단원풍속도-제6면 투전도(鬪戰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단원풍속도-제6면 투전도(鬪戰圖)(제공: 이재준 역사연구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6면 투전도(鬪戰圖)

겨울철 골방 안에서 5명이 투전하는 모습을 그린 그림이다. 투전을 하는 사람들의 신분이 모두 달라 당시 노름방의 풍속도를 알려준다. 망건을 쓴 젊은이가 1명, 상투만을 한 이가 1명, 두 명은 탕건을 쓰고 있으며 다른 한 명은 호피를 입은 사냥꾼의 모습이다.

그런데 다른 한명은 준수한 얼굴로서 이불에 반쯤 몸을 기대어 모로 누어 잠을 청하고 있으며 머리에는 방한용 털모자를 쓰고 있다. 단원이 친구와 더불어 투전판에 가긴 갔으나 별 흥미를 못 느껴 잠을 청한 것을 그린 것이 아닌가 보인다.

투전패 사이에 놓인 촛대와 등잔, 차 주전자, 쟁반에 놓인 술병이 당시 노름방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제7면 남녀 야행도(男女 夜行圖)에 적힌 ‘戊子淸和 金弘道寫’(무자청화 김홍도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7면 남녀 야행도(男女 夜行圖)에 적힌 ‘戊子淸和 金弘道寫’(무자청화 김홍도사).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6

제7면 남녀 야행도(男女 夜行圖)

어둔 밤 갓을 쓴 한명의 남자와 전모 차림의 두 여인이 만나 환담을 나눈 그림이다. 시기는 담장안의 앙상한 나뭇가지를 봐서 겨울이다. 남자는 흑립에 방한모를 쓰고 있으며 얼굴은 가리고 있다. 두 여인은 전모를 쓰고 있는 기녀상이며 흰색의 저고리에 남색 치마를 입었다.

여인은 약간 네모진 얼굴의 20대 미인상이고 손에는 책을 넣은 보자기를 들고 있어 지물은 남자의 소유물이 아닌가 보여 진다. 뒷모습만을 그린 여인도 전모를 쓰고 있으며 남색의 치마저고리에 물건을 담은 보자기를 들고 있다. 그림의 왼쪽 상단에 다음 같은 묵기가 있다.

‘戊子淸和 金弘道寫’(무자청화 김홍도사)

글씨는 정연한 해서 정자로 정성들여 쓴 글씨이며 단원의 20대 글씨로 봐도 무방할 것이다. 단원은 표암 강세황의 문하에서 엄격하게 그림과 학문을 배웠으므로 글씨도 단정하다. 그는 젊은 시절 아호를 쓰지 않았으므로 이름을 적은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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