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후 북한서 10기 고분벽화 새로 발견… 생활풍습 유추”
“2001년 후 북한서 10기 고분벽화 새로 발견… 생활풍습 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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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흥리 13태(출처: 한성백제박물관)ⓒ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5
덕흥리 13태(출처: 한성백제박물관)ⓒ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15

 

‘고구려 고분벽화’ 심포지엄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기록
삶과 문화 유추하는 증거돼

[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지난 2001년 이후 고구려 무덤벽화 총 10여기가 새로 발굴됐다. 최근 남북 문화 교류협력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어 새로 발굴된 무덤벽화에 대한 관심도 높다. 특히 무덤벽화에는 고구려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한 그림이 담겨 당시의 생활풍습도 유추해 볼 수 있다.

◆2001년 이후 북한지역서 벽화 무덤 발견

정경일 중국 연변대학교 교수가 최근 열린 국립문화재연구소·한성백제박물관 심포지엄에서 발표한 ‘고구려 고분벽화 최신 현황’ 자료에 따르면, 2001년 이후 북한지역에서 10여기 벽화 무덤이 발견됐다. 2001년에 태성리 3호 무덤, 2002년에 송죽리 벽화무덤, 2009년 민속공원 1호 무덤과 동산동 벽화무덤 및 대성동 34호 무덤, 2010년에 옥도리 벽화무덤이 발견됐다. 또 2011년에 고산동 1호 무덤(재조사), 2013년에는 호남리 벽화무덤, 2016년에 천덕리 벽화무덤, 2017년에 보성리 벽화무덤과 장수원동 벽화무덤 등이 발견됐다. 이들 벽화무덤에는 저마다의 문양이 담겨 있었다. 

먼저 ‘옥도리 벽화무덤’은 최근 발굴된 고구려 벽화무덤 가운데 고구려 사람들의 다양한 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유적이다. 정 교수는 “비교적 양질의 벽화가 남아 있어 가장 풍부한 고구려 벽화무덤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무덤은 안길, 앞 칸, 앞 칸 좌우의 두 감, 사이길, 안 칸 등으로 이뤄져 있다. 방 안의 휘장에는 ‘王’자와 ‘大’자가 물결무늬 사이에 가득히 그려져 있다. 장방 안에는 주인공과 3명의 처첩들이 시중을 받으면서 앉아있는 장면이 있는데, 장방도에 4명의 남녀주인공이 한 좌상에 함께 그려진 것은 이 무덤이 처음이어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고 평가할 수 있다.

‘송죽리 벽화무덤’의 벽화는 미장을 한 회벽 위에 다채롭고 화려하게 그려져 있다. 안길의 동, 서벽에는 무사의 대열이 표현돼 있다. 또한 동벽에는 행렬도, 서벽에는 수렵도, 남벽에는 문지기장수 등이 그려져 있어 보다 생생하게 표현돼 있다. 사이 길에는 문지기장수를 대칭으로 그렸고 안칸에는 수레와 인물, 평상 그림들이 있다.

‘호남리 18호 무덤’은 무덤에서는 사신그림과 함께 원무늬, 넝쿨무늬, 고리무늬, 꽃모양무늬, 별그림, 인동무늬 등이 확인됐다. 벽화무덤은 그 무덤의 구조형식과 벽화내용으로 볼 때 사신도 주제의 벽화무덤으로 판단된다.

‘천덕리 벽화무덤’의 안 칸에서도 벽화가 발견됐다. 벽화는 회를 바른 벽면에서 선각 채색의 장식무늬와 검은색을 칠한 줄무늬 그리고 베천무늬가 보인다. 선각 채색의 장식 무늬는 소용돌이무늬로 추정되는 무늬를 새기고 그 안에 붉은 갈색을 칠한 것이다. 이러한 장식무늬는 고구려 벽화무덤에서는 물론이고 기타 지역에서도 처음으로 등장하는 그림이다.

‘고산동 1호 무덤’은 종전의 발굴에 의해 이 무덤이 인물풍속 및 사신도 주제의 벽화무덤임이 알려졌다. 북벽에는 마주한 쌍현무, 동벽에는 청룡, 서벽에는 백호, 남벽 좌우에 문지기 장수를 그렸다. 이밖에 연꽃무늬, 사신에 대한 묵서 등이 발견됐다.

◆고구려 고분벽화 가치와 의미

고구려는 건국시조 주몽을 해와 달의 아들로 일컫고 주몽의 어머니 유화를 부여신으로 신격화했다. 주몽과 유화를 대상으로 한 신앙과 의례를 위해 나라 곳곳에 사당을 세워 사회 통합의 상징적 의미를 뒀다.

이와 관련해 전호태 울산대학교 교수는 “고분벽화는 고구려 역사·문화 복원의 기초 자료로서 의미와 가치를 지닌다”고 말했다. 실제로 멸망 후 폐허가 된 고구려의 옛 중심도시와 주변 지역에는 성과 무덤뿐이었고 기록에 해당하는 것은 전혀 남지 않은 상태다. 이런 상황에서 고분 안에 남은 벽화는 고구려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기록으로 귀중한 가치를 지닐 수밖에 없는 것이다.

전 교수는 “고분벽화는 몇 안 되는 비문과 성돌 명문 외에 고구려인이 직접 남긴 현장 기록에 해당하며 문자기록 보다 내용이 더 풍부하다고 할 수 있는 회화 형태라는 점에서 고분벽화가 지닌 역사자료로서 가치와 의미는 매우 크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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