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 1938년 9월 12일자에 실린 사진으로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직후 평양신사에서 참배하는 모습.(출처: 한국기독교흑역사).
조선일보 1938년 9월 12일자에 실린 사진으로 총회에서 신사참배를 결의한 직후 평양신사에서 참배하는 모습.(출처: 한국기독교흑역사).

한기총 등 교단‧기관 결의 나서

“9‧10월 교단총회서 회개운동”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한국교회가 일제강점기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정절을 버리고 신사참배를 한 지 올해로 80년이다. 한국교회가 이 신사참배 행위를 ‘우상숭배’로 보고 뒤늦게 회개운동에 나선다.

한국기독교부흥협의회(한기부, 윤보환 대표회장)는 13일 서울 서초구 쉐라톤서울강남호텔에서 신사참배 결의 80주년 우상숭배 회개운동을 목적으로 각 교단 및 주요단체장 연석회의를 열었다. 이번 연석회의는 지난달 1차에 이어 ‘우상숭배의 죄를 용서하여 주옵소서’라는 주제로 열렸다. 이 자리에는 한국기독교총연합회(한기총)과 각 교단‧기관 목사 및 대표 60여명이 참석했다.

이들은 올해 9·10월 진행되는 각 교단 총회에서 신사참배 결의 무효 선언을 추진하기로 결의했다. 또 10월에는 천만인 신사참배 회개운동 연합집회를 열기로 계획했다.

신사참배 회개운동은 각 교단과 총회의 연합 하에 전개된다. 총회와 연회, 지방회와 노회에서 ‘신사참배는 우상숭배’라고 회개 선언을 하고 각 교단 행사 시 행사 타이틀 앞에 ‘신사참배 회개’라는 기도제목을 붙이도록 했다.

일제강점기 교세를 확장한 기독교는 1937년부터 ‘무운장구기도회’ 등을 통해 내선일체와 신사참배를 앞세운 일본제국주의의 승전과 일왕의 만수무강을 기원했다. 1930년대 중반부터 시작된 ‘무운장구기도회’류는 불의한 권력에 순응하고, 권력에 편승하여 사익을 얻기 위한 굴욕의 역사였다.

급기야 조선예수교장로회는 지난 1938년 9월 10일 제27회 총회에서 신사참배에 찬성하는 긴급 동의안을 가결시켰다. 여기에는 ‘신사참배를 솔선하여 열심히 행하고 나아가 국민정신동원에 참가하여 비상시국 아래 후방의 황국신민으로서 열과 성을 다하기로 결의한다’는 내용이 담겼다. 성경을 근간으로 하는 기독교에서 지켜야 할 제1계명은 ‘나(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다. 장로교는 모든 계명 중 가장 중요하다는 제1계명을 버렸다. 그토록 정통성을 자랑하는 장로교가 결국 앞장서서 신앙의 정절을 저버렸던 배반의 교단이었다.

당시 총회장은 반대를 묻지도 않고 만장일치로 가결을 선언했다. 또 1939년 결성된 ‘국민정신총동원 조선예수교장로회 연맹’은 일본의 침탈 전쟁을 위해 기도운동과 시국강연회, 모금운동까지 벌였다. 신도들의 피와 같은 헌금은 일제 천황에게 바쳐질 ‘조선장로호’라는 이름의 전투기에 쏟아부어졌다. 하나님의 이름으로 살상무기를 만들어 이방에 바친 꼴이다.

장로교가 신사참배를 했다는 결정적 증거는 고신파(高神派)다. 신사참배를 거부하고 옥사한 목회자와 신도 50여명은 해방 이후 감옥에서 나와 고신파를 만들어 독립했다. 한국 장로교 목회자들이 가장 추앙하는 인물인 고(故) 한경직 목사도 생전에 신사참배를 한 사실을 인정했다.

장로교의 이같은 신사참배 때문에 우리나라가 남북의 분단됐다는 주장도 나왔다. 통일연구원 허문영 박사는 2015년 뉴욕포럼서 “솔로몬의 우상숭배 이후 남유다와 북이스라엘로 갈라졌던 것처럼 한국교회가 우상숭배의 죄를 범한 그 결의를 10년 뒤 평양에 공산정권이 들어서는 원인으로 볼 수는 없겠는가”라며 신사참배의 결과 남과 북이 갈라지게 됐다고 시사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