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상병 정치평론가 

 

‘노동 없는 미래’를 준비해야 한다며 다소 논쟁적인 주장을 펼치고 있는 저술가 ‘팀 던럽(Tim Dunlop)’은 신자유주의를 향한 대중들의 분노를 이렇게 설명했다. “스페인에선 대안 정당 포데모스(Podemos)가, 그리고 그리스에선 급진 좌파정당 시리자(Syriza)가 등장했고, 미국에선 버니 샌더스(B.Sanders)가, 그리고 영국에선 제레미 코빈(J.Corbyn) 같은 정치 지도자들이 급부상했는데, 이는 시민이 신자유주의의 전횡에 불만이 많은 데다 뭔가 다른 걸 찾고 쟁취하기 위해 싸울 준비가 됐음을 보여준 증거이기도 하다. 이런 움직임이 가진 힘과 가시성은 놀랄 만큼 강력하며 또 비교적 새롭다.”

서구에서 불고 있는 신생 대안정당의 급부상, 그리고 신생정당들이 표방하는 급격한 포퓰리즘 경향은 이제 새로운 뉴스가 아닐 만큼 하나의 ‘경향’을 이루고 있다. 따라서 그 배경이 무엇이며 또 앞으로 서구정치는 어떻게 변화할 것인가 하는 점은 정치학자들의 공통 관심사이기도 하다. 그런데 따지고 보면 한국정치도 예외가 아니다. 스페인이나 그리스처럼 기득권 양당정치가 주류를 이뤄왔으며 구태정치는 시민들의 욕구를 대변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최근의 경제현실은 갈수록 악화되고 있지만 경제의 각 영역마다 신자유주의적 기조는 흔들리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경제적 양극화는 역대 최악의 수준이며 일자리를 찾지 못한 젊은이들은 길거리를 배회하고 있다. 사실상 서민경제가 파탄 직전으로 내몰리고 있는 셈이다.

제3지대, 그래도 희망은 있다

이런 상황에서도 지난 6.13지방선거는 기득권 정당의 한 축인 민주당 압승으로 끝났다. 역대 선거 사례에서도 유례를 찾기 어려울 만큼의 민주당 압승은 그대로 ‘보수’를 자처한 자유한국당의 궤멸적 참패로 이어졌다. 게다가 중도개혁을 표방한 제3지대 정당이 약진했거나 진보정당이 승리한 것도 아니었다. 한마디로 민주당 완승과 다른 모든 야당의 완패였다. 그렇다면 무엇이 이런 결과를 만들어 냈으며 민심이 던진 메시지는 무엇일까. 여야 모두 심도 있게 고민해야 할 대목이다. 선거는 또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분명한 것은 지난 6.13지방선거가 어떤 경제적 문제를 놓고 경쟁하거나 각 지역의 이슈를 놓고 표심을 가른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그리고 선거일 당일까지 모든 언론을 장식한 ‘북미정상회담’ 효과가 절대적이었다는 사실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여기에 저급한 언어로 ‘냉전적 색깔론’을 부활시키려 했던 자유한국당 홍준표 전 대표에 대한 ‘응징’도 한 몫을 차지했을 것이다. 그 결과 자유한국당의 궤멸적 몰락을 가져왔던 것이다. 그 연장선에서 중도의 바른미래당은 존재감조차 찾지 못했다.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에 찬성했던 중도의 유권자라 하더라도 중도를 지키기보다는 일부는 자유한국당 지지로 갔으며 절대 다수는 민주당 지지로 돌아섰던 것이다. 이 또한 ‘문재인 대 홍준표’의 ‘프레임 전쟁’으로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제3지대의 바른미래당은 그 프레임 전쟁의 ‘유탄’을 맞은 셈이다.

해방 이후 지난 70년을 지켜왔던 반공주의적 수구 냉전세력은 지난 6.13지방선거를 통해 직격탄을 맞았다. 한국 정치지형에서 사실상 ‘제1지대의 소멸’이라 하겠다. 최근 자유한국당 내부의 혈투가 그 본질이다. 혹여 북미정상회담이 파국을 맞을 경우 수구 냉전세력의 부활 가능성도 있지만 그렇더라도 예전만한 영향력을 회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대를 거꾸로 되돌릴 수는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은 수구 냉전세력과 싸우면서 대한민국의 오늘을 일궈낸 민주·평화세력, 즉 ‘제2지대’의 전성기에 다름 아니다. 촛불혁명은 그 핵심 동력이었으며 지금도 촛불이 살아 있음을 지난 6.13지방선거가 생생하게 보여주었다.

문제는 제2지대가 벌써 위기 국면으로 가고 있으며 그 이후의 ‘제3지대’마저 여전히 취약하다는 점이다. 민주·평화세력 이후를 담보할 제3지대의 취약성은 곧 수구 냉전세력의 부활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에서 매우 우려스런 일이다. 이런 경향은 정치발전의 역사에서도 퇴행적이며 민주주의 발전을 가로막는 ‘적폐적 경향’에 다름 아니다. 서구 정치에서 ‘파시즘’이 어떻게 대두됐는지를 살펴보면 그 걱정은 더 커진다. 특정 정파의 선호를 말하는 것이 아니다. 민주주의 발전의 거대한 흐름을 외면하거나 막아서는 안 된다는 뜻이다.

중요한 것은 제3지대를 자처하는 바른미래당이 더 굳건하게 당의 위상을 재정립해야 한다는 점이다. 그들이 좋아서가 아니다. 한국 정치발전의 거대한 흐름을 ‘선도’하는 정당이기 때문이다. 일찍이 거대 양당의 독점적 기득권 체제를 거부하고 ‘제3의 길’을 표방한 정당이 아니던가. 6.13지방선거는 제1지대에 대한 응징이지 제3지대는 관심의 대상도 되지 못했다. 따라서 쓰나미에 밀려 ‘옥토’가 유실되긴 했지만 그 땅은 그대로 살아 있다. 아프지만 절망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그리고 다시 그 땅에 한국정치의 미래를 심을 희망이 살아 있음을 알아야 한다. 지금 제2지대의 정치도 점점 위기로 빠져들고 있다. 그렇다면 바른미래당을 실질적으로 통합하고 당의 미래를 새롭게 열어갈 수 있는 유능한 리더가 더 절실하다. 그리하여 더 굳건하고 단단하게 제3지대를 넓혀갈 수 있다면 그 길에 ‘개혁된 보수세력’이 합류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을 것이다. ‘대안정당’은 그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다음 총선에서의 국회권력 교체, 그저 꿈만이 아닐 수 있음을 깨닫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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