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하문명 연구가 우실하 교수 "中 고대사 전면 재편 의도"

(선양=연합뉴스) 중국이 30년 만에 자국의 고.근대사에 대한 대대적인 수정에 나선 것은 고대사에 대한 전면적인 재편을 통해 '오랑캐의 역사'로 터부시했던 요하(중국 명칭은 랴오허.遼河)문명을 중국 문명의 기원으로 삼으려는 것이라는 주장이 제기됐다.

이렇게 되면 중국 문명의 기원은 지금까지의 정설이었던 황하(黃河)문명보다 2천500년 거슬러 올라가게 돼 세계 4대 문명 발상지 가운데 최고(最古)가 될 뿐 아니라 요하에서 발원한 우리 한(韓)민족도 중국 선조의 후예가 되는 셈이다.

중국의 공인 역사서를 발행하는 중화서국(中華書局)은 2015년 완성을 목표로 중국 검정 역사서를 수정.보완키로 지난 9일 공식 발표했다.

1958-1978년 이뤄졌던 첫 검정 역사서 완성 이후 30년 만에 추진되는 역사 수정에 대해 중화서국 쉬쥔(徐俊) 총편집은 "문화대혁명이라는 역사적 격동기에 이뤄지면서 정치적 영향 등으로 객관적이지 못하게 정리된 부분이 있기 때문"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요하문명 연구가로, 최근 요하 일대 유적지 답사를 위해 중국을 방문했던 항공대 우실하 교수는 1일 연합뉴스 기자와의 이메일을 통한 인터뷰에서 "1996년 '하상주단대공정(夏商周斷代工程)을 시작으로 14년간 계속된 '국사(國史) 수사 공정'이 완성됐음을 의미하는 것"이라며 "그 핵심은 상고사의 전면 재편"이라고 밝혔다.

하상주단대공정과 우리에게도 익숙한 '동북공정(東北工程.2002-2007년)', '중화문명탐원공정(中華文明探源工程.2003년-현재)' 등을 통해 상고사 재편 작업을 거친 끝에 완결판인 '국사수사공정(國史修訂工程) 단계로 진입했다는 설명이다.

1980년대 랴오닝(遼寧)성 요하지역에서 황화문명보다 훨씬 앞서는 문명이 존재했던 사실이 밝혀지면서 중국 문명의 기원을 황하에서 요하로 끌어올리는 작업에 착수했다는 게 우 교수의 설명이다.

그는 "요하 일대에 황하문명보다 2천500여년 앞선 기원전 7천 년에 이미 신석기문화(요하문명의 일부인 홍산(紅山)문화)가 존재했음을 알리는 유물들이 속속 발견되고 있고 기원전 3천500-3천년(홍산문화 후기)에는 이미 초기 국가형태가 갖춰졌음이 규명됐다"고 전했다.

우교수는 이어 "홍산문화 주도세력을 오랑캐인 동이족이나 예.맥족의 것으로 치부했던 중국 역사계는 1990년대 후반 들어 전설의 인물이었던 황제의 후예들이 홍산문화를 건설한 것으로 정리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결국 세계 최고(最古)의 문명인 홍산문화 주도세력이 황제족이며 홍산문화가 중국 문명의 기원인 만큼 중국 내 모든 민족의 시조는 황제라는 논리가 안착된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이렇게 되면 요하를 발원지로 하는 웅녀족과 고조선의 단군 등 우리 민족의 선조 역시 자연스럽게 황제의 후예가 된다"며 "중국의 국사 수사 공정은 동북아시아 문명, 더 나아가 세계 문명의 기원을 통째로 바꾸려는 거대한 고대사 재편 작업"이라고 지적했다.

중국은 국사 수정 공정과 병행해 중화민족의 시원(始源)으로 삼은 요하문명 유적지 정비와 홍보에도 적극적이다.

2006년 신축된 랴오닝성 박물관은 요하문명을 중화문명의 기원지로 알리는 '요하문명전'을 상설 운영하고 있으며 요하 문명 발굴지인 츠펑(赤峰)과 아오한치(敖韓旗) 등에는 요하문명을 알리는 대규모 박물관들을 잇따라 개관했거나 건설 중이다.

또 홍산문화의 핵심 유적지로, 초기 국가가 출현했음을 알리는 천단(天壇) 등이 발굴된 니우허량(牛河梁) 유적지 전체를 돔 구조물로 덮은 채 대형 박물관을 건설하고 있으며 이 유적지를 세계문화유산 등재 신청을 해놓고 있다.

지난해 만리장성의 동쪽 끝을 산해관(山海關)에서 단둥(丹東)의 고구려 박작성(중국명칭은 후(虎)산성)까지 연장한 것이나 발해를 말갈족이 건설한 중국 변방국가로 규정하고 발해 후기의 왕궁인 헤이룽장(黑龍江)성의 상경용천부 유적을 2015년까지 대대적으로 복원키로 한 것도 국사 수정 공정 완성을 위한 준비 작업인 셈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