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오랜만에 체육인들을 만났다. 현역시절 국내 최고의 농구스타들로 활약했고 일선 감독과 스포츠단 단장 등을 역임한 현장 전문가들의 모임에서다. 매달 한 번씩 모임을 가져오다 올 여름 유난히 맹위를 떨친 불볕더위로 3개월 정도 휴식기를 보내다 만났다.

만나자마자 화두는 “연아가 왜 오서와 결별했을까” “그래가지고 앞으로 좋은 경기력을 계속 발휘할 수 있을까” 등으로 이구동성으로 걱정하는 얘기들이 쏟아졌다. 이들의 우려는 오랜 일선 경험에서 나왔다.

선수가 잡음을 일으킨 뒤 정신적인 어려움을 겪으며 정상의 자리를 지키기가 결코 쉽지 않음을 너무나 잘 알기 때문이다. 40대 이상의 스포츠팬이라면 이름만 대면 금방 아는 한 농구인은 “불모지인 피겨스케이팅에서 올림픽 금메달을 따낸 연아가 흔들릴까봐 정말 걱정이다”며 “연아가 오서와의 문제를 잘 정리하고 계속 정진해나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김연아가 브라이언 오서 코치와의 석연치 않은 결별이후 우려하는 목소리가 체육인뿐 아니라 전 국민적으로 증폭되고 있는 것은 그에 대한 믿음과 기대가 너무나 컸기 때문일 것이다. 지난 2월 밴쿠버 동계올림픽에서 ‘황금 콤비’ 오서 코치와 함께 아름다운 김연아가 환상적인 연기로 사상 최초로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획득했을 때 전 국민은 TV앞에서 기쁨의 환호성을 터뜨리고 맥주 등 시원한 음료를 마시며 한바탕 즐거움의 축제를 만끽했다.

김연아는 ‘국민여동생’으로 자리잡고 국내 스포츠계에서 일약 가장 중요한 인물이 됐다. 올림픽이후 광고 출연이 쇄도했고 월드컵 스타 박지성과 함께 순식간에 수백억대의 돈방석에 앉았다.

그러나 감동적인 올림픽 금메달 이후에는 사실 주위에 걱정을 많이 던져주었다. 먼저 IB스포츠와의 결별이 그랬다. 세계적인 선수로 뜨기까지 3년간 IB스포츠와 고락을 함께했던 김연아는 어머니 박미희 씨가 올댓스포츠라는 스포츠 매니지먼트회사를 차려 IB스포츠와의 관계에 종지부를 찍었다.

이 과정에서 김연아를 담당하던 IB스포츠의 고위임원이 사표를 내고 올댓스포츠로 옮겨가는 바람에 법정소송에 휘말리기도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럭저럭 문제는 해결되기는 했지만 개운치 않은 뒷맛을 남겼다.
오서와의 이번 결별은 더욱 충격적이었다.

올림픽이후 오서 코치와 드림팀을 구성, 앞으로 도쿄 세계선수권대회와 소치올림픽 등을 목표로 “기술을 한 단계 더 끌어올리며 세계정상을 계속 유지하겠다”고 선수생활에 더욱 매진하겠다는 청사진을 밝히며 순항을 하고 있다가 갑작스레 터져 나왔기 때문이다. 김연아 측과 오서 코치 측은 그동안의 불편했던 과정과 상황 등을 언론을 통해 밝혔다.

결별이유가 어떻든 국민들이 현재 바라는 것은 김연아가 오서 코치 없이도 밴쿠버 올림픽과 같은 영광을 계속 이어나가는 것이다. 예전 개인적인 관리에 실패해 정상에서 추락하는 특급선수들이 많이 있었다. 최근에는 타이거 우즈가 대표적인 예이다.

복잡한 개인 사생활이 드러나고 아내와 이혼 등의 아픔을 겪으며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골퍼라는 화려한 명성을 누리다가 올해 최악의 부진을 보이고 있다. 우즈의 성적 부진은 경기에 몰입하지 못하고 정신력이 흔들린 탓이다. 골프, 사격, 양궁 등 개인종목의 경우 개인 관리가 더욱 요구되고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피겨스케이팅도 예외일 수 없다.

천부적인 소질과 강도 높은 훈련, 세계 최고수준의 코칭 등으로 일약 세계 정상에 오른 김연아지만 20세라는 약관의 나이로 주변의 복잡한 분위기에 흔들리게 되면 경기력 연마에 전념하지 못하고 걷잡을 수 없이 무너질 수도 있다.

하지만 김연아는 오서 코치와의 결별에 마음이 상하지만 토론토에서 훈련에 열중하며 흔들리지 않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다행스럽다. 김연아는 정상을 차지했던 올림픽과 세계선수권대회 이전의 그가 아니다. 국민적인 선수로 모든 국민의 사랑을 한몸에 받고 있는 만큼 이번 일을 슬기롭게 잘 극복하고 정신적으로 더욱 성숙한 모습으로 거듭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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