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현 주필

 
대통령 단임제에서 정권 말기에 피해가기 어려운 것이 레임덕 현상이다. 만약 대통령 연임제라면 국정 수행에 결정적인 실수가 없는 한 첫 임기 말기에 레임덕 현상에 시달리는 일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단임제의 우리는 노태우 대통령 시절부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에 이르기까지 예외 없이 정권 말기에 국정이 비틀거리는 레임덕 현상을 경험했다. 참으로 절박한 국가 명운의 개척에 촌음(寸陰)도 아껴 써야 할 귀중한 시간의 낭비였다.

귀뚜라미 울어 폭염의 여름이 감을 알리듯이 레임덕에도 징조(徵兆)가 있다. 대체로 이렇다. 대통령의 인기가 시들어갈 무렵에 대통령을 짓밟고 차별화하려는 반란적인 시도들이 권력 안팎에서 공공연하게 감행된다.

우호적이던 언론들도 곧 ‘역사 속에 묻힐 권력’에 슬슬 등을 돌리기 시작한다. 권력의 양지와 음지를 가릴 것 없이 대망을 품은 차기 주자(走者)들이 속속 나타나 시들어가지만 엄연히 살아있는 권력 앞에서 감히 기염을 토하고 날뛴다. 눈치 빠른 공직자들은 새로운 줄서기와 무사안일, 납작 엎드려 눈치 보는 복지부동(伏地不動)의 기회주의적인 특유의 몸보신에 들어간다.

대통령을 싸고돌던 구름 같던 ‘대통령 마니아(Mania)’들도 흩어지기 시작한다. 대통령이 저지르는 하찮은 실책일지라도 대통령에게 책임이 귀착되는 것이면 무자비한 비판이 쏟아진다. 필경에는 때를 만난 대권 주자들의 야망과 야심만이 소설 삼국지의 ‘초가(楚歌)’와 같이 대통령 주위와 천하를 가득 채운다.

누가 이런 혼란한 상황을 반기랴. 대통령의 정적들일까. 필시 그들에게는 기회일 것이니까 그럴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국가공동체에 숙명적인 애정과 나름의 책임의식을 갖는 일반 국민과 시민의 입장은 그럴 수가 없다. 누가 대통령을 하든 어차피 한 번의 재임인 임기 끝 날까지 국가와 국민을 위한 소임과 책임을 성공적이고 충실하게 다할 수 있어야 한다.

이것은 대통령이 좋고 싫고, 예쁘고 밉고의 감정과는 상관없는 일이다. 그래야 국가 발전과 사회 전체의 공리(公利)에 보탬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으면 레임덕으로 인한 종국(終局)의 피해자는 국민과 일반 시민이 될 수밖에 없지 않은가.

아무리 좋은 새 권력이 차기에 들어선다 해도 일단 과거로 묻힌 레임덕 시기에 입은 국민의 피해는 복구되기 어렵다. 그 피해는 새 정권에는 흘러간 정권의 염치없는 부담과 부채로 떠넘겨지게 된다. 그럼에도 정권 말기의 권력 누수(漏水)와 국정 이완(弛緩)으로 촌각이 아까운 시간이 낭비되는 역사적인 경험들을 우리는 너무 태연하게 받아들여 온 것이 아닌가.

아무런 고민도 대책도 없었지 않은가. 새로운 물이 밀려와 옛 물을 밀어내는 권력 변천의 소용돌이에 매몰돼 임기 말을 재촉하며 화살 같이 내달리는 시간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소중한지를 미처 몰랐던 것 아닌가.

그런데 왜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역사는 되풀이 되는가. 왜 역대 대통령들이 임기 말 레임덕을 못 피해 가고 회한(悔恨)에 떨며 말년을 보내야 했는가.

그 이유는 역사적 경험으로 보아 대통령의 무능이나 정책 실패가 아니다. 독선적이고 오만해져가기 마련인 권력의 관성(慣性)을 제어하고 검증할 겸손하고 참신했던 초심(初心)을 대통령들이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오만한 권력은 언론이나 국민, 시민단체가 아무리 감시를 철저히 해도 필연적으로 도덕적 해이에 빠진다. 물론 수사권 없는 언론이나 민간의 감시가 충분할 수도 없다.

과거 대통령 아들들의 권력 사유화나 뇌물 수수, 친인척과 측근들의 권력형 비리로 얼룩진 각종 ‘게이트’니 뭐니 하는 불유쾌한 추억들이 존재하게 된 까닭들이다. 국민들이 등을 돌리고 대통령의 인기가 추락하는 레임덕은 이렇게 역대 대통령들 스스로가 자기와 주변 관리를 잘 못함으로써 자초한 것들이었다. 누구를 원망할 것인가.

국민들로부터 인기를 잃고 자신감을 상실한 대통령들은 널리 인재를 찾아 쓰는 공정한 인사보다는 측근이나 심복을 주변에 불러 모아 국민과의 건강한 소통을 차단하고 담을 쌓았다. 이렇게 해서 결국에는 태산이라도 움직일 것 같던 거대한 꿈을 안고 출발했던 역대 ‘권력’들은 쓸쓸한 퇴장을 되풀이 해야만 했다. 이것이 단임 대통령 권력의 한계이기도 하다.

나쁜 역사는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한다. 그러려면 임기 후반기의 대통령은 처음 시작할 때보다 더욱 권력의 벽을 낮추고, 국민을 믿고 국민과 함께하며, 허심탄회한 소통을 유지해야 한다. 진정으로 국민과 함께하고 국민과 동행(同行)하는 대통령은 국민이 결연하게 지켜줄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강조하는 초심과 소통, 공정한 사회 구현, 친서민,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친화적인 자세는 주목할 만하다. 또한 들끓는 국민 여론을 수렴해 청문회에서 여러 가지 문제점들이 드러난 총리 및 장관 후보자들을 낙마시킨 것은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지극히 당연하다. 역대 대통령들은 이 당연한 것들을 국민 여론과 맞서 오기를 부리며 실천하지 못함으로써 레임덕을 불렀다. 이명박 대통령은 레임덕으로 가는 위험한 한 고비는 넘긴 것 같다. 과연 대통령은 되풀이 되지 말아야 할 나쁜 역사의 고리를 끊어 국민 여망에 부응해 줄 것인가. 과거의 역사에서 배운다면 그것은 결코 쉬운 일도 아니겠지만 불가능한 일도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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