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방인에게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죽겠다”
“이방인에게 더럽혀지느니 차라리 죽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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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백마강에 몸을 던진 백제 궁녀들의 정신을 기리기 위해 낙화암 위에 지어진 백화정 ⓒ천지일보(뉴스천지)


정절을 지킨 백제 여인들의 혼이 어린 ‘부소산성’과 ‘낙화암’


[천지일보=강수경 기자] ‘백마강의 고요한 달밤아 칠백년의 한이 맺힌 물새가 날면 일편단심 목숨 끊은 남치마가 애달프구나 아~ 낙화삼천 몸을 던진 백마강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이는 가요 백마강 중 한 소절이다. 정절을 지키기 위해 절벽에서 몸을 던진 백제 여인들을 소재로 한 애절한 노래다.

◆육체는 사라져도 정신은 영원히 ‘낙화암’

노래 속 백제의 당시 상황을 살펴보려면 백제가 멸망하기 바로 직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의자왕 20년 백제는 나당연합군에 의해 사비성을 함락당하고 백제여인들은 부소산성으로 피신하게 된다. 피신도 잠시, 여기서 이들은 더 이상 앞으로 갈 수도 뒤로 되돌아갈 수도 없는 사면초가에 놓인다.

뒤를 돌아보면 짐승 같은 침략자들이 다가오고, 눈앞에 보이는 절벽은 죽음만을 강요할 뿐이었다. 이방인에게 몸을 더럽힘을 당하는 것보다 차라리 죽음으로 정절을 지킬 것이라며 이를 악물고 여인들은 치마를 뒤집어쓴 채 모조리 절벽에서 물속으로 몸을 던졌다.

그 모습이 흡사 꽃잎이 떨어지는 모습과 같아 낙화암이라고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이 여인들의 피 때문에 아직도 절벽은 붉은 색이라는 전설이 전해지기도 한다. 여인들의 지조 있는 정신을 기리기 위해 낙화암 위에는 1929년 백화정을 건립했다.

흔히 의자왕의 삼천궁녀가 이곳에서 목숨을 끊었다고 알고 있지만, 궁녀뿐 아니라 백제의 여인들도 함께 있었을 것이라는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전시 방어 성곽… 평시엔 휴식터 ‘부소산성’

부소산성 백화정에 올라가 남쪽에서 흘러오는 백마강을 보고 있노라면 시간이 더디 흘러가는듯하다. 평야를 가로질러 유유히 흐르는 강물은 부소산의 가장 가파른 절벽을 감싸고 공주방향으로 흘러간다. 부소산성에서 즐길 수 있는 멋들어진 주변 풍경 중 하나다.

여인들의 피로 물들이며 한 나라의 마지막 역사를 처절히 간직한 채 1500여 년의 시간을 보낸 부소산성(국가사적 제5호)은 고요하기만 하다. 산성은 테뫼식(산봉우리를 중심으로 머리띠를 두르듯 성곽을 쌓는 것)과 포곡식(자연지형에 따라 산능선과 골짜기를 이용해 성을 쌓은 것)이 혼합된 독특한 형식을 하고 있다. 산성은 돌과 흙을 섞어 쌓은 토성이다.

부소산성 내 군창지에서 발견된 불에 탄 곡식만이 이곳이 군량을 비축한 창고였던 것을 짐작케 한다. 산성 내에는 낙화암에서 떨어진 궁녀들의 혼을 달래고자 건립한 궁녀사를 비롯해 7개의 건축물이 있다.

이 중 고란사는 독특한 설화를 갖고 있다. 고란사 뒤편 바위에서는 약수가 나는데 이 약수에 얽힌 이야기다. 금실 좋은 부부가 늙도록 자식이 없어 고민하던 중 아내가 고란약수의 효험을 듣고 남편에게 권한다. 하지만 한 모금 마실 때마다 3년씩 젊어진다는 말을 하지 못해 너무 물을 많이 마신 남편이 갓난아이가 됐다는 이야기다. 백제의 임금들도 항상 고란약수를 즐겨 마셔 원기가 왕성하고 건강했다고 전해진다.

한편 부소산성이 있는 부소산은 세종실록지리지에 명칭이 처음 등장한다. ‘부소’는 백제시대 언어로 소나무라는 뜻을 갖고 있어 학자들은 ‘소나무가 많은 산’으로 뜻을 추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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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만세 2010-08-31 16:10:44
맞아맞아맞아.. 이런 일도 있었지...
정말 우리나라.. 아름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