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문화칼럼] 만월의 법칙 생각해야
[이재준 문화칼럼] 만월의 법칙 생각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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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달이 차면 기우는 것은 우주의 법칙이다. 동서양 점술가들은 초승달은 흥하고 만월은 쇠퇴의 길을 걷는다고 풀이했다. 고려 왕건이 개성 송악산 기슭에 왕궁터를 잡고 만월대(滿月臺)라고 명명했다. 그러나 개성 만월대는 지금 옛 궁성의 화려함은 찾을 수 없고 황량한 터만 남아있다. 

왕건은 대제국의 꿈을 키웠으나 고려는 5백년을 넘기지 못했다. 말기에는 거듭 외세의 침공을 받아 국난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조선 태조 이성계는 만월대를 미련 없이 버리고 한양으로 천도한다.  

‘만월이 기운다’는 고사는 중국에도 있다. 진나라 재상 범저는 위나라 사람으로 진나라로 넘어가 재상이 된 사람이다. 시황의 천하 통일에 공을 세웠다. 그는 ‘해가 중천에 오르면 반드시 서쪽으로 기울고, 달도 차면 기운다’라고 말하며 수성의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러나 진나라는 범저의 경고를 외면하다 일찍 멸망했다. 욕심이 컸던 것인가. 시황은 영생을 위해 불로초를 찾고 수만 궁녀들이 거처하는 아방궁을 지었다. 처마에는 만월처럼 둥근 막새를 얹어 화려하게 치장했다. 

북방 흉노 등 위협적인 이민족을 막으려고 만리장성을 구축했다. 이것이 통일 진나라를 멸망시킨 요인이 됐다. ‘맹강녀곡장성사(孟姜女哭長城事)’ 설화는 진나라 백성들의 피눈물을 반영하는 얘기다. 맹강녀(孟姜女)가 결혼해 3일 만에 남편이 장성을 쌓기 위해 끌려갔다. 얼마 후 남편이 죽은 사실을 안 맹강녀는 통곡하기 시작했다. 맹강녀가 얼마나 많은 눈물을 쏟았는지 장성 10여 리가 무너졌다는 설화가 생겼다. 

중세 서양에서는 보름날 밤에 짝사랑하는 사람의 이름을 적어 땅속에 묻으면 저주가 든다는 속설이 있었다. 이름이 적힌 사람은 반드시 애인과 헤어진다는 것이다. 짝사랑하는 사람을 자기의 상대로 만든 주술이니 만월을 저주의 신으로 삼은 것이다. 로마인들도 달에 대한 신앙을 가진 민족이다. 만월을 축일로 삼고 춘분이후 만월이 뜨는  다음 주일을 부활절로 삼았다. 유럽을 지배하는 시기, 덩치 큰 게르만 민족은 숨을 죽이며 기회를 봤다. 그러다 로마가 동서로 나뉘자 틈을 놓치지 않고 쳐들어와 정복했다. 게르만은 만월과 초승달, 별 등 세 가지를 숭배했으며 초승달 모양의 날카로운 무기를 사용했다고 한다. 

삼국사기 백제 의자왕 기록에도 ‘만월’ 설화가 있다. 의자왕 20년 6월에 귀신 하나가 궁중에 들어와 “백제가 망한다, 백제가 망한다”고 크게 외치고는 곧 땅속으로 들어갔다. 왕이 사람을 시켜 땅을 파보게 했더니 한 마리의 거북이 나왔다. 그 등에는 신기하게도 ‘백제는 둥근 달과 같고 신라는 초승달과 같다’고 적혀 있었다. 임금 앞에 불려간 술자(術者)는 ‘둥근 달과 같다는 것은 찼다는 것이니 차면 기울 것이요, 새 달과 같다고 함은 아직 차지 않았다는 것이니 차지 않으면 점점 커질 것’이라고 풀이했다. 의자왕은 화가 나 술자를 죽였다. 술자의 풀이처럼 백제는 이 해에 멸망하고 말았다. 

만월 때 초승달이 되는 것을 걱정하고 초승달 때는 만월에 대한 희망을 가져야 한다. 이 법칙이 되풀이 되는 것이 바로 정치인 것 같다. 여당이 지지율이 높다고 오만한 자세를 보여서는 안 된다. 벌써부터 차기 대권이나 총선을 앞두고 권력투쟁 양상을 보이면 민심은 떠난다. 야당도 초승달 신세라고 절망해서도 안 된다. 심기일전해 올바른 야당이 되면 신임을 얻어 만월이 될 수 있다. 그러기 위해서는 환골탈태의 새로운 리더십이 필요하다. 만월의 법칙을 이해하고 철저하게 대비할 때 수성이나 역전이 이루어지는 것임을 명심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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