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평론] 국회 특수활동비,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정치평론] 국회 특수활동비, 비극은 여기서부터 시작됐다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박상병 정치평론가

 

박근혜 정부에서의 국정농단 가운데 특수활동비 논란은 국민적 분노를 더 촉발시킨 주범이었다. 청와대 몫의 특활비를 챙긴 뒤에도 마치 맡겨 놓은 듯 국정원에 특활비 상납을 요구했다. 그리고 국정원은 마치 무슨 군사작전 하듯이 현금 가방을 들고 청와대에 바쳤다. 물론 이 돈이 어디에 쓰였는지는, 또 누가 주도했는지는 지금도 알기 어렵다. 심지어 박 전 대통령이 탄핵을 받은 뒤에도 청와대 특활비 30억여원이 집행됐다며 지출 내역을 공개하라는 야당의 요구도 있었다. 5일 재판에 나온 안봉근 전 청와대 비서관은 재판부의 추궁에도 박 전 대통령에게 국정원 특활비 수수를 건의한 적이 없다고 했다.

청와대에서 운용되는 특활비가 이런 수준이라면 다른 부처나 기관에서 쓰이는 특활비 실태는 어떨지 굳이 따질 필요가 없을 것이다. 국정원에서 쉬쉬하며 청와대에 상납하는 방식이라면 그 국정원의 특활비 운용 실태는 또 따져서 뭣하겠는가. ‘공직기강’ 운운하는 것조차 민망한 일이다. 결국 모두가 ‘한통속’이었던 셈이다. 국민의 고혈을 짜낸 그 돈으로 ‘국가안보’를 앞세워 마치 쌈짓돈처럼 써댔다면 그 죄질은 최악이다. 사실상 ‘이적행위’에 다름 아니라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국회마저 이럴 것인가  

굳이 ‘제왕적 대통령제’ 얘기를 하지 않더라고 절대권력은 절대 부패하는 법이다. 다시 말하면 견제 받지 않는 권력은 ‘괴물’이 될 수밖에 없다. 그 괴물은 온갖 수단으로 국민의 고혈을 짜내고 그물을 치며 그들만의 세상을 향유하게 된다. 도덕이 짓밟히고 상식이 파괴되며 법치마저 붕괴되는 ‘막장의 세상’, 그것이 괴물들이 지배하는 사회의 단면이다. 대한민국 대법원에서 ‘재판거래’가 이뤄졌고 관련 증거들이 폐기됐다는 의혹까지 일고 있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명색이 민주주의 국가에서 일어날 수 있는 일이란 말인가. 아마 후진국에서도 그런 일은 쉽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민주주의를 표방하는 정치체는 ‘권력분립’을 통해 견제의 원칙을 담보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청와대 권력의 오만함과 방자함을 견제할 수 있는 곳은 결국 입법부뿐이다. ‘국회의 힘’은 바로 국민으로부터 나오기 때문이다. 청와대와 국정원의 특활비 수수, 그 부패한 거래를 막을 수 있는 곳도 결국 국회가 될 수밖에 없는 이유라 하겠다. 의회정치의 발전이 곧 민주정치의 발전으로 연결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대한민국 국회도 결국 ‘공범’이었다. 참여연대가 2015년 국회사무처를 상대로 정보공개를 청구해 최근 제출받은 2011~2013년 국회 특활비 지출결의서 1296건을 분석한 결과를 5일 공개했다. 그것도 정보공개 청구가 수차례 거부된 뒤 결국 사법부 판결을 통해 3년 만에 어렵게 얻어낸 결과였다. 하지만 그 결과는 생각보다 더 심각하다. 참여연대에 따르면 국회는 2011년 86억원, 2012년 76억원, 2013년 77억원 등 총 1296건에 걸쳐 240억원을 특활비로 사용했다. 물론 영수증은 단 한 장도 없었다. 교섭단체만 돼도 매월 6000만원이 지급됐으며 상임위 위원장과 특위 위원장도 매월 600만원씩 타간 것으로 파악됐다. 여야 각 의원들이 상임위와 특위 위원장에 집착한 이유 가운데 하나일 것이다. 물론 영수증이 없으니 이 돈이 어떻게 쓰였는지도 확인할 길이 없다.

국회 현실이 이렇다면 국회는 이미 그 본연의 ‘견제 기능’을 상실했다고 봐도 좋을 것이다. 다른 기관들의 특활비를 감시하고 견제할 정치적, 법적 기반을 스스로 허물어 버린 셈이기 때문이다. 국회마저 이 모양인데 누가 누굴 감시하고 따질 수 있겠는가. 국회도 결국 그 ‘부패 고리’의 공범에 다름 아니었던 것이다. 여기에는 여야 이견도 없었다. 똘똘 뭉쳐 서로 이심전심으로 나눠먹고 별 문제가 없다는 듯 쉬쉬하며 지금에 이른 것이다. 예산의 심의와 결산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진 국회가 이런 정도였다면 더 이상 무슨 말이 필요하겠는가. 설사 국정감사를 한들 누가 누굴 제대로 문제 삼을 수도 없었을 것이다.

이제 문제가 터졌으니 지금부터라도 바꿀 것은 바꿔야 한다. 먼저 특활비에 대한 규정을 더 엄정하고 구체적으로 법제화해야 한다. 지금은 기획재정부의 ‘예산 및 기금운용계획 집행지침’에 근거한 규정이 대부분이다. 여기서도 특활비의 적용범위를 ‘기밀유지가 요구되는 정보 및 사건수사,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에 직접 소요되는 경비’로 규정하고 있다. 범위가 막연하며 추상적이다. 게다가 특활비 집행원칙만 보더라도 당초 편성한 목적에 맞게 집행하라는 정도이다. 뭐든 갖다 대면 기재부의 ‘집행지침’에 어긋나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싶다. 투명성을 높이기 위해 ‘자체적’으로 집행계획을 수립하고 ‘내부통제장치’를 강화하라는 등의 지침도 사실 하나마나한 얘기에 다름 아니다.

특활비의 적용 범위도 대폭 축소해야 한다. ‘어떤’ 기밀인지를 구체적으로 적시해야 하며 ‘기타 이에 준하는 국정수행활동’ 등의 막연한 개념도 삭제해야 한다. 청와대와 국정원, 검찰과 경찰 등 국민의 안전과 직결된 기밀을 다루는 기관으로 줄여야 한다는 뜻이다. 이렇게 되면 특활비 전체 액수도 대폭 줄어들 것이며 그 용처를 확인하는 작업도 간명할 것이다. 방향을 이렇게 정하면 국회 특활비는 거의 없어지게 될 것이다. 국회 정보위에 일부 지원할 수는 있겠으나 지금처럼 모두가 나눠 갖는 특활비는 사실상 없애는 것이 옳다. 꼭 필요한 비용은 국회 예산으로 투명하게 책정해야 한다. 지금이 기회이다. 집권당인 민주당이 앞장서는 것이 순서이다. 이 또한 촛불민심이 바라는 바가 아닐까 싶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