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송범석 기자] 글은 시대의 지혜를 머금은 찬란한 유산이다. 그래서 사람들은 옛글을 탐독한다.

책은 고고한 선비들의 일상을 담은 고문(古文)들을 엮었다. 선진들은 산수(山水)를 보면서도 진리를 깨닫고, 전원의 고요함 속에서 세상의 비루함을 비웃었으며, 자신의 주거공간에 명칭을 부여해 삶의 방향을 일깨우기도 했다.

조선 후기의 문인화가 이하곤(1677~1724)은 세상의 공평한 도리는 오직 ‘흰머리’뿐 이라고 말했다. 그는 세월을 고스란히 담은 흰머리를 통해 자신을 되돌아본다. 이하곤은 외모는 변하는데 자신의 마음은 예전 그대로니 흰머리가 많아질수록 그에 맞추어 마음을 바꿔 바르게 만들겠다고 다짐한다.

같은 시기 문인 윤기(1741~1826)는 “나쁜 사람, 나쁜 책, 나쁜 산수는 없다”고 말한다. 즉, 사람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취하는가가 문제일 뿐이라고 강조한다. 애초에 좋은 것과 좋지 않은 것이 따로 있지 않다는 것이다. 정말 좋은 사람을 알고 좋은 책을 읽고 좋은 산수를 보는 데 뜻을 둔다면 그보다 좋은 것이 없다는 교훈을 남긴다.

남인의 영수 체제공이(1720~1791) 병이 들었다. 그가 위독하다는 말을 들은 체제공의 오랜 벗은 수소문해 지렁이탕을 먹도록 권유한다. 하지만 체제공은 한사코 지렁이탕을 먹지 않는다. 사람에게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는 지렁이를 달여 먹는 것은 성인의 법도가 아니라는 뜻에서다.

체제공은 한걸음 더 나아가 깊은 깨달음을 전한다. 자기의 이익을 위해 허물없는 지렁이를 죽이는 것이 부귀영화를 위해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죽이는 소인배와 무엇이 다르겠냐는 훈계다. 체제공은 경고를 덧붙인다.

“어찌 알리오? 미래에 자기보다 지혜와 힘이 더 나은 자가 있어 자신을 죽여 그가 지금 한 것처럼 하려 든다면 자신에게 나온 것이 자신에게 돌아가는 법이니 그 화가 무궁할 것임을. 그러니 이 또한 슬프지 않겠소?”

이처럼 우리 선조들은 남을 위해 세상을 호령한 것이 아니라 자신을 위한 세상을 호령하고 스스로를 사랑했다. 나긋하고 아름답게 흐르는 선비들의 미문은 광막한 세상을 마주하는 현대인들에게 소중한 선물이 될 것이다.

이종묵 지음 / 김영사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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