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 시론] 자유 곧 보수의 가치를 잃은 ‘자유’한국당
[천지일보 시론] 자유 곧 보수의 가치를 잃은 ‘자유’한국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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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안타까운 마음에 다시 펜을 든다. 대한민국의 미래가 염려되기 때문이다. 유구한 역사와 문화를 간직한 나라 대한민국이다. 긴긴 역사를 이어오면서 때론 흔들릴 때도, 어려울 때도, 배고플 때도, 외세의 침략도 경험해 봤다. 하지만 요즘과 같이 이 나라의 정체성마저 흔들린 적은 아마 없었던 것 같다.

요즘 정치권은 여당과 야당의 대표권을 놓고 여론전과 눈치 싸움이 한창이다. 한쪽에선 자중지란 속에 끝이 보이지 않는 파열음이 계속되고 있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내버려 두고 다가올 정국의 주도권을 찾기 위해 내부의 주도권싸움부터 치열하게 진행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과정 속에서 대한민국 보수의 가치와 진로에 대해 염려해 보지 않을 수 없다. 이유인즉, 보수는 민족의 역사성과 나라의 근본 즉, 헌법과 질서를 지탱하고 유지한다는 기본 가치와 분명한 이념을 가져야 하기 때문이다. 어찌 보면 ‘불가역적’이란 표현이 다른 데보다 이에 쓰이는 것이 가장 적절해 보인다.

자칭 대한민국 보수 정당인 자유한국당은 국정농단과 6.13지방선거의 참패로 한국 보수의 새로운 지평을 강하게 요구하게 됐으며, 환골탈태의 기치를 내걸고 자기 개혁의 목소리를 한껏 드높이고 있다. 이런 와중에 한국당을 혁신하고 지도해 나갈 적임자를 찾느라 요란하다. 자의든 타의든 물망에 오르는 인사들이 사뭇 회자되고 있다.

이 대목에서 분명히 할 게 있다. ‘보수’란 무엇인가에 대한 질문이며 정체성에 대해 다시 묻지 않을 수 없다. 앞서 언급했듯이 보수의 가치와 이념은 불가역적이다. 그러함에도 혁신의 선봉장이 될 비상대책위원회의 위원장 물망에 오른 인사의 면면에서 회의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어 필자는 부득이 펜을 다시 들었다. 하마평에 오른 인사들은 다른 그 누구도 아닌 바로 자유한국당 의원들에 의해 추천되고 있다는 데 그 심각성이 있다는 얘기다.

이 비상시기에 자유한국당이 참으로 보수의 기치를 내건 정당이 맞고 보수 정당으로서의 재건을 꾀하고자 비상대책위원회를 구성한 게 맞다면, 비대위원장으로서의 자격과 덕목 1호는 바로 보수의 가치와 이념을 분명히 하는 인물이 돼야 한다는 지적을 하고 싶은 것이다.

임시방편 내지 조급한 마음으로 떠나간 민심을 가져오겠다는 얄팍한 계산으로 인기위주의 파격적 인사를 앞세운다면 그야말로 대한민국의 미래는 암울해질 것이며, 무엇보다도 비상대책위는 재건이 아니라 붕괴의 길을 앞당기는 결과를 초래할 것이다.

다시 말해 그 누구보다, 그 무엇보다 보수의 이념과 가치의 정체성을 가진 인물이 아닌 인기영합의 파격적 인사를 추천한 한국당 의원들의 정체성이야말로 수술대에 올라야 하며, 포퓰리즘에 물들어가는 어쩔 수 없는 정당임을 스스로 인정한 셈이 됐다.

한반도는 남과 북으로 나뉘어져 있으며, 남쪽은 자유민주주의 체제와 자유시장경제를 원칙으로 잿더미 속에서도 세계가 부러워하는 일류국가로 발돋움했다. 반면 북쪽은 공산주의 체제와 사회주의계획경제 체제에 기반하고 있으며, 인권·경제 등이 세계 최악이라는 불명예를 안고 있다.

이와 같이 대한민국 헌법은 ‘자유민주주의’와 ‘자유시장경제’를 최고의 가치로 여기며, 온 국민이 이를 수호하고 지키는 게 선택이 아닌 의무며, 이것이야말로 건강한 보수다. 즉, 민주주의의 최대 가치는 바로 ‘자유’에 있는 것이다. 그러함에도 오늘날 이 ‘자유’라는 두 글자가 왜곡되고 나아가 하염없이 모독당하는 현실이 됐다. 국정교과서를 통해서도 ‘자유’의 가치는 퇴색돼 가고 있으니 자유대한민국의 정체성은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이만하면 왜 보수가 중요하며 보수의 정체성을 회복해야 하는지, 또 보수의 가치를 아는 자가 보수의 지도자가 돼야 하는지를 더 이상 설명할 방법은 없다.

이상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보수의 가치는 위대하며, 오늘 우리가 살아가는 이유이기도 하다.

오늘 우리는 자유주의는 경험했지만 공산주의는 이론뿐 경험하지 못한 고로 막연한 동경과 그리움까지 갖게 되는 시대를 맞이했다. 그러나 그 답은 남과 북의 현실이 그 답이며, 이를 증명하는 증인들이 또 있다.

냉전시대 동독을 위시한 동유럽국가들(약 25개국)은 자신들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약 25년에 걸쳐 공산주의를 경험해야만 했다. 25년 후 소련치하에서 벗어난 동구권 국가들은 한결같이 자유주의와 시장경제의 우월성을 강조하며 공산주의와 사회계획경제 체제의 허구성을 간증한다. 특히 루마니아 에밀 콘스탄티네스쿠 전 대통령은 앞장서 자유의 가치와 소중함을 역설하며 세계를 돌고 있다.

평화의 참 정신이 아닌 모호한 평화의 이름을 앞세워 이념과 체제를 혼동케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이며, 국민들은 분별의 눈으로 현실을 직시할 수 있어야만 한다.

이처럼 엄중한 때를 맞아 보수는 물론 진보 또한 참 가치를 깨달아 본질을 회복하고 세움으로써 건강하고 건전한 두 바퀴가 밝은 미래를 향해 아름다운 수레를 끌어갈 수 있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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