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종윤 소설가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3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7.3

십상시들은 계교를 써 대장군 하진을 궁궐로 끌어들여 목을 베어 버렸다. 밖에서 기다리던 원소는 하진의 죽음을 보자 영을 내려 궁궐을 공격해 내시들을 도륙내기 시작했다. 벼슬을 버리고 낙향을 하려던 중랑장 노식은 궁궐에서 변란이 일어난 것을 보고 앉아 있을 수만 없어 창을 들고 궁으로 내달렸다.

달리면서 멀리 바라보니 내시 단규가 하태후를 핍박해 전각 아래로 끌어내리는 순간이었다. 노식은 노한 머리털이 하늘을 향해 뻗쳤다. 분함을 참을 수 없었다. 창을 들고 전각으로 뛰어가 벼락같은 소리로 단규를 꾸짖었다. “이놈, 천하의 역적아! 네 어찌 태후 마마를 겁박하느냐!”

단규는 노식을 보자 혼비백산돼 몸을 돌려 달아났다. 태후는 급히 전각에서 뛰어내렸다. 노식은 태후를 구하여 모시었다.

한편 하진의 부장 오광은 청쇄문에 불을 지르고 내전으로 뛰어 들어가니 하진의 동생으로 십상시와 한패가 돼 있던 하묘가 칼을 끌고 나오는 것이었다. 오광은 분함을 이기지 못했다.

“하묘는 십상시들과 결탁해 형을 죽였으니 마땅히 잡아 죽여야 할 것이다.” 오광이 큰 소리로 외치자 그에 동조하는 목소리가 진동을 했다. 하묘는 급히 도망을 치려했으나 겹겹이 둘러싼 병사들을 헤치고 나갈 수가 없었다. 그는 칼에 찔리고 도끼에 찍혀서 육신이 너덜너덜한 걸레 조각이 됐다.

원소는 다시 병사들에게 영을 내려서 십상시들의 가족을 찾아서 늙은이나 젊은이를 막론하고 모조리 도륙을 내니 때 아닌 수염 없는 사람들이 잘못 걸려들어 죽는 자도 상당수였다.

궁중으로 쳐들어간 조조는 전각의 불을 끄고, 노식이 구해 모신 하태후를 청해 임시로 나라 일을 권섭(權攝)하게 한 뒤 군사를 보내서 장양이 협박해 데리고 간 젊은 황제의 행적을 찾았다.

그즈음 장양은 젊은 황제와 진류왕을 협박해 충천한 화염 속에서 불길을 피하고 연기를 무릅써 북망산을 향해 달아나는데 밤은 깊어 삼경이었다. 뒤에서 함성이 크게 일며 쫓아오는 인마 소리가 요란했다. 장양이 머리를 들어 바라보니 앞에서 나오는 사람은 하남의 중부연리 민공이었다. 민공이 장양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역적놈들은 달아나지 마라! 여기 중부연리 민공이 우리 황제를 구하러 왔다.”

장양은 황겁했다. 그는 일이 급하니 몸을 날려 강물로 뛰어들었다.

젊은 황제와 진류왕은 쫓아온 군사들의 진의를 알 수가 없었다. 그들은 숨을 죽이고 강물 옆 우거진 갈대밭으로 몸을 숨겨 버렸다. 민공의 군사들은 숨어버린 황제를 아무리 찾아도 찾을 수가 없었다. 그들은 다시 다른 길을 향해 찾으러 나갔다.

젊은 황제와 진류왕은 캄캄한 밤에 갈대 속에서 숨을 죽이고 엎드려 있는 동안 밤은 어느덧 사경이 됐다. 이슬이 차고 배는 고팠다. 어린 황제와 진류왕은 서로 부둥켜안고 소리 죽여 울었다. 얼마 동안 울고 나니 사면은 고요하고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어린 진류왕이 황제에게 속삭였다.

“형님, 이곳은 오래 있을 곳이 못됩니다. 살길을 찾아서 다른 곳으로 가십시다.”

형제는 옷고름을 서로 매어 떨어지지 않도록 한 뒤에 강 언덕으로 기어올랐다. 땅에 널브러진 가시덤불은 두 사람의 손과 발을 찔렀다. 죽을힘을 다해 언덕을 기어올랐으나 캄캄한 칠흑에 길은 보이지 않았다. 어린 형제의 앞길은 갈수록 태산이었다. 형제가 지쳐서 한숨을 쉬고 있을 때 홀연 수천 마리의 반딧불이 엉클어져 한덩어리가 되어 황제의 앞으로 환하게 모여 들었다.

“하늘이 우리 형제를 도우시는 것입니다.”

진류왕이 황제의 손을 잡고 환하게 밝혀진 반딧불을 따라 길을 찾아 나섰다. 형제가 얼마간 길을 걷고 나니 오경이 됐는데 발이 부르터서 걸을 수가 없었다. 구중궁궐에서 험한 일 없이 자란 형제들이어서 더 이상 촌보도 옮길 수 없었다.

두 형제의 앞에는 묏기슭 밑에 쌓여 있는 노적가리가 보였다. 어린 황제와 진류왕은 노적가리 위에 털썩 주저앉아 그대로 누워 버렸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