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와 민족운동]위정척사의 반침략론
[종교와 민족운동]위정척사의 반침략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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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주현 문학박사

▲ 성주현 문학박사ⓒ천지일보(뉴스천지)
서세동점의 시기 제국주의 세력에 직면한 한말, 이 시기 위정척사는 자신들은 도덕적으로 정당하고, 서양세력은 부당하다고 인식하였다.

현실적으로는 그들은 강자이고 자신들은 약자라고 인식하였음에도 불구하고 춘추의리에 입각하여 제국주의 침략세력에 대응하고자 하였다. 춘추의리는 이적(夷狄)이 중화의 예의질서를 존중하면 이적이라도 중화로 대우하고, 이적이 중화의 예의질서를 거부하고 도전해 오면 그것을 배척, 응징해 중화를 지키는 것이다.

이적이 중화의 예의질서를 존중하고 천하가 평화공존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을 가장 이상으로 삼았다. 이러한 측면에서 한말 위정척사는 제국주의 세력이 중화의 예의질서를 수용하고 이에 편입되기를 희망하였다.

하지만 현실은 그와 반대의 상황으로 전개되었다. 이에 위정척사는 국권의 수호를 정당화하는 배척의 논리로 대응하였던 것이다. 위정척사론자들은 제국주의 열강의 침략이 조선의 정치, 경제, 문화 등 전반에 걸쳐 진행될 것이라고 예단하였다.

 따라서 위정척사는 민족의 정체성과 정학을 수호한다는 것에만 집착하지 않고 국권을 수호하는 데까지 논리를 확대하였던 것이다. 이러한 논리는 단순한 도덕적 정통론에만 머무른 것이 아니라 국가의 생존권을 현실적 문제로 직시하였음을 의미한다.

위정척사론자로 널리 알려진 이항로는 “인간이 인간으로 남느냐 금수로 타락하느냐, 국가가 생존하느냐 망하느냐가 호흡지간에 결판나게 되었다”라고 할 정도로 당시의 위기의식을 반영하였다.

서구의 근대민족주의는 이웃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제국주의로 발전하였다. 이에 비해 위정척사는 평화적 세계질서의 국권론을 제시하였다. 위정척사는 상부상조와 평화공존, 대동사회 구현의 유교적 이념이 개인뿐만 아니라 국가 간에서 적용되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지부복궐척화의소(持斧伏闕斥和議疏)’로 유명한 최익현은 일본을 금수로 규정하고 일본과의 강화를 배척하였지만 일본이 서양의 제국주의를 포기하고 춘추의리를 회복한다면 수교할 수 있다고 하였다.

위정척사론자들은 당시의 일본이나 서양 열강을 이적보다도 못한 금수로 인식하였다. 그러나 그들이 춘추의리가 무엇인지 제대로 알지 못하였기 때문에 그렇다고 보았다. 만일 그들이 춘추질서의 교화를 받는다면 자연스럽게 평화적 세계질서가 이루어진다고 하였다.

이러한 점에서 위정척사는 왜양(倭洋)의 정치, 경제, 문화적 주권을 침해하는 것을 배척하는 것이며, 결코 이웃 나라의 주권을 침해하는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위정척사에는 반제국적, 반침략론이 내포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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