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라곤 논설실장/시인

 

스포츠는 기록 향상과 득점을 향한 끝없는 도전이다. 기록경기에서는 얼마나 빨리, 높이, 멀리 뛰었는지가 관건이고, 또 단체경기에서도 선수 개인이나 단체가 점수를 많이 올렸는가가 핵심이다. 1분 1초의 기록을 단축하기 위하여, 1점의 점수를 더 얻어내기 위한 선수들의 노력은 끝이 없는데 수많은 경기종목에서 선수들이 기록 도전에 나선 가운데 어떤 종목에서든 신기록이 나왔다는 뉴스를 들으면 대단하다는 생각이 먼저 든다. 지난주 강원도 정선 종합경기장에서 열린 제72회 전국육상경기선수권대회 남자 200m 결승에서 33년 만에 한국 신기록이 나왔다. 400m 국내 일인자였던 박태건(27, 강원도청) 선수가 2년 전 200m 종목으로 바꿔 훈련한 끝에 ‘20초40’의 기록으로 결승선을 통과한 것이다. 이 기록은 1980년대 ‘육상 스타’ 장재근이 세웠던 ‘20초41’의 대기록을 0.01초를 당긴 것으로 올해 아시아 선수들이 세운 기록 중 다섯째에 해당하는 경쟁력 있는 기록이다. 박태건 선수는 올해 8월 인도네시아에서 열리는 아시안게임 출전 자격을 얻었다하니 기쁜 일이 아닐 수 없다.

오래전부터 스포츠가 국민 스포츠로 자리 잡았지만 아직까지도 프로야구, 프로축구 등 일부 경기 위주로 흐르다보니 개인종목이나 경쟁력이 약한 부문에서는 선수층들도 엷은 게 특색이다. 대표적 비인기 종목이었던 컬링이 지난 2018 평창동계올림픽에서 국민 관심을 많이 받았는바, 이에 한국여자팀은 사상 첫 은메달로 국민 성원에 보답했다. 어찌됐거나 인기종목이나 개인·단체 유무를 떠나 스포츠는 감독과 선수들이 만들어내는 경기 성과에 따라 국민 애증의 증폭도 크고, 성원과 비난이 교차되고 있음을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또 한 번 실감하게 됐다.  

한국대표팀은 국민 기대와는 달리 러시아월드컵에서 16강행 본선 진출에 실패했다. 밤늦게 경기를 지켜본 많은 국민은 국가대표팀이 뛴 예선전을 보면서 적잖게 실망하면서 때로는 짧은 환희도 맛보았을 것이다. 지난 대회 디펜딩 챔피언이자 FIFA 세계 랭킹 1위인 독일팀과의 예선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1승도 못하고 끝나는구나” 실망의 빛을 감추지 못하면서 신태용 감독이 제시한 ‘2대 0’ 승리 예상에 대해 그저 하는 소리라 한 귀로 흘려 보냈다. 경기 후반 추가시간에 2점을 얻는 기적 같은 일이 났던바, 한국이 전차군단을 꺾을 줄은 차마 몰랐다.

이번 러시아월드컵에서 대표팀이 보여준 1승 2패의 성적을 놓고 축구 전문가나 일반인들 사이에 평가가 각기 다르다. 축구협회 관계자나 전문가들은 신태용 감독에 대한 전반적인 전략전술과 선수기용 등 전문적 입장을 피력하면서 16강행 좌절에 대한 분석에 열중했다. 그러면서 이번 월드컵으로 계약이 만료된 국가대표팀 감독 선임에 대한 논의에 매달리고 있다. 당장 아시안게임이 8월로 눈앞에 성큼 다가왔기 때문이다.  

반면, 월드겁 경기를 보면서 한국 승리에 응원을 보낸 많은 국민들은 1, 2차전 패배에 대해  아쉬움을 삼키면서도 3차전에서 세계 최강을 꺾은 속 시원한 결과에 대해 기뻐했다. “세계랭킹 57위 팀이 1위인 독일팀을 이기다니…” 이 기적 같이 일어난 반전에 대해 우리 국민뿐만 아니라 세계인들이 놀라워했고 독일도 수긍했다. 이 같은 신태용 호의 악착같은 투지로 80년 만에 월드컵 본선행이 좌절된 독일의 뢰브 감독은 “한국이 공격적이었고, 훌륭한 경기력을 보였다”고 평가하면서 신태용 감독과 선수들이 예상외로 잘 했다는 점을 시인했던 것이다. 

밤늦은 시간까지 필자는 한국대표팀의 월드컵 경기를 지켜봤다. 아직 지구촌 축제로서 월드컵 본선이 진행되고 있긴 하나, 필자 생각으로는 모란이 이미 졌으니 다음 모란이 필 때까지 기다릴 수밖에 없다. 그 생각을 하는 순간 머릿속에 남는 뚜렷한 이미지가 있으니 ‘허망하면서도 결코 허망하지 않다’라는 게 이번 월드컵에서 보여준 국가대표팀에 대한 나의 느낌이다.

2018러시아월드컵에서 우리 대표팀이 남긴 족적을 내 나름대로 정리해보면, 무엇보다 세계 최강 독일을 이겼다는 쾌거이다. 그 다음이 16강 본선 무대에 입성하지 못했다는 점이고, 1, 2차전에서 페널티킥으로 2점 실점, 기성용 선수 다리를 걷어차 부상 입힌 명백한 파울을 지나친 심판의 오심에서 기인된 실점이 아쉬울 따름이다. 결론적으로 두고두고 아쉬움을 남겨준 이번 대회지만 실패 속에서 한국축구의 희망의 불씨를 보게 된 것은 큰 수확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월드컵에서 감독과 선수들이 마음고생이 많았고, 절박함도 따랐다. 두 골을 넣어 세계적 반열에 오른 손흥민 선수가 감사와 사과의 말에 담긴 속내에서 대표팀의 그림자가 묻어난다. “(감독님이) 고생 많이 하신 거 선수들 잘 알고 있고 국민 분들도 알아주시면 좋겠다. 더 멋있는 모습 더 보여줄 수 있는 감독님이시다.” 그렇듯 스포츠가 선수와 감독, 국민성원이 합쳐진 하모니 속에서 진정한 감동과 의미를 찾을 수 있다는 값진 교훈을 일깨워준 월드컵경기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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