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조선 영조 때 시인 노긍(盧兢)은 요즈음 용어로 전위 시인이었다. 과거에 급제하고도 줄이 없어 청주에 은거하면서 어린아이들을 가르치는 데 젊음을 다 보냈다. 오래 전 노긍의 문적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그가 지은 시구 하나를 찾은 것이 기억난다. 그는 인생을 ‘뜬구름(人生如浮雲)’에 비유했다. 잠시 나타났다 사라지는 허무한 존재라고 개탄한 것이다. 인생이 허무하다는 것을 노래한 이가 어디 노긍뿐인가. 조선 여류 문인 홍혜사가 지은 규사(閨思)도 덧없는 인생을 원망해 지은 시다. 그녀는 사대부의 첩으로 시문을 짓는 것을 좋아했다.  

- 지는 꽃 흐르는 물 작은 다리 서쪽에(落花流水小橋西)/ 좋은 손님 들어오자 달은 지려 하네(好客入門月欲低)/ 홍등 앞 사람 이미 늙음이 한스러운데(却恨紅燈人已老)/ 무정한 방초는 비단 물결에 흐르네(無情芳草浣絲溪) -

송강 정철(松江 鄭澈)의 유명한 ‘장진주사(將進酒辭)’는 권주가다. ‘짧은 인생 죽으면 거적으로 말아다 묻힐 테니 살아있는 동안 꽃가지 꺾어들고 술이나 마시자’는 것이다. 50대 후반 별세했으나 짧은 인생 술과 노래로 즐겁게 살다 떠났다. 

조선 말기의 소리꾼으로 이름을 낸 박효관(雲崖 朴孝寬). 그는 시와 노래, 술과 거문고를 타며 일생을 산 풍류객이다. 당대 최고의 권력을 가진 대원군과도 마음이 맞아 특별히 비호를 받았다. 
그런데 그의 가곡을 보면 대부분 인생무상을 노래한 것이다. 때로는 술과 남녀의 정을 읊기도 했다. 

- 동군(東君)이 돌아오니 만물(萬物)이 개자락(皆自樂)을, 초목곤충(草木昆蟲)들은 마다 회생(回生)커늘, 사람은 어인 연고(緣故)로 귀불귀(歸不歸)를 하는고… -

옛 서민들이 즐겨 부르던 민요에도 인생무상을 한탄한 것이 많다. 사철가도 사계의 변화와 늙어가는 인생을 아쉬워한 노래다. 경상북도 달성군에 전해 내려오는 민요 ‘허무가(虛無歌)’는 인간이 한번 세상을 떠나면 돌아 올 수 없는 것을 한탄하고 있다. 

- (전략)…가자가자 어떡가자/ 열두대왕 문을 열어/ 너오도록 기다린다… 꽃 가매를 자꾸 타고/ 높은 데는 낮아지고/ 낮은 데는 깊어지고/ 만첩산중을 들어가니… 해동화야 해동화야/ 꽃진다고 설워마라/ 밍년 춘삼월 또다시 오면/ 다시 한분은 피지만은/ 우리야 인생 한번가면/ 다시 올 줄을 모리더라… -

JP로 호칭되며 한국 현대사에 3김 시대를 주도하던 김종필 전 총리가 영면했다. 오랫동안 충청인들의 정치적 거인으로 지내온 JP는 풍운아로 살아온 인생 역정만큼 ‘춘래불사춘’이니 ‘자의반타의반’ 등 숱한 유행어를 만들었다. 

그는 12.12 후 군부가 정권을 잡기 전 체육관 선출 대통령이 될 수도 있었으나 주변의 강력한 권고에도 손사래를 치며 고사했다. 역사에 역행하는 행동을 하지 않아야겠다는 의지로 보아야 한다. 그러나 후배 군인들은 그를 체포했고 모든 것을 박탈했다. 재기는 했으나 만년 2인자로 대통령에 대한 꿈은 이룰 수 없었다. 

JP는 90세가 되면서 묘비를 직접 썼는데 여기에서도 인생의 허무함을 적었다. ‘…나이 90에 이르러 되돌아보니 제대로 이룬 것 없음에 절로 한숨짓는다.’ JP는 임종직전 후배 정치인이 문병을 온 자리에서는 ‘정치는 허업(虛業)’이라고 말했다. 한때의 권력과 영화, 명예가 한낱 허무한 것임을 말한 것인가. 

‘인생은 허업’이 될지언정 정치가 허업이 돼서는 안 된다. 권력은 허망한 것이지만 정치는 오로지 국민을 위해 역사에 남을 실업(實業)을 쌓아야 한다. 정치, 정치인의 성공이 바로 여기에 있다. JP의 생전 일화가 회자되는 요즈음, 그가 정치를 ‘허업’이라고 정의한 것은 아무래도 거인답지 않은 멘트라서 적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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