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승용 시민주권 홍보기획위원장

“코미디 프로그램도 이만큼 웃기지는 못할 것이다.”

이번 주에 진행된 ‘8.8개각 인사청문회’를 두고 누리꾼들 사이에서 오가는 말이다. 이번 개각은 여러모로 관심과 기대를 모았다. 실제로 처음 뚜껑이 열렸을 때 모두들 40대 총리의 발탁 등 나름대로 의미있는 카드에 기대감을 갖기도 했다.

하지만 불과 2주일만에 이번 개각은 이명박정부 들어 가장 최악의 개각이라는 평가가 나올 정도로 각 후보자들의 불법과 비리, 개인적 흠결 등이 줄을 잇고 있다. 위장전입과 투기성 부동산매매, 재산허위신고는 필수사항이요, 논문표절과 스폰서 관행도 양념으로 곁들여졌다. 이로 인해 이번 개각에 대한 기대감은 한순간에 실망감으로 뒤바뀌고 있다.

이번 개각에 기대를 가졌던 것은 비단 필자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이번 개각은 이명박 대통령이 임기 중반 들어 ‘서민행정’을 내걸면서 이뤄진 첫 개각이었다. 그래서 이 대통령의 서민행보에 걸맞는 인사들이 발탁될 것으로 믿어 의심치 않았던 것이다.

하지만 결과는 반대였다. 가난한 시골 소장수의 아들이라는 김태호 총리 후보자는 정작 청문회에서 ‘위장서민’임이 드러나고 있다. 유력 중앙정치인의 집에서 대학을 다니고, 도지사 재직시에는 공무원을 관사의 사실상 가사도우미로 활용하고, 도청의 준대형 승용차를 부인의 전용차로 유용하고, 서울 출장 시에는 하룻밤 숙박비만 90여만 원에 달하는 호화호텔에 묵고, 부인에게 고가의 명품 핸드백을 선물한 그가 서민이라면 대한민국의 ‘진짜 서민’은 과연 어떻게 사는 사람일까?

김 총리 후보자는 그래도 양반 축에 속한다. 신고재산만 20억 원이 넘는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는 쪽방촌 투기를 해놓고 ‘노후대비용’이라고 둘러대고, 신재민 문화관광부 장관 후보자는 13년 동안 무려 17번이나 부동산거래를 한 ‘재테크의 달인’임이 드러나고 있다.

후보자들이 이처럼 서민행보와는 거리가 먼 인사들이라는 점보다 더 실망스러운 것은 무려 한 달여 동안 언론과의 짬짜미속에 인사검증을 했는데도 ‘비리백화점’의 면면이 속출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실 이번 개각은 희한한 과정을 거쳤다. 한국언론사상 처음으로 출입기자단과 개각에 대해 포괄적 엠바고협정을 맺었다. 청와대가 발표할 때까지 일체 개각에 대한 사전보도를 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청와대의 요구에 선뜻 응해준 출입기자단의 행태도 한심하지만 기자단의 ‘애국적 결단’에도 불구하고 사전검증이 이토록 허술했다는 사실은 더 황당하다.

물론 청와대 측은 이번에 문제가 된 사안은 모두 사전에 체크가 됐다고 밝히고 있다. 하지만 청문회에서 양파껍질 벗기듯 드러나고 있는 각양각색의 비리항목을 살펴보면 거주지 이전문제나 금융 및 부동산거래 내역 등 행정전산망 등으로 확인이 가능한 통상적 사안만을 대충 챙겨봤을 가능성이 커 보인다. 아무리 이 정부가 강심장이라해도 청문회에서 확인된 추잡한 사안들을 사전에 알았는데도 임명을 강행했다고 믿고 싶지 않다.

이 같은 문제점 외에 간과할 수 없는 사안이 또 있다. 청문회를 통해 각종 흠결이 판도라의 상자처럼 터져나오는데도 청와대와 여당이 꿈쩍도 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특히 한나라당은 자신들이 야당시절에 청문회 때마다 ‘전가(傳家)의 보도(寶刀)’처럼 써먹던 후보사퇴공세에 대해 이번에는 꿀먹은 벙어리다.

한나라당은 김대중정부 시절인 2002년 7월 장상 총리 후보자에 대해 위장전입과 장남 병역기피의혹을 내세워 사퇴공세를 펴 결국 낙마시켰다. 이어 한 달여 만에 장대환 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위장전입과 세금탈루의혹 공세를 펴 또 낙마시켰다. 뿐만 아니다. 노무현정부 때인 2005년에는 이기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에 대해 판공비 과다사용 등의 공세를 펴 사흘 만에 사퇴시켰다. 또한 2006년에는 김병준 교육부총리 후보자에 대해서도 논문표절을 문제삼아 낙마시켰다. 서슬이 퍼렇던 당시의 상황에 견주면 이번 후보자들 가운데 대부분은 짐을 싸야만 할 것이다.

남이 하면 불륜이고 내가 하면 로맨스요, 남이 하면 끼어들기요 내가 하면 차선변경식의 이중잣대는 이제 정치권에서 사라져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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