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석한 연세신경정신과 의원 원장

얼마 전 여성부 설문조사 결과 발표는 충격적이었다.

청소년 연예인 10명 중 1명이 ‘성적(性的) 노출’을 경험한 것으로 드러났다. 10대 청소년이 연예인 활동을 하면서 다리나 가슴, 엉덩이 노출을 경험했다는 것이다. 또 9.1%는 무대와 촬영장에서 애무, 포옹, 키스를 경험했다고 답변했다. 음담패설이나 성희롱 등 선정적인 암시가 담긴 말 또는 행동을 경험한 청소년 연예인도 4.5%나 됐다.

참으로 개탄스러울 뿐이다. 어른들의 욕심은 과연 어디까지인가. 이어지는 설문 결과 역시 놀라웠다. 그들은 학습권을 침해당했고, 장시간 근로에 시달리고 있었다.

정신과 전문의인 필자가 청소년을 상담하다 보면, 연예인이 되고 싶어 하는 수많은 아이들을 만난다. 그들 중 한두 명은 어릴 적부터 꿈을 키워오면서 실제적인 노력을 하지만, 대부분의 아이들은 현실도피적인 차원에서 연예인을 지망한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즉 학교를 다니기 싫어하거나 현실 적응에의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화려해 보이는 연예인이 되고자 함으로써 돌파구를 마련한다.

음악과 춤, 또는 연기에 특별한 재능이 없는데도 부모를 졸라서 연예인 훈련 기관이나 학원을 다닌다. 처음에는 내켜하지 않았거나 반대했던 부모도 자식의 바람에 어쩔 수 없이 울며 겨자 먹기로 후원을 한다. 돈도 꽤 많이 든다. 그러나 돌아오는 것은 현실의 냉혹함과 마음의 상처다. 유명 연예인이 됨이 얼마나 힘든지를 깨닫는 것은 오히려 다행이다. 그보다는 아이를 둘러싼 어른들이 자신을 존중하지 않거나 상품 취급하는 것에 큰 충격을 받는다고 했다.

청소년은 발달 과정 중에 있는 시기다. 몸은 거의 자라서 어른과 비슷해졌을지 모르지만, 두뇌 발달이 아직 미성숙하여 마음과 정신은 어린 상태다. 따라서 여러 가지 요인들을 골고루 고려해서 현실적으로 판단하는 능력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또한 거절에 대한 두려움 내지는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함 때문에 자신의 감정이나 의사에 반하여 행동하기 쉽다. 주변 어른들의 권유와 압력에 어쩔 수 없이 따르는 것이다. 그러니 ‘조금 더 노출하라, 공부가 뭐 그리 중요하나, 시간을 초과해서 일하라’ 등의 요구를 성공의 지름길이라는 미명 하에 거리낌 없이 하는 사람들에게 당하는 것이다.

자신의 진정한 생각을 표현하지 못했다는 자책감과 내 힘으로는 어쩔 수 없다는 무기력감이 아이를 감싼다. 당연히 우울해지거나 불안해하는 아이들이 생겨난다. 특히 성적으로 이용될 가능성이 높은 여자 청소년 연예인들이 정신과적 문제에 취약하다. 또한 성적인 행동을 경험한 소녀들은 향후 성인이 되어서 과도한 성적 문란 혹은 억압의 극단적인 태도를 보일 가능성이 높다.

금번 조사에서도 여자 청소년 연예인 및 지망생(50명)의 경우 불면증(64.3%)을 겪거나 우울증 약을 복용(14.3%)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들은 청소년인가 연예인인가. 당연히 연예인이기에 앞서 청소년이라는 정체성이 우선되어야 한다. 청소년을 보호하고 잘 자라게 하는 것은 우리 어른들과 사회의 중요한 책무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는 청소년 연예인이라는 표현보다는 연예인 청소년이라고 하는 것이 맞다.

이제라도 정부가 나서서 연예인 청소년의 성 보호와 근로권 및 학습권을 보장할 다각적인 방안을 검토한다고 하니 다행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연예인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어른들이 연예인 청소년을 상품으로만 보지 않고, 인격이 형성되어 가는 사람으로 봐야 한다는 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청소년의 발달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과 이해가 이루어져야 한다. 그것은 자신의 청소년 시절을 되돌아보는 것과 함께 그들과의 진지한 대화가 있을 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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