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경우 소설가 문화칼럼니스트

대중이 지켜보는 가운데 사람의 됨됨이를 따지는 것이 인사청문회다. 대한민국 국회에선 지난 한 주, 이 인사청문회라는 것으로 연일 뜨거웠다. 성미 급하게 말하자면, 뜨거웠다기보다는 역겨웠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란 영화가 있다. 1930년대 만주벌판, 보물지도를 놓고 각기 다른 개성을 지닌 사나이들이 펼치는 유쾌한 코믹 액션물이다.

돈 되는 것이라면 물불 가리지 않는 현상금 사냥꾼, 최고가 아니면 견디지 못하는 마적단 두목, 잡초 같은 생명력을 지닌 열차털이범. 사나이들은, 성격도 다르고 출신 성분도 제각각이지만 인생역전이라는 욕망을 위해 좌충우돌한다. 그 셋을 인간 됨됨이로 따지자면,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으로 나뉜다.

영화는 누가 어떤 놈인지 분명하게 보여준다. 욕망을 향해 질주하지만 여자와 아이에게는 결코 총질을 하지 않는, 그야말로 신사답기 짝이 없는 윤태구는 좋은 놈이다. “일본 놈 밑에 사나 양반 놈 밑에 사나 그게 그거”라는 이 사나이는, 비록 그가 사회주의나 애국지사는 아닐지언정, 고달픈 민초들의 심사를 뼈아프게 드러낸다.

청문회가 펼쳐진 국회, 혹은 정치판이라는 곳은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이 마구 말을 달리는 만주벌판을 닮았다. 금배지가 됐든 고관대작 벼슬자리가 됐든, 그것들을 향한 욕망의 먼지가 뿌옇게 피어오르는 황량한 벌판.

인간에 대한 예의, 자신을 낮추는 겸손, 상대를 아끼는 배려, 대의를 위한 순수한 열정 같은, 나라를 위해 일을 해야 하는 공복(公僕)으로서 갖춰야 할 덕목들은, 욕망의 먼지 속에 가려져 있었을 뿐.

허물이 있으면서도 주저 없이 욕망의 기차에 올라탄 자들과, 그것을 잘 알고 있으면서도 그들에게 승차 티켓을 끊어준 또 다른 그들 덕분에, 대한민국 여름날의 불쾌지수가 날카롭게 치솟았고 사람들은 손부채를 펄럭이며 숨이 막힌다고 했다.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가려내야 할 의무를 가진 그들 중에서도 더러 태만하거나 엉뚱한 소리로 물을 흐려 놓는 자들도 있었다. 만인이 지켜보는 걸 알면서도 마구 삿대질을 하고 막말을 해대는 건 또 무엇인가. 묻는 자의 품격도 있는 것이다. 겨 묻은 입으로 구린내를 탓하는 꼴이란.

그런데, 청문회를 한답시고 모여 앉은 인간들이 사실은 모두 한통속이란 아픈 사실이 드러나 버렸다. 국회의원이란 자들이 여야 가리지 않고 대동단결하여, 금배지를 한 번만 달아도 매달 120여 만 원씩 평생 연금을 받을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의 법안을 통과시킨 사실이 뒤늦게 발각되고 말았다.

육탄전을 벌이고, 공중부양의 묘기를 부리고, 망치질로 문짝부수기를 마다하지 않는, 그야말로 피 흘려 가며 온 몸으로 싸우는, 그래서 나라 위해 일하라고 뽑아 주었더니 온 세상에 나라 망신이나 시키는 한심한 그들이, 평생 연금 타 먹겠다며 소리 소문 없이 작당을 했단다.

누가 좋은 놈이고, 누가 나쁜 놈이며, 누가 과연 이상한 놈인가?
놈놈놈, 영화는 즐거웠으나, 현실은 슬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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