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일보=장수경 기자] 우리나라에서 불교문화를 계승하고 지킨 종합승원을 묶은 ‘산사(山寺), 한국의 산지승원(Sansa, Buddhist Mountain Monasteries in Korea, 한국의 산사)’ 7곳이 30일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된 가운데 산사 각각의 역사와 특징이 관심을 모은다.

부석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부석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한국 건축의 백미 ‘무량수전’ 보유한 영주 부석사

한국 건축의 백미로 꼽히는 고려시대 건축물 ‘무량수전(無量壽殿)’이 있는 영주 부석사는 의상대사가 676년 당나라 유학에서 돌아온 뒤 처음 지은 절이다.

그는 창건 이후 40일간 법회를 연 후 대립을 지양하고 마음 통일을 지향하는 화엄사상의 근본 도량이 됐다고 알려졌다.

부석사(浮石寺)라는 명칭은 무량수전 서쪽에 큰 바위가 있는데, 이 바위가 아래 바위와 붙지 않고 떠 있다는 사실에서 유래됐다고 전해진다.

부석사 중심건물인 무량수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13세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된다. 무량수전 앞 석등과 전각 안에 있는 소조여래좌상, 조사당과 조사당 벽화는 현재 모두 국보로 지정돼 있다.

통도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통도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대장경 봉안한 ‘양산 통도사’

양산 영축산 통도사(通度寺)는 신라 자장율사가 643년 당나라에서 가져온 부처 사리와 금실을 넣고 짠 베로 만든 가사, 대장경을 봉안해 창건됐다는 기록이 삼국유사에 나온다.

통도사의 역사를 정리한 책인 ‘통도사사리가사사적약록’에도 삼국유사에 나온 기록과 비슷한 시기인 646년 자장율사가 연못을 메우고 절을 세웠다고 기록돼 있다.

통도사는 대웅전에 불상을 두지 않고, 건물 뒤쪽에 금강계단을 설치해 부처 법신(法身)을 봉안했다. 또한 무엇보다 부처 진신사리를 모신 불보사찰(佛寶寺刹)로 유명하다.

또 통도사는 신라시대에는 계율을 지키는 근본도량이었고, 조선 초기에는 수위사찰로 지정된 바 있다. 현재는 대한불교조계종 15교구 본사다.

봉정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봉정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국보 제15호 극락전’ 보유한 안동 봉정사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목조 건축물로 알려진 국보 제15호 ‘극락전(極樂殿)’이 있는 안동 봉정사(鳳停寺)는 1363년 처음으로 중수했다는 기록이 있다. 규모는 작지만 건축미와 품격이 느껴진다.

봉정사를 창건한 인물은 의상대사의 10대 제자 중 한 명인 능인대사가 7세기 후반께 지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능인대사는 봉정사가 있는 천등산에서 수행을 하면서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렸는데 그 종이봉황이 현재 사찰 위치에 머물렀다는 설화가 전해진다.

봉정사의 건물 배치는 전반적으로 일자형이며 보물로 지정된 대웅전, 화엄강당, 고금당이 한데 모여 있다. 임진왜란 시기에 피해를 보지 않아 고려시대와 조선시대 건축물과 불상 등이 잘 보존돼 있다.

법주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법주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화엄사상·미륵사상 영향 받은 ‘보은 법주사’

속리산 법주사(法住寺)는 553년 의신조사가 창건했다는 기록이 조선시대 지리지 ‘동국여지승람’에 나온다. 의신조사는 법을 구하러 여행을 떠났다가 흰 나귀에 불경을 싣고 돌아와 머물렀다는 설화가 사찰 명칭의 유래로 전해진다.

법주사가 있는 산의 이름이기도 한 ‘속리’는 ‘속세에서 떠난다’는 뜻을 갖고 있다. 이에 일각에서는 법주사가 고려시대에 속리사(俗離寺)로 불렸을 것으로 보고 있다.

법주사 건물 배치는 화엄사상과 미륵사상의 영향을 받았다. 가장 유명한 건물로는 국내 최고(最古) 오층목탑인 팔상전(捌相殿)이다. 팔상전은 정유재란 때 소실됐으나 사명대사가 1624년 복원했다.

마곡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마곡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풍경이 아름다운 사찰 ‘공주 마곡사’

사찰 중심에 계곡이 흐르고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마곡사(麻谷寺)는 ‘전란을 피할 수 있는 좋은 땅’이라는 기록이 ‘택리지’와 ‘정감록’에 나와 있다.

마곡사 창건 시기나 과정은 기록에 따라 차이가 있다. 절은 고려시대에 중흥한 것으로 알려졌다. 계곡을 경계로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는 건물 배치도 고려시대의 것으로 추정된다.

마곡사는 ‘남방화소(南方畵所)’로 불릴 정도로 많은 승려화가를 배출한 것으로도 유명하다. 또한 명성황후 시해에 참가한 일본인 장교를 살해해 옥살이하다 탈옥한 백범 김구 선생이 출가했던 사찰로도 알려졌다.

선암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선암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순천을 대표하는 명찰, 선암사

순천을 대표하는 명찰인 선암사(仙巖寺)는 아도화상이 529년 세웠다는 기록과 도선국사가 875년 지었다는 기록 등 창건과 관련해 두 가지 설이 전해진다.

조계산 자락에 자리한 선암사는 고려시대 승려 대각국사 의천이 중창하면서 대찰이 됐다. 하지만 정유재란으로 건물이 모두 불탔고 1759년에도 화재를 겪었다. 지금의 모습은 1824년에 갖춰졌고 중심건물이 되는 대웅전도 같은 해 재건됐다.

조계산 정상이 ‘장군봉’이라는 이유에서 선암사 입구에는 ‘법을 지키는 신’인 사천왕을 두지 않았다는 특징이 있다. 경내에 있는 보물 14점 가운데는 승선교(昇仙橋)가 있다.

대흥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대흥사. (출처: 산사세계유산등재추진위원회 홈페이지)

◆호국정신 깃든 ‘해남 대흥사’

호국정신이 깃든 도량이라고 알려진 대흥사(大興寺)에는 서산대사의 충정을 기리는 사당인 표충사(表忠祠)가 있다. 서산대사는 대흥사에 대해 ‘전쟁을 비롯한 삼재가 미치지 못할 곳’이라고 평가했다.

한반도 남쪽 해남 두륜산에 있는 대흥사의 창건 시점이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고 다만 운영은 통일신라시대부터 해온 것으로 알려졌다. 두륜산을 대둔산(大芚山)이라고도 하는 까닭에 대둔사로 불린 적이 있다.

대흥사의 특징으로는 ‘차 문화’도 있다. 대흥사가 배출한 대종사(大宗師) 13명 중 한 명인 초의선사는 우리나라 다도(茶道)를 재정립한 인물로 알려졌다. 현재 대흥사는 조계종 22교구 본사로 있다. 보물 8건과 전남유형문화재 5건이 있으며 국보 제308호인 ‘북미륵암 마애여래좌상’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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