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 름

문태준(1970~  )

늙은 어머니가
마루에 서서
밥 먹자, 하신다
오늘은 그 말씀의 넓고 평평한
잎사귀를 푸른 벌레처럼 다
기어가고 싶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원뢰(遠雷) 같은 부름
나는 기도를 올렸다.
모든 부름을 잃고 잊어도
이 하나는 저녁에 남겨달라고
옛 성 같은 어머니가
내딛는 소리로
밥 먹자, 하신다

[시평]

우리의 어린 시절, 밖에 나가서 놀고 있으면, 저녁 준비를 다 하신 어머니께서 밥 먹으러 들어오라고 부르신다. 배가 고픈지도 모르고 동네 아이들과 신나게 뛰어놀다가, 어머니께서 부르시는 그 소리를 들으면, 지금까지 고프지 않던 배가 갑자기 고파지며, 놀이도 다 집어치고는 함께 놀던 아이들을 뒤로 하고 집으로 들어간다. 

어머니께서 부르는 그 소리. 지금은 들을 수 없어도, 그 부르는 소리 지금도 귀에 쟁쟁하여, 어느 저녁이면 나도 모르게 어머니께서 밥 먹으라고 부르실 것만 같기도 하다. ‘막 푼 뜨거운 밥에서 피어오르는 긴 김 같은 말씀’, 지금도 들리는 듯하다. 어느 지치고 힘든 날이면, 더욱 어머니의 부르는 그 말씀, ‘밥 먹자’ 하시는 그 말씀 더욱 그리워진다.

그 어느 부름, 다 잃고 살아도, 어머니의 그 부름, 저녁녘의 그 부름, ‘밥 먹자’ 하시는 그 부름의 말씀, 마치 먼 하늘에서 울려오는 원뢰(遠雷)와도 같아서, 어딘가 홀로 우뚝 서서 우리를 굽어보는 ‘옛 성’과도 같아서, 언제나 우리 가슴 가장 깊은 곳에서 우러나는, 우리의 보이지 않는 근원적 그리움으로 만나는 그 부름, 부름의 말씀. 오늘도 들리는 듯하구나. 

윤석산(尹錫山) 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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