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프란치스칸사상연구소가 ‘제20차 프란치스칸 영성학술발표회’를 열고 있다. ‘바뇨레죠의 성 보나벤투라: 작은 형제, 총봉사자, 학자, 주교’라는 주제로 전날(25일)부터 시작된 이번 영성학술발표회는 27일까지 열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26
26일 오후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프란치스칸사상연구소가 ‘제20차 프란치스칸 영성학술발표회’를 열고 있다. ‘바뇨레죠의 성 보나벤투라: 작은 형제, 총봉사자, 학자, 주교’라는 주제로 전날(25일)부터 시작된 이번 영성학술발표회는 27일까지 열린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26

“보나벤투라, 프란치스코의 영성 철학·신학적으로 드러내”

[천지일보=박준성 기자] 가톨릭 작은형제회(프란치스코회) 프란치스칸사상연구소가 보나벤투라(1217~1274년)의 조명하는 영성학술발표회를 열었다.

25~27일 서울 중구 정동 프란치스코 교육회관에서 작은형제회 프란치스칸사상연구소는 ‘제20차 프란치스칸 영성학술발표회’를 개최했다. ‘바뇨레죠의 성 보나벤투라: 작은 형제, 총봉사자, 학자, 주교’라는 주제로 열린 영성학술발표회에서 패널들은 보나벤투라의 삶과 영성, 신비신학 등을 중심으로 그의 사상을 조명했다.

이탈리아의 스콜라 신학자, 철학자, 신비사상가인 보나벤투라는 1234년부터 파리대학에서 학위를 받은 후 알렉산더 할렌시스 밑에서 신학 공부를 시작했다. 1243년 프란치스코회에 입회한 후 1248년 성서학사 학위를 취득하고 1257년까지 파리대학에서 성서와 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1257년 2월 프란치스코회 제7대 총장에 선출되면서 저술과 설교 등 다양한 활동으로 프란치스코의 영성과 사상을 알렸다. 프란치스코회는 창립자 ‘아시시의 프란치스코’가 사망한 지 30년이 지나면서 내부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겪게 된다. 총장이 된 보나벤투라는 각 수도원을 순방하고 내적 갈등을 완화시키는 동시에 프란치스코가 만든 회칙을 시대 상황에 맞게 변화시키는 첫 회헌을 선포했다. 또 그가 ‘아시시 프란치스코의 전기’ 등을 출간하며 프란치스코 수도회는 다시 중심을 잡을 수 있었다. 이에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회 제2의 창립자로 불리게 됐다. 1273년 알바노의 대주교이자 추기경으로 임명받았지만 1년 후 선종한다.

한규회(꼰벤뚜알 프란치스코 수도회) 신부는 보나벤투라의 학문적·영성적 배경을 설명하며 “13세기 당시 보나벤투라는 파리의 위대한 학자였고, 프란치스코는 아시시의 빈자였다. 언뜻 보면 크게 연관돼 있지 않은 것처럼 보인다”며 “하지만 자세히 들여다보면 그들 사이에는 커다란 영성적이고 신학적인 상관관계가 존재한다”고 말했다.

한 신부는 “보나벤투라는 프란치스코의 영성을 따르고 자신의 (신비)신학 안에서 그의 영성을 충실히 드러내고자 했다”며 “그는 신비주의적인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통해 프란치스코의 하느님 체험을 철학적으로 또 신학적으로 표현해 냈다”고 평가했다.

이재성 형제(작은형제회)는 그리스도 중심주의를 이야기하며 “프란치스코와 보나벤투라는 그리스도가 그들 생활과 신학의 중심임을 시인했다. 이는 곧 자아가 없이 한없이 퍼주기만 하는 사랑이 중심인 것을 알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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