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5년 개관해 6번의 개·폐관을 겪은 서울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이 다시 관객을 맞이한다. 삼일로창고극장은 2015년 폐관하기까지 279편의 작품이 거쳐 간 곳으로 우리나라 연극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사진은 삼일로창고극장 전경(왼쪽)과 내부 모습. (제공: 서울문화재단)
1975년 개관해 6번의 개·폐관을 겪은 서울 명동 삼일로창고극장이 다시 관객을 맞이한다. 삼일로창고극장은 2015년 폐관하기까지 279편의 작품이 거쳐 간 곳으로 우리나라 연극계 역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장소다. 사진은 삼일로창고극장 전경(왼쪽)과 내부 모습. (제공: 서울문화재단)

 

1975년 개관해 6번의 개․폐관 겪어

40년간 연극계 살아 있는 역사 써

서울시가 장기임대로 다시 문 열어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내가 24살이던 1975년 그 시절 명동은 젊은이들의 만남과 추억의 모임과 문화 토론의 장이었어. 그때 데이트 코스는 도봉산 등 근교의 산이나 신촌에서 기차를 타고 창경궁이나 덕수궁 등 고궁으로 가곤 했는데 비가 오는 날이면 명동에 있는 중·대극장에서 공연을 보곤 했지. 9월 초순경 명동성당 인근에 줄이 길게 늘어 선거야. 그 줄은 삼일로창고극장(당시 명칭 에저또 소극장)에서 진행되는 개관 공연 에쿠스와 에저또의 뱀 공연을 보러 온 사람들이었지. 나도 삼일로창고극장의 개관공연을 봤어. 정말 생소하고 충격적이었어. 자리는 불편하고, 조명기가 머리 위에 달려 있고, 이게 공연장인가 싶더라고.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내 생각은 완전히 바뀌었어. 배우들의 땀과 호흡, 대사가 바로 앞에서 전달돼서 느낄 수 있었거든. 배우들이 소리 지르니 나도 소리 지르는 것 같았어. 같이 분노하고, 같이 슬퍼하고 감동이 밀려오더라고. ‘이게 소극장이구나. 정말 대단하다’고 느꼈어.”

서울 명동성당을 지나 뒤편 언덕길을 따라 올라가다 보면 갈색 벽돌로 새롭게 단장한 삼일로창고극장이 나온다. 한국 최초의 민간 설립극장이자 소극장 운동의 본거지였던 삼일로창고극장이 지난 2015년 10월 폐관 이후 2년 8개월 만인 22일에 재개관했다.

명동에서 데이트를 즐기던 24세 청년 안진환씨는 어느덧 67세가 됐다. 그는 삼일로창고극장의 최초 관객이다. 극장의 시작을 함께 한 그는 극장의 재개관에 대한 감회가 더 새롭다. 안진환씨는 “에쿠스와 에저또의 뱀 공연이 연일 만석이 되고 신문 문화면 기삿거리가 되기도 했다”며 “그때의 삼일로 창고극장이 처음으로 우리나라 소극장 운동의 효시였고 그 현장에 내가 있었다는 생각에 항상 뿌듯함이 느껴진다”고 소감을 말했다.

재개관 기념공연 ‘빨간 피터의 고백’ 포스터와 1977년 당시 포스터. (제공: 서울문화재단)
재개관 기념공연 ‘빨간 피터의 고백’ 포스터와 1977년 당시 포스터. (제공: 서울문화재단)

 

◆우여곡절 속 279편 무대 올라

1975년 연출가 방태수씨는 서울 명동성당 뒤편 삼일로 큰길 옆에 있는 허름한 창고 건물을 사들였다. 극단 에저또(연출가 방태수)의 단원들과 함께 직접 무대를 파고 건물을 보수해 ‘에저또 소극장(이후 에저또 창고극장으로 변경)’으로 개관한 것이 삼일로창고극장의 시작이다.

다음 해인 1976년 연극을 활용한 치유법에 관심이 많았던 정신과 의사 고 유석진이 극장을 인수하고, 연출가 고 이원경이 극장 운영을 맡아 재개관했다. 삼일로창고극장이라는 이름은 이때 붙여졌다.

1983년 배우 고 추송웅이 인수해 ‘떼아뜨르 추 삼일로’라는 이름으로 세 번째 개관했으며, 1986년에는 극단 로얄씨어터(대표 윤여성)가 바통을 이어받아 극장 이름을 다시 ‘삼일로 창고극장’으로 변경했다. 윤여성 대표는 기존의 아레나 무대를 프로시니엄 무대로 개조해 소극장 실험을 계속해나갔다.

운영난에 허덕이던 극장은 1990년 폐관됐다. 이후 김치공장, 인쇄소 등으로 사용되다가 1998년 창작극을 전문으로 하는 작가들이 모여 만든 극단 창작마을(대표 김대현)이 인수하여 ‘명동 창고극장’ 이름으로 다섯 번째 개관했다. 또 2004년 연출가 정대경(현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인수해 ‘삼일로 창고극장’이라는 이름으로 운영하다가 2015년에 다시 폐관됐다.

40여년간 연극계 살아 있는 역사를 써왔던 극장은 2015년 마지막 폐관까지 총 279편의 작품을 올리는 등 많은 공연예술인의 성장에 발판이 됐다.

다시 문을 연 삼일로창고극장의 운영위원회. 왼쪽부터 박지선, 오성화, 이경성, 전윤환, 정진세, 우연. (제공: 서울문화재단)
다시 문을 연 삼일로창고극장의 운영위원회. 왼쪽부터 박지선, 오성화, 이경성, 전윤환, 정진세, 우연. (제공: 서울문화재단)

 

◆서울시가 장기임대해 재개관

삼일로창고극장은 서울시가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소유주와 10년간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해 재개관하게 됐다. 시는 극장으로 사용됐던 건물(공연장)뿐 아니라 그 앞의 건물(부속동)에 대해 서울시와 소유주 공동으로 리모델링 진행 후 2017년 10년간 장기임대계약을 체결했다.

위탁운영은 서울문화재단이 맡았다. 본격적 운영에 앞서 지난 2017년 시민 800여명을 대상으로 한 극장 명을 설문한 결과(약 60%)에 따라 ‘삼일로창고극장’이 이름으로 선정됐다. 재단은 오는 2020년까지 ‘예술현장과 함께하는 극장’, ‘동시대 창작 플랫폼’을 모토로 운영위원회와 함께 극장을 운영할 예정이다. 재개관을 기념해 오는 29일부터 다음 달 22일까지 ‘빨간 피터의 고백’의 오마주 공연 ‘빨간 피터들’이 무대에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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