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에 부여된 권한 스스로 자각해야”

[천지일보=송범석 기자] 8.8 개각으로 내정된 고위공직자 후보자의 위법한 과거전력을 드러내고 도덕성을 검증하는 국회 인사청문회가 26일 막을 내렸다. 시작 전부터 후보자들의 각종 논란이 불거지면서 예상대로 난타전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의혹만 들추고 검증은 못하는 ‘하나마나한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는 견해가 지배적이다.

고 노무현 전 대통령의 차명계좌 발언으로 혹독한 추궁을 당했던 조현오 경찰청장 후보자는 23일 청문회에서 ‘송구’로 시작해 ‘모르쇠’로 끝을 냈다. 모두발언에서부터 “돌아가신 노 전 대통령과 유족들에게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밝힌 조 후보자는 차명계좌 발언에 대한 송곳질의가 이어지자 “지금 대답하는 것은 부적절한 것 같다”며 즉답을 피해 여․야 의원들의 공분을 사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 논란이 됐던 ‘쪽방 투기’가 사실로 드러난 이재훈 지식경제부 장관 후보자, 대학 학력 편법 취득이 확인된 이재오 특임장관 후보자, 논문 표절이 사실로 확인된 이주호 과학기술부 후보자, 자녀 국적포기가 확인된 진수희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와 박재완 교용노동부 장관 후보자, 딸들이 계속 ‘왕따’를 당할까봐 위장전입을 선택했다는 신재민 문화체육관광부 장관 후보자, ‘가사도우미’ ‘관용차 사용’을 인정한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는 표현의 수위만 다르지 “죄송하다”며 연신 고개를 숙였다.

하지만 빗발치는 의원들의 자진 사퇴 요구를 받아들이는 후보자는 한 명도 없었다. 의혹은 드러났지만 ‘성과’가 나오지 않자 야당 의원은 물론 일부 여당 의원도 답답한 기색을 내비쳤다.

이와 관련 적당히 답변만하고 모면하면 되는 ‘통과의례’ 청문회가 됐다는 질타도 나온다.

이만섭 전 국회의장은 24일 평화방송 라디오에 출현해 “자꾸 죄송하다는 말은 하는데 뭐가 죄송한지 모르겠다”면서 “부동산 투기자가 어떻게 서민에게 다가가고, 병역기피자가 어떻게 국민과 소통할 수 있겠느냐”고 꼬집었다.

홍준표 한나라당 최고위원은 26일 확대당직자회의에서 “한 번 죄송한 것은 이해가 되지만 두세 번 죄송스러운 일을 했다면 고위공직자 제의를 받았을 때부터 (자리를) 사양했어야 했다”면서 “이번 인사청문회가 ‘죄송 청문회’ ‘거짓말 청문회’가 되고 말았다. 단호히 대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논란의 속살을 벗길 수 있는 증인들이 대거 불참 의사를 표명한 것도 이번 청문회의 큰 오점으로 남았다. 김태호 국무총리 후보자의 ‘박연차 게이트’ 연루설 등을 밝히기 위해 청문위원은 25일 박연차 전 태광실업 회장 등 10명의 증인을 채택했지만 출석한 증인은 4명에 불과했다.

박 전 회장은 건강상 이유로, 당시 사건에 대한 수사 지휘자였던 우병우 대검 수사기획관 등은 검찰의 중립성 때문에 불참한다고 밝혔다. 때문에 결국 이날 청문회는 지루한 진실공방과 여야 간 진흙탕 싸움으로 끝나고 말았다.

이와 같은 문제 때문에 국회가 스스로 권한을 자각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박동천(전북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국회가 인사청문회 같이 아주 중요한 일들을 진행하려고 할 때 사실파악이 가장 중요하다”면서 “하지만 국회 스스로가 모든 기능을 죽이다보니 증인 불출석은 물론 간단한 위증죄조차 처벌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국회가 증인을 소환했을 때 불출석하면 불이익을 줄 수 있는데 그 방법을 사용하지 않고 있다”며 “국회가 최고의 정책 결정 기관이라는 것을 스스로 인식해야 하고 국회의 수사권 같은 제도를 완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인사청문회를 지켜보면 어떤 사람은 미비한 사안으로 낙마를 당하는가하면 범죄에 해당하는 과오를 저지르고도 버젓이 임명되는 경우도 생긴다. 여론이 공직자의 순결하고 깨끗한 도덕성을 요구하는 수준을 넘어서 어떤 잘못을 저지를 때 발을 못 붙이게 할지를 판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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