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성호 국립산림과학원 기후변화연구센터 산림자원정보과 과장

최초의 근대적 산림자원조사 실시(1962~1981년)

◆산림조사의 첫걸음
정부수립 후 산림통계는 행정통계를 취합하여 추정하는 정도였기 때문에 자료의 신뢰도는 매우 낮았다고 볼 수 있다.

이후 황폐화된 산림의 복구계획과 산림자원의 조성계획 수립을 위하여 산림통계의 정비가 필요해짐에 따라 1960~1963년 농림부 산림국 주관하에 영림서 소관 국유림의 실태조사를 실시하였고, 1962~1964년 산림조합연합회 주관으로 민유림 실태조사를 실시하여, 1964년 말 전국 산림통계(산림면적 668만ha, 임목축적 9㎥/ha)를 산출하였다.

우리나라의 실질적인 산림조사의 효시이며, 현지조사 자료를 바탕으로 최초로 산림자원통계를 생산하였으나 불행히도 당시의 조사사업에 대하여 남아 있는 기록이 없다.

▲ 1970년대 산림자원조사연구소 직원 (제공: 국립산림과학원)
▲ 현지조사 요원 (제공: 국립산림과학원)

◆UNDP 산림조사 프로젝트
1964년 6월 당시 농림부는 UNDP-FAO와 산림조사사업을 위한 운영계획서에 합의함으로써 UN한국산림조사사업기구가 발족(1964년 11월 9일)되었고, 1973년까지 ▲강원도, 경북 일원 120만ha 산림조사(1964~1969년) ▲낙동강 유역 240만ha 조사(1969~1971년) ▲3대강(경기 안성천, 전북 동진강, 경부 상주천) 유역 27만ha 조사(1968~1973년) 등 여러 가지 산림조사를 실시하게 된다.

본 사업을 통하여 선진국의 산림자원조사 기술을 도입하게 되었고, 우리의 실정에 맞는 산림조사 방법을 개발하는 토대를 마련하였다.

1차 UNDP 사업(1964년~1968년 11월)이 종료되면서 당시의 일부 인력과 장비를 승계하여 산림자원조사소를 설립함으로써 독자적인 전국산림자원조사 수행의 초석을 세운 것이다. 비록 국제기구의 지원 하에 실시한 산림조사사업이지만 선진 외국의 기술을 도입할 수 있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제1차 전국산림실태조사(1972~1974년)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적 산림조사인 제1차 전국산림조사의 배경은 1960년대 추진하였던 조림 및 사방사업의 성과 분석과 향후의 계획 수립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 산림에 7051개의 표본점을 계통추출 배치하였고, 표본점은 0.01ha의 원형표본점이었다.

▲ (왼쪽) 항공사진판독 야외 실습, (오른쪽) 조사자료 정리 및 분석 (제공: 국립산림과학원)

조사에 필요한 항공사진을 촬영(1971~1974년)하여 산림조사와 간이산림토양조사에 활용하였다. 현지조사를 위하여 시․도․영림서 산림공무원 100여 명을 교육 훈련하여 현지조사에 투입하였다. 임상도(1/25,000) 832매를 최초로 제작하고, 임야원도 6만 5303매를 micro-film에 수록하여 활용하였다.

당시에도 표본점 1%(65개소)를 재측정하여 조사자료의 품질관리를 실시하였다. 조사결과에 의하면 1974년 말 우리나라의 총 산림면적 664만ha, 임목축적은 15.43㎥/ha로 목재자원이 10년 전보다 71%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제2차 전국산림실태조사(1978~1981년)
제2차 조사의 배경은 제1차 치산녹화 10개년계획의 조기 달성에 따른 성과 분석 및 제2차 계획수립과 산림시책 추진방향 설정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전국에 4838개의 표본점을 계통추출 배치하여 제1차 조사와 같은 방법으로 조사하였다.

현지조사를 위하여 예산 순천 진주 상주 농전의 재학생을 동계방학 기간에 보조 인력으로 활용하였다. 항공사진을 촬영(1978~1980년)하고, 전국산림에 대한 임상도(1/25,000) 749매를 제작하였다. 조사결과 산림면적 657만ha, 임목축적 22.2㎥/ha을 추정하였다.

◆산림자원조사의 홀로서기
경제적 여건이 먹고 살기에도 빠듯했던 1960년대. 흑백 아날로그 시대에 FAO/UNDP 지원 산림조사사업을 시작하여 1970년대 독자적인 행보를 시작하였다. 산림조사는 전국 산야 방방곡곡을 누비고 다니면서 표본점 위치를 찾아 조사하여야 한다.

연중 6개월은 현지조사 출장이라 대부분의 젊은 조사요원은 수개월간 가족과 생이별을 해야 했다. 교통수단도 매우 열악하여 지방 군청 산림과에서 오토바이를 빌려 타고 조사하였지만 걸어 다니는 것이 다반사. 조사장비에다 항공사진까지 지참하고 땀으로 뒤범벅되어 산에서 내려오다 간첩으로 오인 신고되어 경찰서에 가서야 해명을 하고 풀려나는 해프닝도 자주 있었다.

이러한 고초를 겪으면서도 당시 UNDP 조사사업과 1~2차 조사 기간 동안 습득한 통계적 산림조사, 산림측정, 항공사진 판독, 임상도 제작 등에 대한 노하우는 후진에게 전수되었다. 문자 그대로 몸으로 때워가며 배운 기술로 우리나라 산림자원조사의 초석을 세운 것이다.

당시 산림조사사업에 참여하였던 선배들은 훗날 여러 산림분야에서 나름대로 족적을 남기며 산림조사는 물론 임업 발전에 기여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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