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스토리’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허스토리’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영화보며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다 느껴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 구사해야해 부담 커

할머니·원고단, 고군분투한 모습 감동적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다양한 장르에서 고급스럽고 카리스마 있는 연기로 대중에게 사랑을 받아온 배우 김희애가 억척스러운 CEO로 분했다.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김희애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연을 우연히 듣게 된 후 6년간 관부 재판을 이끌어 가는 부산에 있는 여행사 사장 ‘문정숙’ 역을 맡았다.

‘허스토리’는 당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과 23번의 재판, 10명의 원고단, 13명의 무료 변호인이 일본 열도를 발칵 뒤집을 만큼 의미 있는 결과를 이뤄냈음에도 지금껏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관부 재판 실화를 소재로 한 영화다.

영화는 25년의 탄탄한 연기 내공을 가진 김희애에게 도전이었다.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를 구사해야 했으며, 실존 인물을 연기해야 하는 부담감이 컸다.

최근 서울 종로구의 한 카페에서 천지일보와 만난 김희애는 “쉽지 않은 소재다. 영화를 하고 안 하고 이런 건 생각할 수 없었다. 오히려 할머님들하고 원고단이 고군분투하며 일본 재판장 앞에서 했던 일들이 감동적이었다”고 전했다.

‘허스토리’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허스토리’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사실 관부 재판에 대해 잘 몰랐거든요. 뜻도 몰랐어요. 무식하다고 하실까 봐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고 알았어요. 우리 어머니 세대이야기 인데 너무 먼 나라 얘기처럼 들리잖아요. 이런 소재의 영화가 나와서 다행이에요.”

학교에서조차 관부 재판에 대해 가르쳐 주지 않는다. 누구나 그렇듯 김희애도 촬영하면서 역사를 알게 됐다. 그는 “왠지 그런 얘기는 너무 힘드니까 피하고 싶었다. 영화를 보면서 모르는 건 부끄러운 일이구나 싶었다”며 “단순히 제 필모그라피의 한 작품이라면 이쯤 만족하고 포기했을 수 있는데 할머니들을 생각하니까 더 진심으로 최선을 다해야겠다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김희애가 맡은 문정숙은 관부 재판 당시 원고단을 이끌어 간 김문숙 단장을 각색한 인물이다. 김희애는 짧게 자른 머리카락과 안경, 부산 사투리, 일본어 등 실존 인물과 싱크로율을 위해 외모부터 말투까지 변화시켰다.

그는 “실존 인물을 뵙진 못했다. 저도 많이 알고 있진 않다. 사진과 신문기사 등 기록으로만 만났고, 개봉되면 기회가 닿을 때 뵐 수 있을 것 같다”며 “그분이 재판장에서 통역까지 했기에 최대한 맞추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이어 “외적인 부분은 배우로서 특별한 경험이었다. 살아계신 인물을 똑같이 따라 한다는 것은 흔치 않은 기회”라며 “기록사진을 보면 큰 액세서리를 반드시 하고 스카프를 활용한 정장스타일의 옷을 입었다. 여사장으로서의 당당함을 보여주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허스토리’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허스토리’ 김희애. (제공: YG엔터테인먼트)

 

“부산 사투리와 일본어는 완전히 못했었죠. 영화를 하면서 제가 할 수 있는 만큼은 했던 것 같아요. 자면서 듣고, 벽에도 붙여놓고 ‘더는 못하겠다’ 싶을 정도로 끝까지 했어요. 운동선수가 비디오로 경기 장면을 찍고 모니터링하는 것처럼 사투리를 녹음해서 들어보고 또 듣고, 다양한 버전으로 배웠어요.”

그는 절실했다. 문정숙이라는 캐릭터가 진정성 있는 인물인 만큼 사투리가 자연스러웠다. 김희애는 “부산 촬영 갔을 땐 국제시장에 가서 시장 상인들에게 일부러 말을 걸었다. 아무렇지 않게 받아주셔서 왠지 뿌듯하더라”라며 “지나가다가 경상도 사람을 만나면 너무 반갑더라. 어떤 사람은 제가 부산사람이라고 하니까 진짜 믿더라. 영어 배워서 외국 사람하고 대화하고 싶은 것처럼 저도 절실했다”고 말했다.

‘허스토리’의 하이라이트 장면은 법정 변론이다. 배정길 역을 맡은 배우 김해숙이 울분을 누르며 변론하면 김희애가 일본어로 번역해야 한다. 김희애는 “그 신이 가장 부담스러웠다”고 고백했다. 그는 “일어로 말하고 재판장인 본인 감정을 자제하라고 할 정도로 흥분해서 해야 해서 힘들었다. 그 와중에 잘 전달하는 것도 중요 했다”며 “저보다도 선배님들이 각자 자기 몫을 하느라고 고생하셨다. 조심스러우니까 서로 눈치로 배려하고, 응원했다. 동지처럼 말을 안 해도 서로 걱정해주면서 했다”고 전했다.

“저는 ‘허스토리’가 여성영화라고 생각 안 해요. 여자는 누구의 엄마라고 불리는데 영화에서는 한 인간으로서 바로 선 모습을 보여줘요. 제가 미처 여성영화로 생각할 겨를도 없이 매력적으로 확 와 닿았던 것 같아요. 멋있잖아요. 할머니들은 정말 연약하고, 잘 배우지도 못하셨고, 나이도 많이 드신 사회적 약자인데 당당하게 자기 자신을 피력하잖아요. 그 모습이 멋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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