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필 전 국무총리. (출처: 뉴시스)
김종필 전 국무총리. (출처: 뉴시스)

JP의 파란만장한 일생

[천지일보=이민환 기자] 김영상·김대중 전 대통령과 함께 이른바 ‘3김(金) 시대’를 이끈 김종필 전(前) 국무총리가 23일 별세했다. 향년 92세.

반평생을 권력의 중심부에 있었지만 정작 ‘1인자’의 자리에 오르지 못했던 김 전 총리는 1926년 충남 부여에서 태어났다.

1947년 서울대 교육학부 2년 수료 후 1948년 육군사관학교 8기로 임관했다. 이후 1958년 육군본부 정보 참모부 기획과장으로 근무하면서 1961년 5.16군사정변에 참여했다.

같은 해 중앙정보부(현 국정원)를 창설해 1963년까지 초대 부장으로 재임했으며 줄곧 2인자의 길을 걸었다.

1963년 공화당 창당을 주도하고, 같은 해 치러진 6대 총선에서 당선됐다. 7·8·9·10·13·14·15·16대까지 9선 국회의원을 지내는 진기록을 남겼다.

5.16 쿠데타 세력 간 권력다툼으로 1963년 2월 김 전 총리는 1차 외유를 떠났다. 여기에 한일 국교정상화 회담 핵심쟁점이던 대일 청구권 문제와 관련한 ‘김종필-오히라 메모’ 사건으로 1964년 2차 외유길에 올랐다.

1971년부터 1975년까지 4년 이상 국무총리를 지냈으나, 1980년 신군부 등장과 함께 권력형 부정축재자 1호로 몰리면서 재산환수의 수난을 겪고 정치활동이 금지됐다.

1984년 미국으로 건너가 유랑생활을 하다 1986년 귀국한 뒤 신민주공화당을 창당하고 1987년 13대 대선에 출사표를 던졌지만 4위에 그쳤다.

그러다 1988년 치러진 13대 총선에서 충청권을 기반으로 35석의 국회의원을 확보하는 데 성공하면서 건재함을 과시했다.

1990년에는 2월 민주정의당·통일민주당·신민주공화당이 합당해 출범한 민주자유당(민자당)의 대표 위원이 됐다.

민자당에 있다가 탈당해 1995년 자유민주연합(자민련)의 총재로 취임했으며 1997년 대선에서는 자민련 대표로 대권에 도전했다.

당시 선거 막바지 ‘DJP(김대중·김종필) 연합’을 성사시키며 김대중 당시 대선 후보에 대한 지지를 선언하면서 국민회의·자민련 공동정권을 탄생시켰다.

하지만 16대 총선 과정에서 쌓인 공동정권 수장 사이의 앙금은 2001년 9월 임동원 당시 통일부 장관 해임안 가결로 공조 파기로 이어졌고, 김 전 총리는 정치적 내리막길을 걸었다.

2004년 17대 총선을 통해 재기를 시도했으나 참패를 당한 뒤 정계 은퇴를 선언하고 2인자 정치 인생에 마침표를 찍었다.

쿠데타 원조에서부터 중앙정보부 창설자, 풍운의 정치인, 영원한 2인자, 경륜의 정치인, 처세의 달인, 로맨티스트 정치인 등 여러 별칭에서 보듯, 김 전 총리에 대한 평가도 엇갈린다.

그의 유족으로는 아들 진씨, 딸 복리씨 1남 1녀가 있다. 빈소는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에 차려질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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