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궁 이야기(4)] 파란만장했던 구한말 역사가 서려있는 ‘덕수궁’
[궁 이야기(4)] 파란만장했던 구한말 역사가 서려있는 ‘덕수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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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덕수궁 정전인 중화전 ⓒ천지일보(뉴스천지)


[천지일보=김지윤 기자] 여름방학 동안 가족과 친구와 함께 덕수궁을 찾은 사람들로 가득하다. 덕수궁은 경복궁(景福宮)보다 규모면에서 웅장함이 덜하지만, 궁궐 5곳 가운데 중세와 근대가 잘 어우러진 곳으로 평가받고 있다. 아울러 함녕전에서 석조전에 이르는 후원(後園) 길은 산책하기에 안성맞춤이다.

◆경운(慶運)에서 덕수(德壽)로

사적 124호인 덕수궁은 현재 사람들이 몰려 인기를 실감케 하지만 사실 왕가의 영광과 애환이 동시에 서려있는 곳이다.

임진왜란 직후 화마로 잿더미만 남은 한양에서 14대 임금 선조(宣祖)는 친지였던 월산대군의 집에 몸을 의탁했다. 이곳에서 즉위한 광해군이 궁을 넓히고 ‘나라 운을 기린다’라는 뜻으로 ‘경운(慶運)’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이를 비춰본다면 덕수궁의 본래 이름은 경운궁(慶運宮)인 셈이다. 그로부터 약 300년 뒤 고종황제가 네덜란드 헤이그 특사 파견을 빌미로 왕위를 잃는 동시에 경운궁에 머물게 됐다. 이어 경운궁은 ‘왕이 오래 살도록 기원한다’는 ‘덕수(德壽)’로 명칭이 바뀌었다.

궁은 지금으로부터 400년 정도 거슬러 오르면 광해군이 계모인 인목대비를 유폐한 곳이며, 100여 년 전에는 고종이 대한제국을 선포한 장소다. 이처럼 별궁과 정궁 사이를 오가며 왕을 모셨던 덕수궁은 동문(東門)인 대한문(大漢門)에서 시작된다.

◆즉조당, 덕수궁 모태

대한문에서 중화전으로 향하는 쪽을 바라보면 돌다리인 금천교(錦川橋)가 있다. 모든 궁이 그러하듯 금천교 아래에는 물이 흐른다. 금천이라 불리는 물은 ‘임금이 계신 궁궐에 들어가기 전에 다리를 건너 마음과 몸을 깨끗이 한다’는 정화(淨化)의 의미가 담겼다.

금천교를 따라 중화문(中和門)을 거쳐 중화전(中和殿)에 도달하면 얇고 넓적한 돌이 깔린 조정(朝廷)이 나온다. 중화전은 덕수궁의 정전(正殿)으로 왕의 즉위식, 신하들의 하례, 외국 사신의 접견 등 중요한 국가의식을 치룬 곳이다.


1904년 화제로 소실된 후 1906년 재건될 즈음, 당시 어지러운 시국과 궁핍한 재정 상황 때문에 단층으로 축소 건립됐다. 중화전을 둘러싸고 널찍한 마당, 조정을 형성했던 행각들은 고종황제 승하 후 대부분 헐리고 현재는 동남쪽 모퉁이 부분만 남았다.

중화전 뒤로 건물 세 곳이 있다. 세 건물의 가운데에 위치한 즉조당은 덕수궁의 모태가 된 곳이다. 임진왜란 당시 선조가 임시로 거처했던 즉조당은 1897년 고종이 러시아공사관에서 경운궁으로 환어한 뒤 중화전을 건립하기 전까지 정전으로 사용됐다.

현재 즉조당에는 고종이 손수 쓴 편액(扁額)이 걸려 있다. 석어당(昔御堂)은 궁에 유일하게 남아있는 중층 건물로 단청을 하지 않아 소담한 살림집 같다. 준명당(浚明堂)은 황제가 업무를 보던 곳이며, 즉조당과 복도로 연결됐다.

궁내에 고종황제의 침실과 명성황후 혼을 모신 곳은 각각 함녕전(咸寧殿), 덕홍전(德弘殿)이다. 특히 덕홍전 내부는 천장의 샹들리에나 봉황문양의 단청, 창방(昌枋)의 오얏 문양 등 화려하게 꾸며졌다.

조용히 궁궐을 내려다볼 수 있는 건물이 있다. 이름하야 정관헌(靜觀軒). 석재를 기본으로 하는 서양식 기둥이 나무로 만들어진 것은 눈여겨 볼만하다. 고종황제는 정관헌에서 커피를 마시며 외교사절과 연회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이 외에도 석조전, 광명문, 중면전 등이 가치가 높은 건축물을 살펴볼 수 있다.

◆ 근대에 들어선 후에도 수난 당해

전통과 서양풍이 공존하는 덕수궁은 근대에 들어서면서도 수난을 당했다. 1968년 태평로가 확장되면서 궁 담장이 허물어지고 철장이 섰다. 도로 한가운데 있던 대한문은 2년 뒤 서측으로 밀려 현재 위치로 옮겨졌다. 아울러 당시 서울시는 덕수궁을 궁내에 스케이트장을 만들거나 음식점을 짓는 등 시민공원으로 꾸몄다. 이후 철장은 원래 담장으로 쓰였던 사괴석(四塊石)으로 바뀌었으나 조선 이래 갖췄던 궁궐의 면모를 찾기가 어려워졌다.

근래에 들어와 궁을 재조명하는 움직임이 활발히 진행되고 있다. 덕수궁의 옛 정취를 되돌릴 수 있을 것이라는 국민의 바람이 고스란히 담긴 것. 황병녀(한국의재발견) 선생은 “덕수궁은 경복궁과 창덕궁보다 작은 규모지만 파란만장했던 구한말 역사를 느낄 수 있다는 점에서 중요한 궁궐”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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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복희 2010-08-26 16:12:51
지방 시골에 사는 입장이라, 언제나 한 번 한양 궁궐 구경을 해 보나~
궁궐이야기가 나오면 청춘시절 읽었던 역사 소설의 정취가 생각나 늘 가슴이 두근 두근..
이제 곧 독서의 계절 가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