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1일 경남 합천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고 김영환 장군(1921~1954)의 문화훈장 추서 및 호국 추모재가 봉행됐다. (연합뉴스)

고 김영환 장군 문화훈장 추서 및 호국 추모재

[천지일보=이길상 기자] 합천 해인사(주지 선각스님)가 지난 21일 고 김영환 장군 호국 추모재를 열고 금관문화훈장 추서 및 김영환 장학기금 전달식을 가졌다.

추모재는 2011년 대장경조성 천년을 기념하며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재 팔만대장경에 담긴 민족단합과 국가수호의 정신의 계승을 통해 민족 정체성을 다시 한 번 되새겨보자는 취지가 담긴 행사로, 팔만대장경을 지켜낸 고 김영환 장군의 뜻을 기리는 기념행사다.

해인사 대적광전 앞마당에서 열린 추모재에는 법전스님(조계종 종정), 선각스님(해인사 주지), 김두관 경남지사, 이계훈 공군참모총장 등과 유가족·신도 등 약 2000명이 참석했다.

김영환 장군(金英煥. 1920-1957)은 1949년 공군이 육군에서 분리하며 세운 첫 공군비행단의 참모장으로 형님인 김정렬 장군과 함께 공군을 창설한 7인 중 한 명이다.

그는 6.25 전쟁 당시 인민군이 주둔해있던 해인사를 슬기롭게 공격하면서 장경판전(국보 제52호)과 고려대장경판(팔만대장경, 국보 제32호)을 지켜냈다.

고 김영환 장군은 6.25 당시 가야산에 숨어든 인민군을 소탕하기 위해 출격했던 공군비행단의 편대장이었다. 폭격지점이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임을 안 김 장군(당시 대령)은 인민군 수백 명을 살려 보내더라도 민족의 소중한 문화재인 해인사 팔만대장경을 폭격할 수 없다는 소신으로 공격을 포기, 오늘날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및 기록유산으로 등재된 우리의 자랑스런 문화재 팔만대장경과 천년고찰 해인사가 보존될 수 있도록 한 주인공이다.

당시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은 아군의 폭격에 잿더미로 변할 위기에 처해 있었다. 이 위기에서 팔만대장경을 구한 것은 다름 아닌 ‘신념’이었다. 고 김 장군은 “빨치산 몇 명 죽이기 위해 소중한 우리의 문화유산을 불태울 수는 없다”며 폭격을 우회했다.

당시 함께 비행한 참전한 군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고 김 장군은 “영국 사람들이 말하기를 ‘영국의 대문호 셰익스피어와 인도와는 바꿀 수가 없다’고 한다. 한국 사람들에게는 셰익스피어와 인도를 다 주어도 해인사 팔만대장경과는 바꿀 수가 없는 보물중의 보물이다. 그리하여 폭격을 우회하였다”고 당당히 말했다고 한다.

당시로서는 간첩으로 몰리거나 이적행위로 간주돼 현장에서 처형될 수도 있는 상황이었으나 그는 목숨을 걸고 해인사와 팔만대장경을 지켰다는 것이 주변의 증언이다.

고 김 장군은 이밖에도 공군의 상징인 빨간마후라를 창안해 낸 공군 문화의 창시자로 영화 ‘빨간 마후라’의 실제 주인공이기도하다.

한편 해인사에서는 1995년 유네스코에서 해인사 장경판전과 고려대장경판을 세계문화유산과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한 것을 계기로 고 김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사업을 추진해오고 있다.

2002년 6월17일 해인사 입구에 김영환 장군 공적비를 세웠고, 2009. 11.14일 공군 창설 60주년과 6.25 60주년 및 2011년 대장경 천년 세계문화축전 기념을 위해 고 김영환 장군 추모재를 개최했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