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 후 대한민국은 우익과 좌익의 혼돈이 점철돼 왔다. 한반도의 비극이 남긴 좌우 대립의 상징이 된 이념문제는 나라의 정체성을 잃게 했고, 전혀 그 의미가 다른 보수와 진보라는 영역으로 옮겨져 와 그 혼란은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민주사회가 지탱하고 나아가 국가가 발전 성장해 가는 데 생명과도 같은 두 바퀴 곧 보수와 진보는 이미 그 본질을 떠나 곁길을 걸으며 정체성을 잃고 방황해 왔다.

특히 금번 6.13 지방선거를 끝냄과 동시에 두 바퀴인 보수와 진보는 나사가 빠지고 구멍이 나고 온갖 흠집으로 수레에서 탈선할 지경에 놓이게 됐으니 결코 작은 일이 아니다. 수레가 뒤집어져도 오직 계파와 당파 내지 권력 잡기에 여념이 없을 뿐, 과연 그 심각성에 대해선 누가 애국과 구국의 심정으로 고민할까.

원래 보수란 국가의 헌법과 질서를 수호하고, 그 테두리 안에서 보완 발전시켜 나가자는 것이며, 굳이 말하자면 보수는 곧 민족주의 내지 국가 우선주의가 여기에 해당할 것이다. 또 진보는 나라의 미래를 위해 더 나은 법과 제도를 만들어 잘못된 것을 고치고 개혁해 바꿔나가자는 세력이다. 중요한 것은 민주사회와 국가가 존립하고 발전해 나가는 데 있어서 이 둘의 존재가치는 그 무엇으로도 바꿀 수 없는 보배와 같다. 이 사실을 안다면 무조건적 대립과 갈등이 아니라 상대의 존재가치를 인정하며 타협과 협치라는 정치의 꽃을 피워 나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러지 못하는 이유는 바로 이와 같은 본질이 왜곡되고 희석된 데서 기인했다고 볼 수 있으며, 그 자체를 인식조차 못하고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따라서 오늘날 위정자 내지 정치인들은 무지와 무식에서부터 빨리 벗어나는 게 그 무엇보다 시급하다. 굳이 필자의 변(辯)을 요구한다면, 이 같은 논리와 상식을 가진 정치인은 미안하지만 찾아볼 수 없다. 이유는 권력에 눈이 멀어 분별력을 상실한 연고다.

해방 후 찾아온 남과 북의 동족상잔은 이 같은 보수와 진보라는 민주질서를 오염시킨 원인으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즉, 보수와 진보는 우와 좌라는 이데올로기의 옷을 갈아입으면서 북한 정권을 무조건 반대하느냐 아니면 옹호하느냐의 문제로 극한 대립의 기간으로 소모해왔다. 나아가 이러한 좌와 우의 노선은 그 의미보다 정권창출 내지 유지의 수단으로 국민을 70년 동안 볼모로 잡아온 더럽고 추악한 동앗줄이다. 물론 이같이 된 데는 상식과 지식의 부재와 혼란과 오해가 도사리고 있었고, 그 오해는 보수와 진보, 좌와 우의 정체성 혼란을 더욱더 가중시키는 이유가 돼 왔던 것이다.

비근한 예로 주한미군의 주둔과 철수에 관한 논쟁이다. ‘유성운의 역사정치’라는 기고를 참고해 보면, 주한미군과 이승만 전 대통령과의 애증이 고스란히 묻어난다. 우리는 흔히 이승만 전 대통령을 대한민국 보수의 시조 내지 대표적 친미주의자로 인식해 왔으며, 나아가 오늘의 한반도 현실이 이 전 대통령 때문이라는 견해가 강하다. 이는 보이지 않는 오해 또는 악의적 저의에 의해 세뇌된 고정관념에 불과하다. 한마디로 말해 6.25 전쟁 중 이승만 전 대통령은 미국 트루먼 대통령에 이은 아이젠하워 대통령의 적극적 전쟁개입으로 의기투합했으나 전쟁이 소모전으로 장기화 돼 가자 아이젠하워는 예상과 달리 전쟁조기종식 즉, 휴전협정카드를 꺼내 들었고, 이 전 대통령은 휴전 반대 및 단독으로라도 북진 통일하겠다는 결의에 찼고, 이는 국민과 국회 동의까지 얻어내는 데 이르렀다. 이로 인해 미국은 1953년 5월 29일 ‘플랜 에버레디(plan Everready, 유엔 명의로 계엄령을 선포하고 이승만을 감금시킨 후 군정을 실시한다는 계획)’를 수립하기에 이르렀다. 이때 이 전 대통령은 휴전협정이 불가피하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고, 아이젠하워 역시 이 전 대통령의 단독북진 방지를 위해선 당시 이 전 대통령의 요구 즉, 남한의 안전보장에 대한 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 합의에 의해 탄생된 게 바로 오늘날 주한미군이다.

즉, 보수는 자주며 민족주의며 국가 우선주의다. 보수의 아이러니! ‘보수는 친박이다’는 인식은 맞지 않다. 보수가 한 손에 태극기, 한 손에 성조기는 더더욱 맞지 않다. 그들이 말하는 보수의 시조 격인 이승만 전 대통령이 이 사실을 알면 치를 떨 것이다. 또 오늘의 진보세력은 어떠한가. 진보세력 또한 보수의 정체성을 가졌으면서도 나는 진보라고 착각하는 모순의 극치, 이같이 보수와 진보의 정체성은 사라지고 그저 내 편과 네 편이라는 데 그 본질은 속절없이 묻혀 녹슬고 있다.

오늘 선거 압승이라는 데 고무돼 있는 진보세력 또한 분명히 알아야 할 진실이 있다. 국민들이 여당에 표를 준 것은 지지해서가 아니라고 한다. 야당에 대한 심판이지 여당이 잘해서가 아니라는 일성에 귀 기울여야 한다. 본지 여론조사 결과 여당에 표를 준 이유에 대해 ‘여당이 잘해서 표를 줬다’는 응답자는 4.1%밖에 없었다. 금번 지방선거에서 나타난 민심 곧 하늘은 새 시대를 맞이하기 위해 보수와 진보라는 수레의 두 바퀴가 정체성을 회복하라는 명령이며, 그리할 때 비로소 우리의 미래는 밝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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