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학수 한체대 초빙교수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말이 있다. 힘들게 이뤄낸 부일지라도 대를 이어가기가 결코 쉽지 않다는 의미이다. 이와 대조되는 말도 있다.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다. 곳간만 든든하면 어려움에 처하더라도 몇 년은 버틸 수 있음을 뜻한다.

스포츠에서도 이런 부자들 속담들이 곧잘 인용된다.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말처럼 정상에 오르면 화려한 스포트라이트와 프리미엄을 누리지만 정상에 안주할 경우 이내 경쟁자들의 추격을 허용한다. 정상에 오르는 것보다 수성을 지키는 것이 더 어렵다는 말이 생긴 것도 이런 이유다.

또 ‘부자 망해도 3년은 간다’는 말이 있듯이 비록 1등 자리는 내주었지만 예전 정상의 실력을 녹록치 않게 발휘할 수도 있다.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이에 해당될 듯하다.

한때는 잘 나갔다. ‘특급 마린보이’ ‘국민 스타’라는 닉네임이 따라붙었다. 그러나 정상에 올라선 뒤 긴 침묵만이 흘렀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세인들의 관심도 점차 멀어져갔다. 그래서 이대로 물러설 수가 없어 이를 악물고 다시 물살을 가르기 시작했다.

척박한 환경에서 금메달의 옥토를 일구어낸 한국 수영의 두 대들보 조성모와 박태환이 재기의 기지개를 켜 관심을 모으고 있다. 둘은 세계와 아시아무대에서도 낙후됐던 한국 수영을 크게 끌어올렸던 ‘물개 사나이’들로 모두 쓰라린 좌절을 맛보는 공통점을 가졌다.

1970년대 아시아를 주름잡은 수영 영웅 고 조오련 씨의 둘째아들인 조성모는 고등학교 1학년 때인 2000년 아시아수영선수권대회 자유형 1500m서 1위를 차지해 일찌감치 ‘부전자전’의 천부적인 소질을 보였다. 2002년 부산아시안게임 자유형 1500m서도 아시아기록을 세우며 은메달을 차지한 이후 ‘아시아의 물개’로 불린 아버지를 뛰어넘을 것으로 평가되기도 했다.

그러다가 2003년 고려대 입학 후 2003 대구유니버시아드, 2004 아테네올림픽에서 모두 실패를 맛본 데 이어 박태환이 무서운 신인으로 등장하면서부터는 세인의 기억에서 사라져버렸다. 조성모는 지난해 8월 아버지가 갑작스러운 심장마비로 타계한 뒤에는 큰 충격을 받아 과식, 과음 등으로 인해 몸무게가 120kg까지 불었다. 여기까지는 ‘부자 3대 가기 어렵다’는 속담이 들어맞는다.

그러나 조성모는 최근 모 방송사의 다이어트 프로그램에 참가신청을 내면서 망가진 몸을 다시 추스르며 재기의 날개를 펼치고 있다. 조성모는 몸무게를 80kg 정도로 뺀 뒤 아버지처럼 대한해협을 건너고 국가대표에 다시 도전한다는 계획이다.

아버지보다 못하다는 세인들의 입방아를 물리치고 거슬러 올라가보자는 것이다. 박태환은 지난 주말 미국 캘리포니아 어바인에서 열린 2010 팬퍼시픽국제수영대회 400m 자유형에서 올해 세계 최고 기록이자 2008년 베이징올림픽 이후 개인 최고 기록인 3분44초73에 레이스를 마쳐 2006년 대회에 이어 2회 연속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 수영의 대물답게 저력을 보였던 것이다. 베이징올림픽 때 세운 개인 최고 기록 3분41초86에는 미치지 못했지만 올해 11월의 중국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 다툴 라이벌인 중국의 장린보다는 2.18초가 빨라 금메달 가능성을 높였다.

지난해 로마세계선수권대회에서 자유형 200m, 400m와 1500m에 출전해 모두 결선 진출에 실패했던 박태환은 이번 대회를 통해 1년 전 충격에서 완전히 벗어났다는 것으로 평가받을 만하다. 박태환은 로마 참패이후 한국 최초의 올림픽 수영 금메달리스트라는 화려한 성적에 연연하지 않고 명예회복을 위해 절치부심의 헤엄치기에 몰두했다. 이번 성적은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다.

아픈 만큼 성숙한다고 할까. 두 수영스타가 눈물겨운 재기의 몸부림을 통해 정상을 다시 찾는다면 그 이전의 정상보다 더 아름답고 그 의미가 클 것이다. 반드시 그 뜻을 이루어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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