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人을만나다] 김해숙이 말하는 그녀들의 이야기
[영화人을만나다] 김해숙이 말하는 그녀들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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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배우 김해숙이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김해숙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1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배우 김해숙이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김해숙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1

 

배정길 역 너무 슬퍼 절제하는 게 어려웠다

분장 안해, 부은 얼굴 CG로 오해한 분도

 

영화 보고 싶지 않았던 적은 처음

내가 한 연기 옳은가 답을 모르겠더라

 

저도 몰랐다… 알려지지 않은 관부 재판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중요하다고 생각

[천지일보=이혜림 기자] 자타가 공인하는 대한민국 대표 연기파 배우 김해숙의 연기 경력은 어느덧 44년이 됐다. 그는 다양한 장르에서 맡은 캐릭터를 맞춤옷을 입는 것처럼 소화하며 명연기를 펼쳐왔다. 그런 그에게 영화 ‘허스토리’의 ‘배정길’이라는 역이 운명처럼 찾아왔다.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는 역사상 단 한번 일본 재판부를 발칵 뒤흔들었던 관부 재판 실화를 담은 이야기다. 우리에게 생소한 관부 재판은 1992년부터 1998년까지 6년 동안 23회에 걸쳐 시모노세키와 부산을 오가며 일본 정부를 상대로 벌인 끈질긴 법정 투쟁을 말한다. 영화에서처럼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은 오직 본인들의 노력으로 일본 정부에 당당히 맞서 승리를 거둔다.

배우 김해숙은 극 중 과거를 숨긴 채 아들과 함께 살아온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로 분해 그들의 애환과 용기를 고스란히 관객에게 전한다. 17살 어린 나이에 위안부로 끌려갔었던 배정길은 주변 시선을 피해 살아오다가 일본에서 진행되는 재판 과정을 통해 용기를 얻고 증언대에 선다. 김해숙은 극적인 감정 변화를 오가는 배정길로 완벽하게 분해 진정성 있는 연기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그는 “현재에서 과거 얘기들이 진행되면서 늘어지지 않겠냐는 생각이 들었으나 저는 제작진을 믿었다. 영화는 이분들의 역사와 아픔을 다루지만 현실을 보여주는 게 중요했다”며 “여성으로서 재판부에 맞선 여성 법정드라마라고 말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알려지지 않은 관부 재판을 많은 사람에게 알리는 것 중요하다”고 말했다.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배우 김해숙이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김해숙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1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배우 김해숙이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김해숙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1

 

다음은 김해숙과의 일문일답.

-영화는 잘 봤나.

이런 적은 처음이다. 영화를 보고 싶지 않았다. 내 모습을 보기 너무 두려워서 혼자 몰래 보고 싶었다. 보통 저건 어떻고, 이건 어떻고 하면서 객관적으로 보는데 이번엔 역시 답을 모르겠더라. ‘과연 내가 연기한 게 옳은가’라는 생각에 제대로 볼 수 없었다. 함께 연기한 배우 예수정씨도 보고 같은 말을 했는데 다들 배우이기 전에 그 영화에 빠져들었던 것 같다.

-‘허스토리’ 시나리오를 받고 가장 먼저 무슨 생각이 들었나.

이전까지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할머님들의 얘기는 과거를 중심으로 만들어져서 제 나이에는 맞는 역이 오리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처음 ‘허스토리’의 시나리오 받고 ‘이 영화는 뭐지?’ ‘어떻게 해야 하지?’ 등 묘한 감정이 들었다. 두렵기도 했다. 얘기로 듣던 걸 직접 연기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컸다.

-그런데도 출연을 결심한 이유는.

현재의 삶부터 시작하는 시나리오가 너무나 신선했다. 기존엔 할머님들의 사정을 뉴스로만 잠깐 접했지 개개인의 삶을 따라가면서 아픔을 담은 영화는 없었다. 할머니들이 모든 것을 딛고 용기 내서 아무 도움 없이 법정에 서신 건 정말 대단하신 거다. 저조차도 몰랐던 관부 재판을 널리 알릴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많은 분이 이 사건과 할머니들의 삶을 알았으면 좋겠다.

영화 ‘허스토리’ 스틸. (제공: NEW)
영화 ‘허스토리’ 스틸. (제공: NEW)

 

-배정길 역을 연기하기 위해 참고한 것은.

막상 연기하려고 보니 상상으로만 연기할 수 없었다. 배정길 할머니는 다른 분들과 다른 아픔을 가졌다. 다른분들과 배정길 할머니는 다른 아픔을 가졌다고 생각했다. 다른 걸 참고하면 오히려 너무 이성적으로 되거나 작품 몰입에 방해될까봐 오로지 시나리오에만 집중했다. 그래서 존경하는 나문희 선배님의 영화 ‘아이 캔 스피크’도 보지 않았다. 너무 보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대신 나문희 선배님께서 여우주연상 받으신 날 전화했다(웃음). 옆에 있으면 꼭 안아드리고 축하하고 싶었다.

-무거운 소재이기에 연기하기 어렵고, 촬영이 끝난 후 여파가 클 것 같다.

그분한테 다가갈수록 정신적·육체적으로 정말 힘들었다. 보통 제 나름대로 캐릭터 분석을 하면서 연기하는데 이분은 매우 어려워서 웬만한 감정으로 안 될 것 같았다. ‘눈물도 메말라버린 줄 알았는데’라는 대사가 있다. 배정길 할머니에겐 세상의 모든 큰일이 크지 않았을 것 같았다. 개인적으로는 너무나 슬퍼서 그걸 절제하는 게 어려웠다.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배우 김해숙이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김해숙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1
[천지일보=박선아 기자] 배우 김해숙이 11일 서울 종로구 한 카페에서 언론 인터뷰에 앞서 사진 촬영을 진행하고 있다. 김해숙은 영화 ‘허스토리(감독 민규동)’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배정길 역을 맡아 열연을 펼쳤다. ⓒ천지일보(뉴스천지) 2018.6.11

 

-법정 재판 신이 하이라이트인데 어떻게 연기했다.

그분이 돼야 했다. 배정길 할머니가 자신의 얘기를 할 때 중간에 NG를 내지 않은 것처럼 저도 원테이크에 갔다. 너무나 큰일을 겪은 사람이기에 말이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법정 신에서는 아들을 위해 본인의 이야기한다. 어떤 마음으로 하느냐가 중요했다.

-일본 법정 세트장에 서니 어떤 생각이 들었나.

배우로서 섰는데도 어디론가 도망가고 싶더라. ‘그분들은 얼마나 떨리고 힘들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다. 저라면 거기 못 섰을 것 같다. 할머니들의 용기가 정말 대단하다. 그 무엇보다 재판장에서 과거의 아픈 상처를 얘기해야 한다는 게 제일 힘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법정 세트장이 지어지면 지어질수록 무서웠다. 배우들끼리 ‘운명의 날이 다가온다’고 그랬다(웃음).

영화 ‘허스토리’ 스틸. (제공: NEW)
영화 ‘허스토리’ 스틸. (제공: NEW)

 

-캐릭터의 외적인 모습은 어떻게 만들어 갔나.

분장을 아예 안 했다. 저 자신부터 발가벗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았다. 그래서 철저하게 발가벗었다. 6년간의 재판을 보여주기 때문에 세월의 흐름을 나타내기 위해 흰머리 정도만 표현하고 민낯으로 촬영했다. 그냥 제 모습이다. 정신적으로 너무 힘들어서 실제로 잠도 잘 못 자고, 얼굴도 팅팅 부었다. 다른 분들은 삐쩍 말랐다. 저같이 퉁퉁한 사람도 있어야지 않겠느냐. 제 모습을 보고 CG 아니냐고 오해하시는 분들도 많더라. 어떤 날은 저도 거울 보면서 깜짝깜짝 놀랐다.

-관객들에게 한마디.

관부 재판은 잊고 싶어도 잊을 수 없는 가슴 아픈 역사 중 한 부분이다. 이 재판은 아픔과 고통 속에서 살아온 힘없는 할머니들이 승소했다는 데 중요한 의미가 있다. 이 사실을 모르고 있었다는 건 한국 사람으로 부끄러운 일이다. 영화를 통해 그분들이 어떤 삶을 살았으며, 어떻게 재판에 임했는지를 같이 느껴주셨으면 좋겠다. 앞으로도 우리가 가야 할 길이다. 할머니들의 이야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것을 기억해주셨으면 좋겠다. 그래서 생존하신 할머니나 돌아가신 분들에게 조금이라도 위안이 됐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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