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준 역사연구가/칼럼니스트

 

고려속요 ‘동동(動動)’은 사랑하는 임을 향한 노래인가. 일년 열두달 임을 위한 그윽한 심정을 담고 있다. ‘아흐 동동다리… 아흐 동동다리’ 동동은 단옷날에도 임을 위한 사랑의 묘약을 헌정한다. 

- (전략)…사월 아니 잊고/ 아! 오셨네 꾀꼬리여/ 무슨 일로 녹사님은/ 옛날을 잊고 계신가/ 오월 오일에/ 아! 수릿날 아침 약은/ 천 년을 길이 사실 약이라고 받치옵니다…(하략) - 
춘향은 단옷날 규방에서 나와 그네를 탄 것이 운명을 바꿔 놓았다. 판소리 춘향가에 서술된 그네 풍경을 보자.

- 장장채승(비단실로 꼰 긴 동아줄) 그넷줄, 휘느러진 벽도(碧桃)까지 휘휘 칭칭 감어 매고, 섬섬옥수 번듯 들어 양 그네 줄을 갈라 잡고 선뜻 올라 발 굴러 한번을 툭 구르니 앞이 번 듯 높았네. 두 번을 구르니 뒤가 점점 멀었다. 머리 위에 푸른 버들은 올을 따라서 흔들, 발밑에 나는 티끌은 바람을 쫓아서 일어나고 해당화 그늘 속의 이리 가고 저리 갈 제… - 

단옷날은 질곡의 여인들이 해방되는 날이었다. 신윤복의 ‘단오풍정’은 바깥에 나와 감추었던 가슴을 풀어헤치고 자유를 만끽하는 모습을 담은 그림이다. 냇가에서 젊은 여인들이 가슴과 흰 다리를 드러내고 씻고 있는 것을 아이들이 훔쳐보고 있는 것도 해학적이다. 치렁치렁 삼단 같은 머리를 풀어헤친 소녀, 화려한 비단옷으로 치장한 그네 타는 여인의 모습을 보면 춘향전의 풍경을 연상시킨다. 

단오는 우리말로 ‘수릿날’이라고 불렀다. ‘단(端)’자는 첫 번째를 뜻하며, ‘오(午)’는 ‘초닷새’를 뜻하는 것이다. 옛 풍속에는 이날 지인들끼리 부채를 선물했다고 한다. 부채에 시구(詩句)나 그림을 그려 넣은 선면화(扇面畵)가 유행한 것도 이 때문이다. 

부채선물이라면 제갈량과 월령부인의 고사가 생각난다. 부인은 현명해 남편을 당대의 재상으로 성장시켰다. 그런데 아내는 왜 남편에게 부채를 선물한 것일까. 그녀는 남편에게 화나는 일이 있으면 부채로 얼굴을 가리고 절대 감정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도록 당부했다고 한다. 중국 측 기록에 부채에 대한 그윽한 시가 선가(禪家)에서 전해 내려오는데 제갈량의 고사에서 비롯된 것이다. 부채에도 남녀상열의 운치가 담겨있다. 

- (전략) 삼복더위 바람 한 점 없는데 풀을 붙여 합궁했다오(三伏酷暑無風 糊爲媟婆合宮)/ 종이와 대나무가 서로 혼인하여(紙與竹而相婚)/ 낳은 자식의 이름을 청풍이라 하였네(生其子曰淸風) -

당나라 황제 현종은 여름철 재상 장구령(张九龄)에게 백우선(白羽扇)을 선물했다. 백우선이란 새의 흰 깃을 가지고 만든 부채인데 그 감회를 노래한 것이다. 오랜 역사동안 문사들이 이 풍모를 흠모했는데 명나라 명필 동기창(董其昌)의 ‘백우선부’가 유명하다. 

조선 후기 실학자 성호 이익(星湖 李瀷)도 명필 동기창을 존경해 백우선부(白羽扇賦)를 써 간직하고 살았다. 필자의 눈으로는 성호의 글이 동기창체를 능가하고 있는 것 같다. 벼슬을 외면하고 한적한 시골에서 부채를 벗 삼아 무더위를 잊은 성호의 풍류가 멋지기만 하다. 조선시대 궁중 풍속에는 여러 신하들이 단오첩(端午帖)을 지어 대궐 기둥에 붙였다고 한다. 임금의 무병장수와 나라의 안정을 기원한 것이다. 

전국 동시 지방선거도 끝나고 민주당의 압승으로 결론이 났다. 이제 여야는 선거 후유증을 빨리 잊고 국정에 매진해야 한다. 여당도 승리에 심취해 국민의 뜻을 외면하는 정치는 하지 말아야 한다. 민심은 언제고 돌아서며 준엄하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야당도 실패를 거울삼아 환골탈태해야 한다. 단옷날 여름을 이길 부채를 선물하듯 우리의 마음속에도 풍속의 의미를 담고 살았으면 하는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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