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병진 한국외대중국연구소 연구위원

 

세기의 담판이라 불렸던 트럼프와 김정은의 싱가포르 만남은 일단 끝났다. 당일 직전까지 폼페이오 국무장관의 밤 9시 기자회견은, CVID로 대변되는 미국의 입장이 불변이라고 강조한 예상외의 강경한 어조의 회견이었다. 많은 국제문제 전문가는 미국이 끝까지 완전하고(Complete), 검증가능하며(Verifiable), 돌이킬 수 없는(Irreversible), 비핵화(Dismantlement)를 이루겠다는 의지라 분석했다. 그러나 다음날 발표된 공동성명은 V와 I가 빠진 완전한 비핵화(CD)만 남았고, 북한 김정은의 승리라는 평가가 보편적으로 언론을 장식하기에 이른다. 한국과 판문점에서 김정은이 합의한 수준에서 뭐가 더 나아진 것인지 모르겠다는 혹평까지 등장하게 됐다. 행간의 의미와 회담주체 간의 무게를 놓고 봐도 다르고 향후 결과도 일정부분 도출될 것이 분명히 존재하기에 다르지만, 비판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날카로운 예봉을 피해가기는 어려워 보인다. 그 와중에 ‘중국이 크게 웃었다’. 왜 웃었는지 생각해 볼 여지가 다분히 있다. 

미국과 한국은 일관되게 비핵화를 담보한 전제하에 회담이 가능하다고 했고, 북한·중국은 소위 쌍무적 동시적 단계를 밟으면서 비핵화와 제재 해제를 교환하는 방식이 옳다고 주장했다. 궁극적으론 한반도의 영구적 평화체제를 이루어 나가는 목적에는 표면상 다 동의했고, 그 방식과 행동의 시각차로 대화로 해결하기 위해 어렵게 싱가포르까지 간 것이다. 여기서 중국이 웃은 결정적인 이유는 그들의 언어로 축약해 명명된 쌍중단(雙中斷)과 쌍궤병행(雙軌竝行)이다. 쌍중단은 북한의 핵·미사일 도발을 의미하고, 남한은 한·미 군사훈련을 중단하는 것이다. 이 두 가지를 중국식 축약 표현으로 쌍중단이라고 부른다. 외관상 쌍중단이 달성돼 가는 것으로 보인다. 쌍궤병행은 북한과 미국의 평화협정 협상 병행과, 한반도 비핵화 프로세스 협상 병행을 의미한다.

중국이 그들의 언어로 주장한 것이 내용적으로 다 이루어져 중국이 이번 회담에서 승리했다는 말까지 나오는 것이다. 심지어 북한에게 비행기 두 대만 빌려주고 중국이 원하는 방식을 취했다. 중국은 사실상 북미정상회담과 남북정상회담에 직접적으로 개입하지 않았다. 비행기 두 대 달랑 빌려주면서 전 세계에 “북한과 중국은 이렇게 친하다”를 보여줬다. 그동안 일각에서 지적했던 소위 ‘차이나 패싱’이 웬 말이냐를 보여준 것이다. 나아가 북한도 큰 걱정이었지만, 중국도 숙원인 한·미 연합훈련을 8월 실시 목전에 중지시킬 수 있게 됐다. 표면적으로 북한 남침을 대비하고 역공을 실천에 옮기는 훈련이지만 종국에는 중국을 견제하는 대전략 속에서 이루어지는 암묵적 군사안보전략의 일환이다. 중국은 일찍부터 그것을 간파하고 사드배치부터 한·미 간 합동으로 이루어지는 군사훈련이라든지 모든 군사 협력사업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협상에 참여하지 않고 등 뒤에 중국이 있고 우리의 협력 없이는 뭐든 북한과 관련된 일은 이루기 어렵다는 것을 과시한 것이다.

미국과 한국, 일본은 얻은 것이 없고 김정은과 중국이 최대 승자로 인식되는 중국내부의 평가도 크게 다르지 않다. 중국의 입장을 대변하는 환구시보의 ‘한미 군사훈련 중단, 한반도 정세가 또 한번 큰 걸음을 내딛게 됐다’라는 제하의 보도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미 훈련 중단이 잘됐고 중국은 대환영한다는 것이다. 속으로 쾌재를 부르고 있다. 물론 이 군사 훈련비 만만치 않다. 전략자산 전개하는 데 20~60억 들고 항모전단 오는 데 500억 든다. 1년에 두 번만 훈련해도 1000억 이상이 소요되는 비용이다. 훈련도 돈이 있어야 한다. 유사시를 대비한 훈련을 많이 해야만 전쟁이 발생하면 일거에 적을 제압할 수 있다. 돈이 들어가지만 미리 연습하는 것이 그만큼 중요하다. 북한·중국도 한·미를 대비한 군사훈련은 실질적으로 역부족이다. 한·미 군사훈련은 그들에게 너무나 큰 위협적 행동이었던 것이다. 한·미 군사훈련 중단은 양국의 안보 위협 해소에 직결되고 중국이 주창한 소위 쌍중단이 이루어져 중국은 좋아하지 않을 수 없다. 북한이 핵무기 개발을 포기하면 한·미 대규모 훈련 지속 근거가 없다. 더 나아가 미군도 철수해야 하는 상황이 될 수 있다. 미국의 대(對)중국 포위 전략이 하나씩 제거되니 중국이 웃을 수밖에 없다. 냉전의 산물인 한반도의 현 체제가 북미정상회담을 계기로 대전환을 맞는데 중국은 현시점에서 웃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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