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희 국민대학교 체육대학 교수

요즘 한국 여자스포츠의 힘이 거세다. 수없이 많은 여자선수들이 있지만 최근 언뜻 떠오르는 선수를 들자면 2010년 밴쿠버동계올림픽 피겨스케이팅에서 금메달을 딴 김연아 선수, 그리고 얼마 전 2010년 에비앙마스터스대회에서 우승하여 세계 1위로 다시 올라간 신지애 선수를 들 수 있다.

김연아의 음악과 함께 하얀 빙판 위를 그려내는 스케치와 고난도의 트리플 악셀 연기, 그리고 신지애 선수의 한결같은 스윙동작, 절대 절명의 위기 순간에 보여주는 여유 있는 웃음, 그 후에 나타나는 등골이 오싹하게 만드는 멋진 샷을 보면 우리는 모두 감탄을 금하지 못 한다.

이들이 펼치는 모습은 우리에게 아름다움으로 다가오며, 스포츠가 왜 예술의 범주에 들어가는지 감이 잡힌다. 그러나 김연아와 신지애의 아름다운 동작은 시간적으로 매우 짧다. 김연아의 쇼트프로그램은 2분 50초이며 프리스케이팅은 최대 4분 10초 내에서 이루어져야 한다.

즉 다 합해야 7분밖에 되지 않는다. 신지애의 동작은 더 짧다. 한 번의 골프 스윙을 하는데 길어야 3초를 넘기지 않는다. 한 라운드에 72타를 친다면 3분 36초이다. 나머지 시간은 동작을 준비하는 시간이다. 준비가 도대체 뭐길래, 이렇게 많은 시간이….

얼마 전 김연아는 아이스쇼를 성황리에 마치고 토론토로 출국하면서 2011년 3월 세계선수권대회에 출전하겠다고 밝혔다. 7개월의 준비 기간 동안 김연아가 어떤 과정을 거쳐야 하는지 살펴보자.

가장 먼저 지난날의 추억은 접어두고 앞으로 있을 대회에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음악을 선정하고 각각의 동작을 어떻게 표현할 것인지 상상하고 계획해야 한다. 계획이 완성되면 대회전까지 많은 시간 여러 번 연습을 한다.

대회 며칠 전에는 평소 연습한 것을 실제 무대에서 100% 발휘할 수 있도록 가상 공연 즉 리허설도 해보고, 스케이트나 음악, 복장 등 소품을 재점검한다. 대회당일, 자신의 차례가 다가오면 무대 위에서 자신감과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해왔던 동작에 100% 몰입한다.

대회가 끝난 뒤 평가를 통해 개선해야 할 점을 찾고 새로운 마음으로 다음 대회를 준비한다. 이 중 어느 하나라도 잘못되면 성공적인 공연을 계속해서 유지해 나갈 수 없다. 계획이 잘못되어도 안 되며 리허설을 생략해서도 안 된다.

대회 바로 전 마음을 가다듬지 못한다면 이제까지 준비한 모든 것들이 한순간에 물거품이 될 수 있다. 또한 공연 후의 평가과정을 거치지 않는다면 다음에도 같은 실수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이를 골프에 적용해보면 한 차례의 대회는 한 번의 샷이나 퍼팅에 해당한다. 성공적인 대회를 위해서는 여러 가지 일련의 과정이 필요하듯, 하나의 샷이나 퍼팅을 성공하기 위해서도 대회나 공연을 할 때와 같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럼 신지애가 18번 홀 티샷을 하려 할 때 어떤 과정을 거치는지 살펴보자.

가장 먼저 지난 홀에 대한 기억은 접어두고 지금 해야 할 샷에 온 마음을 집중해야 한다. 바람, 코스, 스코어 등을 감안하여 어디로 어떻게 공략해야 할 것인지 상상하고 계획한다. 계획이 완성되면 리허설역할의 연습스윙을 한다.

정확한 샷을 위해 소품역할의 셋업을 재점검하고 자신감과 편안한 마음으로 자신이 해왔던 스윙동작에 100% 몰입한다. 볼이 약간 우측으로 밀렸다. 평가를 해보니 마지막 홀이라 자신감이 부족했다. 다행이 리듬감이 좋아서 우측에 놓여있는 벙커는 피할 수 있었다. 다음에는 좋은 리듬은 살리면서 자신감을 더 갖고 샷을 해야겠다고 생각하고 다음 샷을 위해 걸어간다.

김연아와 신지애, 너무 비슷하지 않은가? 계획, 상상, 연습, 셋업, 몰입, 평가 등의 과정.

이와 같은 모든 과정을 루틴이라 부르며 쉽게 습관으로 이해해도 좋다. 습관은 만들어지기 어렵지만 한 번 만들어지면 나를 서서히 파괴하거나(나쁜 습관), 위험에서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를 지켜주는 수호신역할을(좋은 습관) 한다.

미래의 예측을 통해 계획하고 연습하며 몰입하고 평가하는 과정은 700만 년 전부터 우리 조상이 해왔던 사냥기술에서부터 발전되어 왔고 현재 회사 경영이나 비즈니스 등 우리 삶 전체에 활용될 수 있는 유용한 도구이다.

김연아의 트리플 악셀도, 신지애의 정확한 드라이버샷도 오랜 기간 만들어진 습관이다. 뿐만 아니라 이들이 그때그때 생각하고 판단하는 것도 멘탈적 습관이다.

다만 동작은 눈에 보이나 멘탈적 습관은 눈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고수가 될수록 행동적 습관보다 멘탈적 습관이 더 중요하다. 이쯤 나의 멘탈적 습관은 나를 발전시키고 위기에서 나를 구해줄 수 있는지, 고수가 될 만한지 되돌아보는 것, 시간낭비일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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