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지사지의 정신이 필요한 때다. 이는 달리 말하면 이타정신이 있어야 한다는 말과 다름없다. 또한 논리적인 사고와 행동이 절실히 요구되는 때가 아닌가 한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 있으면 이타정신보다는 이기주의가, 역지사지의 정신보다는 내가 느끼는 불편함이 더 크게 작용하고 있음이 온몸으로 느껴진다.

이런 문제가 발생하는 데에는 자기의 입장만을 내세우고, 상대방을 이해하려기보다는 다름만을 찾아내 갈등을 조장하는 못된 버릇이 아직도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와 같은 현상은 남자와 여자, 동과 서로 나뉜 지역 갈등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최근 들어 논란과 이슈의 한가운데 자리 잡았던 페미니즘 시위를 촉발시킨 ‘홍대누드크로키’ 사건처럼 여자이기에 차별 혹은 피해를 받는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면 논리적인 사고에 영향을 줄 수 있다. 지역갈등과 정치적인 색깔에 대한 문제는 아직도 떼려야 뗄 수 없는 고질적인 병폐로 이는 국민 스스로가 그 틀을 깨지 않으면 영원히 풀리지 않는 숙제와도 같음을 알아야 한다.

홍대누드크로키 유출 사건의 피해자가 남자이고 가해자가 여자이기에 수사가 빠르고 강경하게 진행됐다는 생각이 과연 논리적으로 타당한가라는 생각이 들다가도, 그동안 우리 사회가 남성중심의 차별적인 행위를 일삼아 왔던 것을 감안하면 이해되는 부분이 있기도 하다.

하지만 이제 과거의 그런 일들이 하나 둘 드러나며 역사의 심판을 받고 있으며, 부와 권력이 불법을 감싸주고 방패가 되는 시절은 이제 ‘호랑이 담배 피던 시절’이 되어가고 있는 시점에 와 있다. 가깝게는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70여년을 곪을 대로 곪은 고질적인 병폐이니 그 고름이 터지고 상처가 치유되는 이 과도기를 지혜롭게 넘길 수 있어야 한다.

과거에 집착하다보면 현재를 볼 수 없고, 현재를 바라보는 눈이 과거의 일들로 덮여 있으면, 미래는 결코 밝을 수 없다. 억울하고 답답했으며, 그 어떤 것으로도 보상받을 수 없는 과거를 보상받기 위해 똑같은 방법으로 되갚는 것은 미래의 우리 후손들에게도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안길 뿐이다.

차별에 대한 문제를 무조건 참고 넘기라는 문제가 아니다. 차별로 인한 피해가 있다면 법의 테두리 안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말이다. 만약 법에 문제가 있어 그로 인한 또 다른 차별과 피해가 발생한다면 감정이 아닌 논리적인 방법으로 풀어가야 한다는 말이다.

누구나 납득할 수 있고, 그래서 함께 동참하며 그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해야 잡음을 줄일 수 있으며, 타당성을 얻기 때문이다. 피해를 본 사람 입장에서는 억울하고 답답할 수 있다. 허나 단지 그것이 여자 혹은 남자이기 때문에로 분리해서 생각하면 결코 그 어떤 답도 얻을 수 없다. 여성의 입장에서는 남성이, 남성의 입장에서는 여성이, 그렇게 서로에게 피해자이고 가해자일 수 있는 상황을 언제까지고 만들어 가야 하는가. ‘여혐’ ‘남혐’이라는 말들이 언제까지고 계속돼야 하는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죄를 지었으면 그에 맞는 죗값을 치러야 하며, 그건 여자와 남자, 빈부와 지위 고하를 막론하고 공정해야 한다. 그렇기에 어떤 운동이나 시위의 배경이 어느 한쪽만을 옹호하거나 비난하는 일이 되어서도 안 된다. 생각이나 느낌, 의심이나 의혹만이 아닌 사실에 입각한 것이어야 공감과 타당성을 얻을 수 있고, 나아가 목적한 바를 이룰 수 있는 것이다.

이번 6.13지방선거에서 여성 후보자에게만 투표하겠다는 말이나, 여성 후보자가 없을 경우 투표용지에 ‘여성정치인’이라고 적은 무효표를 낼 것이라는 여성 유권자들도 등장했다는 기사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페미니즘이 선거 이슈로 부상한 것은 양성평등 사회로 성장하는 과정이라는 말도 나온다. 여성을 위한 정책이 상대적으로 부족한 이유 중 하나가 여성 정치인이 적기 때문이라는 이유를 들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여성 인권 신장을 위한 것이 그 이유다. 투표는 권리다. 누굴 뽑는지도 유권자의 마음이다. 우려스러운 것은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여성을 뽑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가 단지 ‘누구’이기 때문이 아닌 누군가의 ‘행동’이 판단의 근거가 문제 해결의 원인이 되길 바랄 뿐이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