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호익 동북아공동체ICT포럼회장/한국디지털융합진흥원장

 

지하철 2·5호선 철도통합망(LTE-R) 사업과 공공정보화사업평가에 최저가 입찰제 도입 문제가 논란이 되고 있다. 서울교통공사는 최근 2·5호선 LTE-R사업에 2단계 최저가 입찰 방식을 예고했다. 또한 공공정보화사업평가에 행정안전부가 공공 소프트웨어(SW) 시장 선진화 대책으로 기술·가격 평가 비중을 9대 1로 조정했지만 사업 낙찰을 담당하는 조달청은 8대 2로 명시해 4차 산업혁명에 역행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2단계 최저가 입찰은 1단계 기술 평가에서 일정 점수 이상을 받은 업체를 선별하고, 2단계에서 최저가를 제안한 업체를 선정하는 방식이다. 시장경쟁 원리가 잘 반영되고 발주자는 예산 절감이 가능하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기술평가에서 입찰 참여 업체 대부분이 통과하기 때문에 사실상 최저입찰제와 대동소이하다. 낙찰에만 급급해 저가 수주 이후 사업이 부실화될 우려가 있다.

2단계 최저가 입찰제는 물품, 서비스, 인프라 등 납품 입찰에서 기능이 단순한 장비를 구매할 때 예산 절감을 위해 적용한다. 4차 산업혁명 등 혁신 기술 기업이 발붙이기 어려운 시장 생태계를 조장할 우려가 크다. LTE-R사업처럼 첨단 통신 기술이 필요한 분야나 품질과 보안이 중요한 공공정보화사업평가에는 적합하지 않다.

특히 서울교통공사는 지하철 2·5호선 철도통합망(LTE-R) 사업에 발주방식은 발주처 고유 권한이라고 주장한다. 사업비용을 절감해야 하고, 기본 설계를 잘해서 특별한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그러나 통신사업자는 물론 공공안전통신망 포럼, 정보통신산업진흥원까지 발주처인 서울교통공사에 발주 방식 변경을 요구하고 있다.

최저가 입찰제 도입은 업체 간 저가·출혈 경쟁을 조장한다. 우리나라가 독자 기술로 개발한 공공안전통신망(재난·철도·해상)이 세계 시장을 선점할 절호의 기회를 놓칠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우려한다. 저렴한 중국 제품이 도입될 경우 보안 우려도 커질 수 있다. LTE-R가 적정 품질을 확보하지 못하면 승객 안전을 위협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혁신적인 국내 중소기업의 참여기회도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다.

정보통신산업진흥원은 지하철 2·5호선 철도통합망(LTE-R) 사업에 중소 SW가 많이 사용되는 만큼 SW산업진흥법을 준수해 ‘협상에 의한 계약’ 방식을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민간협회도 700㎒를 사용하는 LTE-R는 재난망·해상망과 같이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사업이라며 국가 연구개발(R&D) 투자 실효성 저하, 중소기업 연쇄 피해, 국가기간통신망 보안성 취약 우려, 재난·철도·해상 3개 망 연동 시 품질 저하로 재난 대응력저하 등을 고려해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최저가 입찰제는 가격만 강조돼 기술 발전 저해 소지가 크다. 정부는 4차 산업혁명을 대비해 혁신기술을 중시하는 생태계 조성을 위해 소프트웨어(SW), 정보통신기술(ICT) 등 분야를 중심으로 ‘혁신 성장 지원 등을 위한 공공조달 혁신 방안’을 마련, 공공조달이 창업과 벤처 성장 사다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제도 장치를 마련했다. 최저가 입찰제를 폐지해 공공조달 시장 진입 문턱을 낮추고 혁신기술 등 비가격 측면을 강조한 종합심사입찰제를 도입했다.

그러나 시장은 여전히 가격 위주의 관행이 유지되고 있다. 중소·중견 IT서비스 기업의 수익성이 악화되고 있다. 무조건 싼 정보시스템은 목적을 달성하지 못할 수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역행하는 최저가 입찰은 ICT 기술 발전과 경쟁력을 무너뜨린다. 복잡한 공공 통신망이나 정보시스템 등 정보화 사업이 최저가 입찰 등 가격에 좌우되면 기술 경쟁력은 낮아질 수밖에 없다. 기술 중심 평가가 이뤄져야 ICT 생태계가 발전하고 품질도 높아진다. 가격뿐만 아니라 성능·기술 평가가 당연히 수반돼야 한다. 정부는 종합심사낙찰제가 정착할 수 있도록 지속해서 점검해야 한다. 특히 정부와 공공기관 스스로가 최저가 입찰을 조장하는 행위는 근절돼야 한다. 공공시장부터 혁신 기술 기업이 성장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중요 사업에서는 최저가 입찰 방지를 위한 명확한 세부 규정을 마련해야 한다.

천지일보는 24시간 여러분의 제보를 기다립니다.
관련기사
저작권자 © 천지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